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4

2008.02.26

퍼주기·화장질 서투른 ‘햇볕’ 5년

남남갈등 커지고 드러난 성과도 부족 정상회담 부도수표 내내 골칫거리 될 듯

  • 오남북 북한전문가 ossnn@hanmaill.net

    입력2008-02-20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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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주기·화장질 서투른 ‘햇볕’ 5년

    노무현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에 따라 집권기간 중 대북 지원 규모를 크게 늘렸다. 지난해 6월29일 전북 군산항에서 북한에 차관으로 보낼 쌀 3000t을 싣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서 청와대의 소임을 검토하는 건 꽤나 넓고도 심각한 토론영역이다. 무엇이 문제였나? 지난해 대통령선거 결과는 노무현 정부가 해온 일들에 국민이 심판을 내린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서툴렀다’. 남북한 문제에 국한한다면 지난 5년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상징하는 단어는 두 가지다.

    첫째는 ‘퍼주기’. 혹자는 ‘햇볕’으로만 북한을 다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퍼주기’에 대한 비판과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은 그 궤가 다르다. 햇볕정책을 ‘나쁘다’ ‘좋다’고 단언하는 것은 어리석다. 정책은 그 자체로 용도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퍼주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둘째는 ‘(정치적) 화장질’. 쌀과 비료를 북한에 주고 그 대가로 정치적 쇼를 벌여온 것을 말하는 ‘화장질’은 ‘퍼주기’와 직결된다. 특정 사안을 원칙도 없이 집행하면서 물자를 주고 정치적 단기이익만 노린 행위는 민심에 역행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이산가족 상봉을 받아오면서 쌀과 비료를 줬지만, 결과는 정치적 서커스였다. 경공업품과 광산물을 교환한다고 떠벌렸지만, 일방적 지원 형식으로 마무리됐다. 구린내를 풍겨온 남북협력기금은 ‘통일 장사꾼’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토록 자랑하던 개성공단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아니올시다’다. 정부 지원으로 버티는 금강산 관광의 적자 구도를 일소할 방안도 없다. 이렇듯 성과물이 빈약한 ‘정치적 지원 행위’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랑거리 개성공단도 사실상 속 빈 강정



    남북문제에서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과 달리 모든 결정의 중심에 서 있었다.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피는 것을 뜻함)은 철저히 대통령과 측근들의 코드에 근거했다. 현장이 무시된 ‘책상물림’의 이상론과 정치적 화장질은 분단시대의 대계(大計)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올바른 ‘기획’이 없었던 것이다.

    한 정권의 힘(power)은 목적이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으로 가늠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노무현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분명 실패다. 대내적으로는 남남갈등이 커졌고, 드러난 성과도 미미하기 그지없다. 정권 말기 정상회담이 만들어놓은 ‘부도수표’는 내내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지혜로운 자와 일을 의논하지도 않았고, 지혜롭지 않은 자에게 일을 맡겨 망치는 상황도 있었다. 청와대는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의 사표를 뒤늦게 수리했지만, 정보기관은 그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지난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속살도 조금씩 드러나는 중이다. 정상회담을 추진한 목적과 목표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되짚어봐야 하는 상황이다.

    남북관계에서 2006년은 무척 중요했다. 이 땅이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핵 분진이 한반도에 날렸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는 이 사태를 제어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이번 숭례문 화재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대응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시스템화를 강조했지만, 한반도 문제는 전형적인 ‘퍼주기’ ‘화장질’의 고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적어도 남북문제에서만큼은 민심에게서 크게 일탈돼 있었다.

    남북한 문제에도 코드 적용 … 자책은 별로 없어

    청와대가 한반도 문제를 읽는 눈은 여러 차례 변했다. 정권 초기에는 대북송금 특검과 대통령 탄핵이 맞물리면서 안일한 대응이 이어졌다. 국정원, 통일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그 모든 일의 사령탑이었다. 물론 그 ‘위’는 대통령이다. 정권 초기에 만들어놓은 로드맵이 교과서처럼 여겨졌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다. 200만kW 대북송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빅 카드’는 한 편의 쇼로 마무리됐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활용한 정상회담 추진도 무산됐다. 2006년 7월의 미사일 발사, 10월의 핵실험 등 기획 부재가 가져온 노무현 정부의 아마추어적 접근 결과는 참혹했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상황논리를 강조했다. 그러곤 남을 탓했다.

    지난해 10월, 그러니까 북핵실험이 벌어진 지 딱 1년 만에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은 어땠는가. 정상회담 이후 서울은 북방한계선(NLL)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노무현 정부는 10·4 공동선언의 성과를 자랑했으나 내용물엔 그들의 미숙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협력단지는 꽤나 괜찮은 사업으로 여겨졌지만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문제가 불거졌다. 기술적 검토가 사전에 이뤄졌는지 의문시되는 대목이다. 전력송전에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조선협력단지 건설이 과연 타당할까. 이 사업이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말 그대로 ‘부도어음’이 될 것이다. 요컨대 수많은 브레인을 동원한 정상회담의 결과물치곤 지나치게 엉성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노무현의 청와대는 ‘코드 인사’를 했다. 대통령과 힘센 측근들의 의중에만 맞춘 접근법은 남북한 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위한 참목적성이 없었고, 실천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책임은 매우 크다.

    한 정권의 행보를 톺아보는 일은 단순히 비판만을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통해 ‘과제’를 발견하고 검증하며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자책이 별로 없다. 항우(項羽)의 초가(楚歌)처럼 ‘때를 잘못 만나’ 발걸음을 멈췄다고만 생각하는 건 아닌가. 그 고집스러운 태도로 남북관계에서 민족적 접근의 본질 또는 당위가 훼손됐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다.

    2월25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다.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남북관계가 민족문제라는 점은 통일부 존치론의 확산에서도 확인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점으로만 보면, 남북관계는 한미동맹에 밀려 후순위로 전락하는 중이다. 우리가 결코 주도하지 못하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 남북한 문제의 전제조건이 됐다.

    앞으로 자주적 내교(內交)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또한 남북관계는 ‘새로운 각론’에 입각해야 한다. 새 정부가 다시 초가(楚歌)를 부르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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