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4

2008.02.26

“선거로 뽑는 국회의원 미래엔 사라진다”

미래학의 대부 짐 데이터 교수 “인터넷 통해 찬반 결정, 조만간 눈앞 현실”

  • 하와이=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입력2008-02-20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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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란 말이 있다.
    • 상상력으로 미래 영역을 넓히자는 뜻이다.
    • 그러나 막연한 꿈만으로는 부족하다. 과학적 추론으로 미래상을 그려서 대비해야 한다.
    •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데 상상력과 과학적 방법론을 함께 활용하는 선구자적 미래학자가 짐 데이터 교수다.
    •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동아일보 출판국 고승철 전문기자가 하와이 현지를 방문했다. 고 전문기자는 현존하는 대표적 미래학자들인 앨빈 토플러, 존 나이스비트 등을 이미 인터뷰한 바 있다. (편집자)
    “선거로 뽑는 국회의원 미래엔 사라진다”
    “미국 하원의원은 영어 단어로 대표자(Representative)라고 한다. 의원은 국민을 ‘대표’해 대의정치를 수행한다. 의원은 법률을 만드는 일을 맡으므로 입법자(lawmaker)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미래에 이들은 사라질 것이다. 국민이 의원들에게 입법 업무를 대리시키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직접 찬반 결정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의 대부’로 불리는 제임스(약칭 짐) 데이터(74) 하와이대학 교수는 이같이 미래 정치체제를 전망했다. 투표로 국민 대표자를 뽑아 그들에게 입법을 맡기는 간접민주주의 체제는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주인(국민)의 뜻대로 일하지 않는 대리인(의원)에게 거액 연봉과 호화로운 사무실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문학적 상상력은 미래 전망하는 눈 확장

    이런 도발적 전망을 밝히는 데이터 교수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로 꼽힌다. 별다른 이론적 근거 없이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는 사이비 미래예측가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인물이다. 그는 1967년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협회’를 만들어 미래학이란 학문을 처음으로 정립했다. ‘제3의 물결’ 등 대중용 미래학 서적을 저술해 이름을 떨친 토플러와 달리 데이터는 대학에 남아 학문적인 방법으로 미래학을 연구해오고 있다. 그의 열정이 가득 찬 하와이대학 미래학연구소(www.futures.hawaii.edu) 연구실로 2월6일 찾아가 지구촌의 미래상에 대해 들었다.

    -데이터 교수가 엮은 ‘다가오는 미래’가 최근 한국에서 650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으로 번역 출판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 독자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겠다. 내용이 어려워 외면당할까 걱정했는데…. 여러 신문 서평에서도 대서특필했다고 한국의 출판 관계자가 알려왔다. 한국 독자 여러분께 감사히 생각한다.”

    -그 책에서 ‘미래는 과거에 있다’는 제목의 논문을 프롤로그로 내세웠던데….

    “과거의 기술이 어떻게 인간 행동을 변화시켰는지를 잘 살피면 미래의 흐름을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요즘도 기술 변화가 어떤 인과관계(consequence)를 형성할지 면밀히 관찰한다.”

    “선거로 뽑는 국회의원 미래엔 사라진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라크 파병안에 대해 찬반투표를 하고 있는 17대 국회의원들. 짐 데이터 교수는 미래엔 간접민주주의 체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매일 시 두 편을 낭송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와 미래학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문학적 상상력은 미래를 전망하는 눈을 확장시킨다. 미래는 꿈과 이미지에 의해 움직이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될 것이다. 이런 미래상을 꿰뚫어보려면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강의시간에도 시 두 편을 낭송해 수강생들의 창의력을 자극한다. 시의 운율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기도 한다.”

    -바람직한 미래상은 꿈만으로는 건설하기 어렵다. 비용 문제를 고려해야 하지 않나.

    “물론이다. 경제적 요인을 경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학은 경제학자들이 연구하는 경제 전망과는 다른 분야다. 더 큰 스케일을 가져야 한다.”

    -미국 대학 연구기금의 상당 부분은 기업에서 지원하는 자금이다. 당장 유용한 학문이 아닌 미래학 분야에도 기업 후원금이 들어오나.

    “이상적인 사회 모델을 연구하는 미래학은 공공 성격이 강하다. 그냥 재미삼아 점치는 식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게 아니다. 예상되는 골칫거리가 생기지 않게 대안(alterna-tives)을 찾아야 한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더 나은 사회를 구상해야 한다. 그래서 공공 부문의 기금이 연구비로 지원되는 게 정상적이다. 민간 기업도 소비자 트렌드를 파악하거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연구비를 지원한다.”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협회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와 요즘도 교류하는가.

    “그는 40년 친구다. 우정과 학문적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요즘도 뉴욕에 가면 그의 아파트에서 묵는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토플러는 언론인이었다. 언론인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변화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어 통찰력을 기르는 데 적합한 직업인이다. 토플러의 성공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에서는 미래에 관한 기사가 활발하게 보도되지는 않는 편이다.

    “언론은 현실에 매몰되는 속성을 지녔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래를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인들이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한국 언론인들을 위해 특별 프로그램을 운용할 용의가 있다.”

    -한국에 유별나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허먼 칸이라는 걸출한 미래학자가 1960년대에 한국의 미래에 대해 예견한 바 있다. 그의 탁견은 매우 비슷하게 적중하지 않았는가. 미래학자에게 한국의 발전은 주요한 연구 대상이다. 한국은 정보기술(IT) 선진국이기도 해서 매력을 지녔다. 미래 전망이 밝은 나라로 보인다. 싱가포르도 미래가 유망한 나라다. 싱가포르에서도 미래학이 주목받는 학문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내게 2주일 동안의 특강을 요청했는데 여기 학교 업무가 바빠 응하지 못했다. 무척 아쉽다. 핀란드 호주 등에서도 미래학이 인기를 끈다. 헝가리 학자들도 미래학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세계 각국을 방문해서 변화상을 열심히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떤 나라를 주로 다니는가.

    “미래학 연구가 활발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국 동부의 노트르담대학 등에 자주 간다. 한국에도, 북한에도 가봤다. 한국인 제자와 함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IT 선진국 한국, 미래 전망 밝은 나라

    인터뷰가 끝날 무렵 어느 대학원생이 데이터 교수에게 강의 시작 시간이 임박했다고 귀띔했다.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미래학 세미나다. 데이터 교수는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수업을 참관할 것을 권유했다.

    이날 강의 주제는 ‘양자역학과 민주주의’. 물리학 이론과 민주주의가 무슨 연관을 가진 것인지 의아했다. 학생들에겐 ‘화성(火星)에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면 입법, 사법, 행정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겠는가?’라는 과제를 미리 내준 상태였다. 기존 정치체제와는 다른 새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 이런 파격적인 발상을 갖도록 한 것이다.

    “거대한 우주는 미세한 원자가 뭉쳐 이뤄졌다. 인간은 우주와 원자 사이에 존재한다. 그런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고 이어가고 있다. 이 사회를 이상적으로 꾸미려면 정치체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인터넷 발달은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할 것이다.”

    데이터 교수의 강의 내용은 물리학 정치학 철학 생물학 등 여러 학문을 통섭하는 경지에 올랐다. 이날 청강생 몇 명을 포함한 수강자 18명은 열띤 토론을 펼쳤다. 캄보디아에서 유학 온 스님도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데이터 교수는 큼직한 헬멧을 들고 일어섰다.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한다는 것이다. 티셔츠에 면바지 차림, 세계적인 석학인데도 거드름을 전혀 피우지 않는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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