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5

2008.03.04

부적절한 권력의 폐해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www.gong.co.kr

    입력2008-02-27 16: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부적절한 권력의 폐해

    <b>모던 타임스 I, II</b><br>폴 존슨 지음/ 조윤정 옮김/ 살림 펴냄/ 1600쪽/ 5만원

    “그는 4억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부(富)의 과정과 행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오히려 그는 “1940년대 말까지 인구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누구인가? 한때 제3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스스로를 치켜세웠던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전 수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독립을 얻은 신생국가들에 찬물을 끼얹었던 사람들은 부의 생성 메커니즘에 대한 무지와 경험 부재로 무장된 직업 정치인이었고, 이 가운데 대표주자가 17년간 인도를 통치했던 네루 수상이다. 그는 인도를 수십 년간 낙후한 국가로 머물도록 만들어버렸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인도와 네루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최근까지 부의 생성 메커니즘에 대한 무지로 많은 사람을 곤경으로 몰아넣었던 직업 정치인이나 자칭 운동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역사서는 어제의 문제뿐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내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과 지식을 제공한다. 20세기가 낳은 걸출한 역사학자 폴 존슨의 ‘모던 타임스 I, II’는 원서 초판이 1983년에 나온 점을 감안하면 너무 늦게 출간됐다. 이 책이 일찍 나왔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폴 존슨의 ‘지식인의 역사’ ‘유대인의 역사’ 등도 인상적으로 읽었지만 이 책은 앞의 두 시리즈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모던 타임스’는 도덕적 상대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하는 20세기 초엽부터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까지 다루고 있다. 1권은 상대주의 시대, 전체주의의 유토피아에서 시작해 유럽의 종말까지를, 2권은 독일의 러시아 침공으로 시작되는 세계사의 분수령에서 1970년대 집산주의 그리고 자유가 회복되는 90년대 초반까지를 다룬다. 저자는 1919년 5월29일, 200년 이상 세계를 지배하던 뉴턴의 우주론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의해 대체되는 순간이 현대세계가 등장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척도에 불과하다는 이 이론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았는데, 그것이 바로 도덕적 상대주의의 등장이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두고두고 인류의 앞날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르크스나 히틀러 등도 결국 도덕적 상대주의의 득세와 관련이 있다.



    한편 레닌이 주도하는 러시아혁명과 히틀러의 최종해결책, 마오쩌둥이 이끄는 문화대혁명의 실상은 독자들을 경악시킬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집단 테러, 처형, 유배 그리고 공포에 바탕을 두고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지배하는지, 개인적 책임과 양심을 잊어버린 인간이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레닌은 자신이 만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두고 “특수한 종류의 곤봉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냉혹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계획과 관리가 부를 창출할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이 가져온 결과는 러시아 경제의 철두철미한 파멸이었다. 레닌이 실시한 신경제정책은 1921~22년 겨울에만 300만명의 아사자를 낳았다. 당시까지 세계 최대의 식량 수출국이었던 러시아는 미국 자본주의 농업의 도움으로 간신히 재앙을 피했다.

    그런데 당혹스러운 사실은 레닌의 신경제정책이야말로 20세기를 지배한 사회공학의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확실한 실패에도 2차 대전이 끝난 뒤 대다수의 신생국가들은 사회공학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을 운용했고, 그 결과 실패를 맛보게 된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지식인들의 태도다. 집산주의와 사회공학의 실패가 너무나 명확한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스탈린을 찬미하는 데 열을 올리는 지식인들의 모습은 차라리 참담할 정도다.

    한편 저자는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1953~61년까지 재임한 아이젠하워를 든다. 아이젠하워는 왜 미국의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아이젠하워가 부의 창출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드문 정치가라는 점을 지적한다.

    “아이젠하워가 가장 염려한 악몽은 미국에서 과도한 방위비 지출과 방만한 복지기구의 운영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었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이런 결함은 1960년대 말 현실화되고 만다.”

    1960년대 아이젠하워의 악몽을 시작한 인물은 존 F. 케네디이고 이를 완성시킨 인물은 위대한 사회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턱없는 재정팽창을 시도한 린든 존슨 대통령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한 나라의 부와 생활수준의 향상은 계획과 관리에 대한 유혹에 굴복하는 순간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권력이란 적절히 제어되지 않을 때 언제든지 국민을 괴롭힐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저자가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 49년의 마오쩌둥, 인도의 국민회의당 위원들에 대해 내린 평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통치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치 외에는 다른 일에 몸담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평생을 오로지 ‘민주주의’라는 신축적인 개념을 악용하는 데 바쳤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