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9

2008.04.01

한솔교육 시위 사태 MB 정부는 어이할꼬

참여정부가 풀지 못한 특수고용직 해고 문제 … 법원 판결 이후에도 노사 입장 평행선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8-03-26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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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솔교육 시위 사태 MB 정부는 어이할꼬

    서울 마포구 공덕역 한솔교육 앞 인도에 불법 주차된 시위 차량.

    “멈출 수 없는 우리의 투쟁/ 아무도 우릴 막을 수 없어/ 노동자 자본가 사이에 결코 평화란 없다….”(노동해방가)

    3월17일 오후 6시30분,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 퇴근길을 재촉하는 회사원들의 귓가에 억센 노동가요가 울린다.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 사이에서 한 학습지노동조합 관계자가 ‘부당해고 철회, 원직복직’이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다. 그 뒤로는 승합차에 매달린 현수막의 ‘370일째’라는 문구가 1년여의 지난(至難)한 노사 갈등을 웅변한다.

    위탁교육 계약 맺은 학습지 교사 계약해지가 발단

    한솔교육 노조의 시위 현장. 지난해 3월 시작된 시위가 어느새 만 1년을 넘어 두 돌을 향해 치닫고 있다. 달라진 것이라곤 집단농성으로 시작된 시위가 법원 판결로 인해 1인 시위로 바뀌었다는 점뿐. 회사 건물 앞을 휘감은 불법 현수막과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 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노사 갈등은 공덕역 주위에 밀집한 직장인은 물론, 인근 서울서부지검 및 지법 판·검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졌다.

    “지난 대통령 취임식 날, 청와대로 향하는 대통령을 보려고 시민들이 공덕역 길가로 몰렸어요. 그들을 통제하는 경찰관과 구청 공무원을 본 순간 ‘아차’ 싶더군요. 취임식의 원활한 진행을 이유로 불법적으로 방치된 노조 승합차 철거를 요청했어야 했는데…. 정말이지 이런 ‘떼법’을 방치하는 공무원들에게 매일 절망하고 있습니다.”(정학균 한솔교육 상무)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솔교육 임직원은 이 시위로 회사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불법시위가 장기화되면서 그간 회사가 쌓아온 명예와 도덕성이 실추됐다는 것이다. 그로 인한 물질적 피해도 천문학적이라며, 불법시위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공권력에 대해 억울함을 넘어 분노까지 쏟아낸다.

    한 대리급 직원은 “명색이 지식과 양심을 파는 교육기업인데, 주위에서 ‘노동자를 부당해고하는 악덕기업’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대다수 직원들은 “우리 회사는 노조는 물론 노조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회사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은 회사와 무관한 민주노총 산하 관계자들일 뿐”이라고 해명한다.

    서울 도심 오피스빌딩 앞에서 벌어지는 부당해고 또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노조의 강경시위는 그리 낯설지 않다. 특히 1년 이상 끄는 장기투쟁, 그것도 극심한 소음과 물리적 충돌 속에서 진행되는 불법시위에 다시금 눈길이 쏠리고 있다. 노사문제의 실용적 해결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풀지 못하고 숙제로 남긴 특수고용직(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대리운전사, 방송작가 등) 문제를 대표하는 ‘한솔교육 사태’의 발단은 무엇일까.

    국내 5대 학습지(방문교사) 업체인 한솔교육은 2006년 김진찬(34) 씨와 1년간의 학습지교사 위탁교육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1년 뒤 회사 측은 실적 저조와 고객 불만족을 이유로 김씨에게 계약해지를 요구했다. 김씨와 학습지노조는 즉각 한솔교육 점거농성에 들어갔고, 회사 측은 후퇴 없는 대응으로 일관해 사태를 키웠다. 일견 노동법에 근거한 해고절차 문제만 따지면 될 것 같지만, 이 사태의 배후엔 10년 이상 지속된 학습지 회사와 노조 간의 깊은 갈등이 숨어 있다.

    학습지 회사와 노조 갈등 10년 이상 지속

    회사 측은 김씨의 불성실한 행동이 ‘계약해지 사유’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김씨가 위탁계약서를 작성한 ‘독립사업자’라는 점에 방점을 둔다. 이미 대법원이 내놓은 ‘학습지 교사를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그 근거다.

