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8

2008.03.25

삼성 사법처리 않고 세액만 추징?

특검팀 내부 불신 속 2006년 신세계 비자금 사건 벤치마킹說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3-19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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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사법처리 않고 세액만 추징?
    [장면 1] 지난해 12월20일 삼성특검 특별검사에 조준웅 전 인천지검장이 임명됐다. 공안통인 조 특별검사의 임명에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반발했다. “검찰 출신은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김 변호사와 사제단 측이 밀던 특별검사 후보는 박재승 변호사(현 대통합민주신당 공천심사위원장)였다.

    삼성특검 수사팀(이하 특검팀)을 꾸리는 과정에서도 말이 많았다. 당시 많은 검사와 검찰 수사관들이 특검팀에 자원했다. 특히 특수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일하고 있던 베테랑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 상당수는 특검팀에서 배제됐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일 잘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을 고의로 배제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국세청도 특검팀에 비협조적이었다. 특히 금감원은 특검팀의 조사인력 파견 요청을 사실상 거부하고 검찰 파견 직원 2명만 보내는 것으로 생색을 냈다. 이즈음부터 언론에는 국세청, 금감원이 특검팀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장면 2] 올해 2월21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에 대한 출국금지 보도가 몇몇 언론에서 터져나왔다. 특검팀은 긴장했다. 홍 관장에 대한 출국금지는 특검팀 내부에서조차 비밀리에 진행되던 사안이었다. “내부 정보가 밖으로 샌다”는 목소리가 특검팀 내부에서 나오던 때라 분위기는 더욱 좋지 않았다. 이 사건은 특검팀 내의 불신을 키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특검팀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문서출납대장이 쓰레기더미에 섞여 나갔고, 몇몇 기자들이 이를 근거로 기사를 쓴다는 소문도 이즈음 나왔다. 분위기는 점점 흉흉해졌다. 최근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특검팀 내의 불신이 여전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고 말했다.



    위 두 장면은 ‘현재진행형’인 삼성특검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삐거덕대는 것이 분명한, 그러나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특검팀의 숨은 모습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특검팀이 제 구실을 못한다”면서 특검팀을 성토하는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의 주장과도 맥을 같이한다.

    특검팀의 1차 수사가 3월9일로 종료됐다. 특검팀은 그간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창왕찰래(彰往察來)’라고 자평했다. ‘지나간 것을 밝히고 미래를 살핀다’는 뜻이다. 하지만 특검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60일간 수사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특검팀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제단의 한 신부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창왕한 게 뭐가 있죠?”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동안 특검팀이 해놓은 게 뭐가 있느냐는 얘기였다.

    물론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3000여 개에 이르는 차명계좌가 특검팀 수사로 확인됐으며, 이 계좌에 들어 있는 자금이 삼성의 비자금임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김 변호사와 사제단 측의 생각은 다르다. “비자금의 존재는 이미 검찰 조사와 사제단 기자회견에서 밝힌 만큼 특검팀의 소임은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특검팀은 60일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된다.

    김 변호사와 사제단 측은 자칫 삼성특검이 이 회장 일가에 면죄부만 주고 끝날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이명박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떡값검사’ 명단(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 이종찬 민정수석)을 추가 공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검팀에 대한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김 변호사의 변호인 이덕우 변호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 주요 요직 내정자들이 떡값 명단에 포함된 상황이니 특검팀의 수사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박재승 변호사가 특별검사가 됐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검팀 국세청에서 자료 받아간 것 놓고 해석 분분

    이런 와중에 특검팀의 수사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단서도 일부 포착돼 관심을 끈다. 특검팀과 국세청에 따르면, 2월 중순 삼성특검은 국세청에서 2006년 신세계그룹의 차명계좌 사건과 관련된 파일 일체를 받아갔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한 국세청 직원도 따로 불러 조사과정 전반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2006년 8월 ‘참여연대’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신세계 차명계좌 문제는 신세계그룹 총수 일가가 대규모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하다 적발된 사건이다. 당시 국세청이 확인한 신세계의 차명계좌는 수백여 개, 금액도 수천억원에 달했다. 국세청은 두 차례 주식배당에 대해서만 35억원가량을 과세했고, 명의신탁된 주식에 대한 증여세로 신세계 법인과 총수 일가에 수백억원대의 세액을 추징했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국세청 관계자는 “신세계 측이 깔끔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추징세액을 냈다”고 말했다.

    특검팀과 국세청 주변에서는 특검팀이 국세청에서 자료를 받아간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신세계 차명계좌와 삼성 비자금이 서로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무성하다. 그러나 삼성그룹과 특검팀 관계자들은 “특검팀이 신세계 조사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자료를 받아간 것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중심을 둔다. 더욱이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유사 사건이라는 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해 이 같은 가능성을 높였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도 “특정 기업이 수천 개 차명계좌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용한 전례가 없다. 아마도 특검팀이 사례 수집 차원에서 자료를 가져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세계 비자금과 삼성 간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신세계 사건이 세액추징만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당시 국세청은 신세계에 대한 조사에서 차명주식이 ‘단순 명의신탁’이라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검찰 고발 등 사법처리는 시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주주의 증여세 탈루, 증권거래법 위반 등이 확인됐지만 신세계는 이를 피해 나갔다. 만약 신세계 사례가 삼성그룹에 적용된다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지난해 10월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 당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국세청이 신세계 대주주 일가의 차명보유 주식을 밝혀내고도 과세조치만 하고 이들을 증여세 포탈로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은 ‘전속고발권’을 가진 국세청의 직무유기”라며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그러나 국세청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전군표 국세청장은 “지금까지 주식 명의신탁에 대해 조세포탈범으로 고발한 사례가 없다. 국세청 과세의 정당성은 최후 법원에서 인정받게 되는데, 명의신탁이 법원에서 조세포탈로 인정된 사례도 없었다”고 답변했다.

    이제 특검팀에 주어진 시간은 40일가량이다. 그것도 2차 연장시한을 모두 사용했을 때 얘기다. 과연 특검팀은 의혹의 핵심인 비자금 사용처와 편법승계 의혹을 밝힐 수 있을까. 특검팀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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