주간동아 629

2008.04.01

프로이트의 첫 환자 ‘안나 오’ 레이스 전시회

독일 여성운동 선구자 … 미술관에 기증했던 300여 종 레이스 첫 공개

  • 빈=임수영 통신원 hofgartel@hanmail.net

    입력2008-03-26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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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의 첫 환자 ‘안나 오’ 레이스 전시회

    ‘안나 오’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베르타 파펜하임. 브로이어에게 최면치료를 받을 즈음의 모습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지금까지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세 번이나 겪었다고 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인간이 아무리 잘난 척해봐야 결국은 원숭이와 사촌 내지 팔촌 간이라는 주장을 펼친 다윈의 진화론, 마지막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인간이 의식이 아닌 무의식과 본능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이성’ 하나로 버텨온 인간의 자존심에 일격을 가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인간의 의식세계는 거대한 무의식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인간이란 리비도라는 성욕에 의해 조종된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이 ‘발칙한’ 주장은 실은 한 여성에게서 시작됐다.

    환각장애 시달리다 최면요법 통해 호전

    오스트리아 빈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얼마 후, 프로이트는 당대 최고의 명의인 요셉 브로이어와 친분을 쌓게 된다. 나이가 너무 많은 친아버지(프로이트의 어머니는 결혼 당시 프로이트의 아버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고, 그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이런 정황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 설정에도 그대로 반영됐다고 전해진다)와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웠던 프로이트는 브로이어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브로이어도 젊고 가난한 데다, 같은 유대인 의사인 프로이트를 위해 기꺼이 일종의 멘토 역할을 했다.

    어느 여름날, 휴가를 함께 보내던 브로이어는 자신이 치료했던 한 젊은 환자에 대해 프로이트와 상의했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딸인 이 환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환각과 불안장애에 시달리며 반신마비 증상, 기억상실증을 보였다. 또한 물 공포증으로 며칠간 단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거나, 모국어인 독일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영어, 프랑스어 또는 이탈리아어로만 의사소통을 했다. 이처럼 특이한 증상을 치료하게 된 브로이어는 최면요법을 사용, 환자가 최면상태에서 자신의 증상이 발생하게 된 과거 사건들을 설명하게 하자 증상이 호전됐다고 보고했다.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는 이 환자를 안나 오(Anna O.)라 칭하고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라는 공동저서에 히스테리 완치 사례로 발표했다.



    이후 프로이트는 병을 만드는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며, 그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증상을 없애는 최면요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곧 최면요법의 한계에 부딪혔다. 어떤 사람들은 도무지 최면에 걸리지 않았으며, 또 최면치료를 통해 사라진 증상이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환자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프로이트는 최면 상태가 아닌 멀쩡한 정신으로 과거를 이야기하는 ‘자유연상법’을 시도했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정신분석학이 탄생했다. 프로이트는 ‘안나 오’야말로 사실상 정신분석을 창시한 사람이라고 말했으나, 실제 그를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첫 환자 ‘안나 오’ 레이스 전시회

    안나 오가 수집한 레이스 작품들과 빈 응용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포스터.



    1953년 프로이트의 전기를 출간한 어니스트 존스는 정신분석 관련 책마다 모두 등장하는 ‘안나 오’의 본명이 베르타 파펜하임(Bertha Pappenheim)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사실 빈 상류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프로이트와 브로이어는 저서에서 ‘안나 오’의 본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주변 정황과 아버지가 죽은 날짜까지 기재해 상류층 사람들은 안나 오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고 한다. 파펜하임은 이 때문에 심각한 배신감을 느꼈고 정신분석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파펜하임은 그 후 빈을 떠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여성운동에 뛰어들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파펜하임은 명석한 두뇌와 판단력의 소유자였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과도한 애착증세를 보이던 파펜하임은 20세 무렵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극심한 히스테리 증상을 보여 브로이어의 치료를 받게 됐다. 그 후 29세가 되어 독일로 건너갈 때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독일로 간 파펜하임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임에도 불우 이웃 위해 평생 바쳐

    프로이트의 첫 환자 ‘안나 오’ 레이스 전시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아이, 부엌, 옷 따위에 나를 구속시키지 않겠다’라며 결혼을 거부하고, 20여 년 동안 유대인 여성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미혼모와 고아, 창녀들을 위한 보호소 마련에 힘썼다. 또한 미혼모와 사생아를 외면하는 남성 위주의 유대인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독일 여성운동의 선구자인 파펜하임의 취미는 어이없게도 레이스 수집이었다. 레이스 만들기는 ‘유한부인들의 무의미한 시간 때우기’라며 경멸해 마지않던 파펜하임이 평생 300여 종의 레이스를 수집했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파펜하임은 죽기 1년 전인 1935년 빈을 마지막으로 방문해 자신의 레이스 수집품을 빈 응용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레이스 수집품 전 품목이 빈 응용미술관에서 최초로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20세기를 뒤흔든 두 가지 주류-여성운동과 정신분석-의 선구자와 레이스 수집. 인간의 복합성에 대해 ‘안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아무튼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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