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4

2008.02.26

무자화란(戊子火亂), 그 ‘개방’과 ‘방치’의 간극

  • 편집장 김진수

    입력2008-02-20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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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 남 남대문을 열어라~. 12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대문놀이’ 때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를 어쩝니까? 이젠 닫을 ‘대문’,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 역사적 상징물이라는 대문이 한순간에 깡그리 스러졌습니다.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은 아마도 이럴 때 쓰라고 있을 겁니다. 참으로, 참으로 그렇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전쟁의 잇단 수난에도 끄떡없이 600년간 지켜져온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한 70대 방화꾼의 개인적 화풀이로 인해 잿더미로 변한 이 비극을 저는 감히 ‘무자화란(戊子火亂)’이라 이름붙일까 합니다.

    방화범이 2년 전 창경궁 문정전(文政殿)에도 불을 지른 사람이며, 두 건의 방화 모두 제대로 받지 못한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 때문에 그랬다니 우선 그의 정신연령부터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건 우리 사회의 ‘빈틈’입니다. 2006년 2월 서울 중구청은 같은 해 3월부터 숭례문을 100년 만에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보도자료를 ‘자랑스럽게’ 뿌렸습니다. 그때 개최된 ‘숭례문 개방식’엔 이제 대통령 취임을 눈앞에 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도 참석해 개방의 북소리를 직접 우렁차게 울렸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근 1세기 만에 숭례문의 빗장을 푼 ‘간 큰’ 사람들은 있었으나 야간에 열린 문을 지키는 최소 인력조차 없었습니다. 이건 ‘개방’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여기에 ‘틈’이 있었습니다.

    사태가 난 뒤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이 책임 공방을 벌인 것도 ‘틈’입니다. ‘우리 문화유산 지킴이’를 자처해온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외유(外遊)성 해외출장 역시 ‘틈’입니다. 숭례문 화재보상금이 9508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곳곳에 틈이 나 있으니 국보인들 온전할 리 없는 게 당연지사입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터져나올밖에요.

    미국 CNN은 이번 화재를 두고 “역사가 불탔다”고 했습니다. 적절한 은유로 들립니다만, 실상 까맣게 타버린 건 역사뿐 아니라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무자화란(戊子火亂), 그 ‘개방’과 ‘방치’의 간극
    하지만 역사(歷史)는 비록 타버렸을지라도 역사(役事)는 남았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보다 숭례문의 물리적 복원보다 훨씬 절실한 역사(役事), 그것은 ‘개방’과 ‘방치’의 간극, 곧 나태했던 우리 마음의 ‘빈틈’을 메우는 일입니다.

    ‘틈’을 막아내지 못한 수많은 ‘문지기’들의 물어 마땅한 죄. 2008년 2월 화마가 휩쓸고 간 숭례문 앞에서 우린 모두 공동정범(共同正犯)입니다.

    편집장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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