    반면 학습지노조의 입장은 정반대다. 해고사유는 물론 해고절차에서의 부당성을 내세울 뿐 아니라, 배경도 의심스럽다는 것. 특히 김씨는 한솔교육을 대표하는 학습지노조 대의원으로 출마를 준비하던 중 해고당했기 때문에 그의 해고를 노조 와해 시도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습지 교사들의 권익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 같은 입장 차이는 1년여 동안의 팽팽한 대립에서 더 악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미 회사 측은 법원에 노조의 단체행동 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법원이 “노동자의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본사와 영업소의 관리권과 점유권 등이 침해당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한 것. 이에 회사 측은 “불법 노조의 억지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고 환영했지만, 노조는 “법원의 가처분 신청 수용은 비일비재한 일”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다 전국학습지노조 위원장마저 지난해 9월 강제 연행된 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면서 노사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이 사태는 일차적으로, 노동자 가운데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 할 수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기본권 개선 문제가 핵심이다. 4대 보험 제외는 물론 신분상 불안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위해 노사정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지난 수년간 보호방안 마련을 위해 논의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별 성과가 없었던 만큼 단기간에 해결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근원적인 해법 찾기도 난망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또한 만만치 않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사 양측의 협상을 가로막는 장벽, 즉 해고근로자에 대한 ‘복직’ 문제다. 학습지노조 측은 “한솔교육뿐 아니라 다른 학습지 회사들의 행태도 엇비슷하기 때문에 김씨에 대한 부당해고를 반드시 철회하겠다”는 초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불법시위로 회사를 망가뜨려놓고 원직복직을 주장하다니,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타협 여지를 봉쇄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협상은커녕 감정만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노조 측 “원직 복직시켜라” 회사 측 “불법시위에 억지 주장”

    노조 관계자는 “수많은 학습지 교사들이 회사의 위세에 눌려 악화되는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다”면서 노동법 개정 투쟁까지 하겠다고 외치지만, 학습지 회사들은 “이런 식의 억지 주장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지 말라는 논리 아니냐”며 “국가기관인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결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는 나라에서 누가 사업을 하겠느냐”고 분노한다. 입법을 통한 해결이 최선이라지만, 국회의원들의 약속은 기약이 없을 뿐이다.

    “아흔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 번 승리 단 한 번 승리/ 바리케이드 넘어서 넘어/ 마침내 노동해방….”(노동해방가)

    오늘도 한솔교육 건물 앞 인도에서는 불법시위 차량이 출퇴근 시간에 확성기를 틀어놓고 하루의 투쟁기록을 또 경신하고 있다. 실체 없는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노사 모두 패배의 길로 이미 접어든 셈이다.

    새 정부 노동정책 방향은?

    복직 명령 대신 돈으로 해결 추진 “역시 실용주의”


    한솔교육 시위 사태 MB 정부는 어이할꼬

    3월13일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열린 노동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

    “과연 이명박 정부다운 답안이다.”

    한솔교육 사태 같은 노사 간 무한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새 정부의 대책은 무엇일까. 정답은 ‘원직복직이 아닌 보상’이 될 듯하다. 즉, ‘실용정부’의 첫 ‘실용정책’인 셈이다.

    노동부는 3월13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활력 있는 노동시장’을 위한 유연성 확보 방안으로 사용주가 부당해고를 하더라도 복직 의무를 지지 않고 금전으로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노동자가 원할 때’만 금전보상제도를 사용할 수 있지만, 법 개정이 이뤄지면 ‘사용자의 신청’에 의해서도 금전보상제도가 사용될 수 있기에 노동단체 안팎에서 치열한 논쟁이 예고된다.


    이 제도가 주목받는 까닭은 사용주가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도 복직 명령을 이행하는 대신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부당해고가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노동부의 이러한 발표에 ‘제한적’이라는 단서가 달렸음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내용이 만족스럽다”고 화답했다. 이 제도는 노사정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내년에 관련 법 개정이 추진될 전망이다.

    물론 이 제도는 아직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학습지노조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그러나 일부 노동 전문가들은 “그동안 보상신청을 하고 싶어도 노조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부 악성 노사갈등에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 전망을 내놓는다. ‘회사의 보상 요청=(불법) 회유’라는 편견을 깨는 효과가 의외로 크리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원직복직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해온 노조가 이를 수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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