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5

2008.03.04

신성해운 검찰에 억대 금품 로비

비자금 사용처 명세 …2000년 전후 검찰 조사 대비, 각종 명목 100만~1천만원 수시 사용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2-25 1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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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해운 검찰에 억대 금품 로비
    “검찰로 건너간 (신성해운의) 로비자금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2000년 세무조사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에 사용하며 권력기관을 관리한 부분이 모두 밝혀지길 바란다.”

    정상문 전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시점을 감안해 전 비서관으로 표기함)의 국세청 로비 의혹에 연루된 신성해운의 전직 임원 서모(56) 씨의 말이다. 그는 정 전 비서관의 전 사위 이모(36) 씨와 함께 신성해운과 권력층의 부적절한 관계를 검찰에 고발한 장본인이다.

    최근 몇몇 언론은 정 전 비서관이 연루된 신성해운에 대한 2004년 국세청 특별세무조사 외에도 2000년 시행된 또 다른 국세청 세무조사 당시 신성해운이 검찰과 국세청 등 관련기관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억대의 돈을 검찰에 뿌렸고, 국세청 직원들에게도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무차별적으로 금품을 살포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뿌려진 자금은 10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전해진다.

    날짜·금액·전달자 일목요연하게 정리

    이와 관련, ‘주간동아’는 최근 고발인 이씨와 서씨에게서 당시 조성된 신성해운의 비자금 사용처와 금액 등이 상세히 기재된 자료를 넘겨받았다. 이미 언론이 ‘제2의 로비리스트’라고 부르는 이 자료엔 1999~2001년 5월까지 비자금의 사용처가 날짜, 금액, 명목, 전달자와 받은 사람 등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특히 지금까지 신성해운의 정·관계 로비와 관련해 큰 관심을 받지 않았던 검찰 관계자들의 이름도 다수 눈에 띄어 더욱 관심을 모은다.



    자료에 따르면 신성해운은 2000년 중반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는 시점부터 국세청을 상대로 한 로비에 적극 나섰다. 첫 로비활동의 명세가 등장하는 시기는 같은 해 7월경이다. ‘세무조사 관련 자문휴가비’ ‘주차비 및 식대, 차대 등’의 명목으로 로비한 금액이 등장하고 있는 것. 이때만 해도 로비에 들어간 비용은 5만원에서 30만원가량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금 접대가 시작된 같은 해 7월 말부터 로비 비용은 ‘단위’가 달라진다. 현금으로 로비를 한 경우 적게는 100만원이 건너갔고, 로비 대상이 (국세청) 반장급 이상일 때는 단위가 500만원 이상으로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성해운은 심지어 국세청 직원들의 대리운전비까지 지급한 것으로 돼 있다(2000년 8월14일 로비 명세). 국세청 세무조사 기간 내내 술 접대도 끊이지 않았다.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 이상이 접대비로 지출됐다.

    신성해운 검찰에 억대 금품 로비

    신성해운의 비자금 사용 명세(1999~2001년, 왼쪽). 정상문 전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

    2000년 11월경부터는 검찰에 대한 로비가 집중됐다. 국세청 세무조사 이후 이어진 검찰조사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검찰에 대한 로비는 처음부터 단위가 달랐다. 술 접대의 경우 대부분 100만원을 넘었다. 2000년 12월 말에는 술값으로만 하루 300만원가량이 지출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에 대한 인사 명목으로 1000만원(2000년 11월24일)이 쓰였고, 한 검찰계장은 명목을 알 수 없는 이유로 500만원을 받아갔다.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술 접대도 12월 말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해를 넘긴 2001년까지 로비는 지속됐다. 심지어 2001년 1월30일에는 ‘주대 및 고스톱’으로 100만원을 쓴 것으로 자료는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씨는 “검찰 직원들과 고스톱을 쳐서 돈을 잃어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검찰에 대한 로비가 성공한 뒤 준 것으로 보이는 4000만원에 대해서는 ‘성공’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고(2001년 3월8일), ‘약속’이라는 항목에는 1억원이 전달된 것으로 돼 있다(2001년 3월13일). ‘약속’을 한 것으로 돼 있는 검찰 직원에게는 같은 해 4월3일 ‘성공’이란 명목으로 1억원의 현금이 추가 지급됐다(사진 참조).

    이 자료와 관련해 서씨는 “신성해운에서 일할 당시에도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돈이 국세청과 검찰에 로비용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몰랐다. 나도 이 자료를 신성해운 측 간부에게서 입수한 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0년 로비를 통해 사건을 무마해본 경험이 있는 신성해운이 2004년엔 더욱 과감하게 정·관계 로비를 시도한 게 아니었나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신성해운에 대한 검찰수사는 속도를 내고 있다. 의혹의 핵심인 정 전 비서관이 1억5000만원의 뇌물수수 혐의로 이미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고, 관련자들의 실명도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김정복 국가보훈처장(2004년 당시 중부국세청장)도 정 전 비서관의 부탁을 받고 국세청 세무조사를 무마하는 데 앞장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건의 파장이 어디로 튈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을 정도다.

    세무조사 과정서 검찰 간부 개입 가능성

    그러나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전현직 검찰 고위인사 여러 명이 이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유독 이들에 대해서는 관련 수사나 보도가 이어지지 않아 궁금증을 낳고 있다. “검찰도 조사해야 한다”는 서씨의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고발인인 정 전 비서관의 전 사위 이씨도 검찰 진술서 등에서 “신성해운 간부 김모 씨가 검찰 간부에게 로비를 했다. 정 전 비서관도 검찰의 도움을 받아 사건 해결을 도왔다”고 밝힌 바 있어 의혹을 더한다.

    최근 ‘주간동아’가 단독입수한 이씨와 서씨 변호인과의 대화 녹취록에도 신성해운 세무조사 과정에 검찰 간부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관심을 끈다. 다음은 녹취록의 일부다(녹취록에 등장하는 관련자들의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변호사 : 그래서 서○○ 씨 구속된 사실을 어떻게, 어떤 경위로 알았습니까?

    이○○ : 제가 그때 가족들과 저희 처갓집 가족들과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있었는데… 장인어른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서○○ 씨가 구속된다고. 오늘 구속을 한다고. 구속영장을 치고 있다고. …제가 김○○ 상무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변호사 : 구체적으로 김○○ 씨가 만난 서울중앙지검 간부가 ○○○ 검사?

    이○○ : 예, 그렇게 얘기 들었습니다.

    변호사 : 들었죠?

    이○○ : 예.

    녹취록에 거론된 전직 검찰 간부 A씨는 신성해운의 2004년 로비리스트에서는 신성해운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서울 서초구 소재 한 술집에서 신성해운 간부 김모 씨에게서 현금을 받은 대가로 신성해운 간부들의 불구속 기소와 집행유예를 도왔다는 것이다. 고발인 서씨와 이씨는 A씨 외에도 “당시 또 다른 검찰 고위간부가 신성해운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A씨는 모든 의혹을 부인한다. 그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정상문 비서관이라는 사람과 일면식도 없다. 신성해운이라는 회사 이름도 들어본 바 없다. 최근 시중 정보지에 내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말은 들었지만 사실무근이어서 무시하고 있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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