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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 챔프들 복싱 부활 위해 총집합

유제두·염동균 등 87명 한국권투인협회 창립…초대 회장엔 4전5기 신화 홍수환

왕년 챔프들 복싱 부활 위해 총집합

왕년 챔프들 복싱 부활 위해 총집합
“일본은 현재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을 5명이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단 한 명의 챔피언도 없습니다. 세계복싱협회(WBA)와 세계복싱평의회(WBC)의 챔피언을 34명이나 배출한 복싱 강국 한국이 오늘날 일본에 이렇게도 뒤지다니 안타깝습니다. ‘대한권투 만세’를 부를 날을 학수고대합니다. 우리 권투인들이 나서서 한국 프로복싱을 살립시다.”

‘4전5기 신화’의 주인공 홍수환(58) 한국권투인협회(KBI) 초대 회장은 이렇게 사자후를 토했다. 허공에 펀치를 날리는 제스처를 쓰면서…. 그의 답답한 심경과 당찬 결의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몸짓이었다. 한국권투인협회가 사무실 문을 열고 현판식을 가진 1월25일 낮이었다. 사무실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조이프라자 빌딩 3층에 마련됐다. 이날 사무실 개소식과 현판식은 복서들의 친선 모임을 겸해 열렸다.

이상호 KBI 사무총장은 경과보고에서 “최요삼 챔피언의 사망 때문에 급조된 연합회는 아니고 이미 몇 년 전부터 친목단체를 만들어 정기 모임을 가져왔다”면서 “지난해 12월29일 최요삼 선수의 소식을 전하는 기자회견 후 전국 체육관 관장과 선수 출신 87명이 모여 협회를 창립했고, 오늘 정식 출범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미남 복서’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1988년 5월 주니어웰터급 세계 타이틀에 도전했던 이 사무총장은 지금도 준수한 용모가 돋보인다.

왕년 챔프들 복싱 부활 위해 총집합

한국권투인협회 홍수환 초대 회장이 협회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어제의 라이벌 홍수환과 염동균, 오늘은 동반자

친선 모임 행사장 헤드테이블에는 왕년의 챔프들이 앉았다. WBA 밴텀급 및 WBA 슈퍼밴텀급 전 챔피언 홍수환 씨, WBA 주니어미들급 전 챔피언 유제두(60) 씨, WBC 슈퍼밴텀급 전 챔피언 염동균(56) 씨, WBC 플라이급 전 챔피언 박찬희(51) 씨 등이다. 유제두 염동균 씨는 고문으로 홍 회장과 함께 KBI를 이끌기로 했다.



현역 시절 라이벌이던 홍수환 챔프와 염동균 챔프는 나란히 앉아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다. 1977년 6월27일 문화체육관에서 열린 12라운드 경기에서 홍수환 선수는 염동균 선수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홍 선수는 여세를 몰아 그해 11월26일 파나마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4전5기’ 끝에 3회 KO승으로 꺾고 생애 두 번째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홍수환-염동균 2차 라이벌전은 1980년 12월19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무승부로 끝난 이 경기는 세계 챔피언을 지낸 양 선수의 은퇴전이 됐다. 복싱팬들은 두 영웅의 경기를 불멸의 명승부전으로 기억한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왕년의 세계 챔피언들도 수두룩했다. 화끈한 난타전으로 팬들을 매료시켰던 WBA 플라이급 전 챔피언 김태식(51) 씨, 데뷔 후 26연속 KO승을 자랑한 WBA 슈퍼미들급 전 챔피언 백인철(47) 씨, 19세 때 챔프에 등극한 WBC 슈퍼플라이급 전 챔피언 김철호(47) 씨, 두 번의 결정전 끝에 왕좌에 앉은 WBA 미니멈급 전 챔피언 김봉준(44) 씨, 두뇌파 왼손잡이 WBC 밴텀급 전 챔피언 변정일(40) 씨 등이 중년으로 변신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1983년 결성된 국제복싱연맹(IBF)의 세계 챔피언을 지낸 이경연 전주도 정기영 씨도 자리를 빛냈다.

프로복싱 업무를 관장하는 한국권투위원회(KBC)의 김철기 신임 회장은 축사를 통해 “앞으로 KBC는 복서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전횡을 부리지 않겠다”면서 “KBC와 KBI가 뭉쳐 한국 프로복싱을 부활시키자”고 제의했다. KBC는 선수들의 파이트머니에서 1%씩 떼어 적립한 건강보험기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 복서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사극 드라마에서 열연하는 탤런트 백인철(61) 전국예능인노조 위원장도 축사에서 “수많은 챔프님들을 보니 가슴이 울컥하며 피가 끓는 기분”이라면서 “언젠가 여러분과 함께 예체능연맹을 만들어 한국노총, 민주노총 못지않은 강력한 단체로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백인철 전국예능인노조 위원장 “가슴이 울컥, 피가 끓는다”

참석자들은 케이크를 자르고 건배를 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저마다 한국 복싱을 되살리겠다는 각오를 담은 듯했다. 이어 뷔페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얼굴에서 피를 튀기며 주먹을 휘두르던 ‘열혈 파이터’의 표정을 찾기란 어려웠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건물 현관으로 자리를 옮겨 한국권투인협회 현판을 달았다.

홍수환 회장은 “오늘은 한국 복싱 중흥의 출발일”이라 외치며 동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챔프들은 영광의 그날이 재현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모처럼 활짝 웃었다.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강승연(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이현송(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씨가 참여했습니다.

챔피언들은 요즘…

후배 양성, 프로모터 등 상당수 ‘링 주위에’


왕년 챔프들 복싱 부활 위해 총집합

홍수환 KBI 초대 회장(가운데)과 백인철 예능인노조 위원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협회 창립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이날 참석한 전(前) 세계 챔피언들에게서 근황과 포부를 직접 들었다. 다음은 그 핵심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유제두 씨=1979년 은퇴 이후 복싱계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에서 태양체육관을 운영한다. 권투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 운동인데 경제가 좋아지다 보니 지망생이 줄었다. 복싱계를 활성화하려 이 자리에 모인 만큼 선후배들과 단결하겠다.

◇염동균 씨=복싱 경기를 기획하는 프로모터로 활동한다. TV 중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열악한 현실에 고전 중이다. 선수, 체육관장, 프로모터 등이 삼위일체가 돼 복싱팬을 끌어모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찬희 씨=고(故) 최요삼 선수가 영면한 경기 안성 유토피아추모관 전무로 활동하고 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복싱과 정신교육을 가르친다. 프로복싱뿐 아니라 올림픽 메달 박스였던 아마추어 복싱의 부활도 시급하다. 국민의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

◇김태식 씨=경기 부천에서 6개월 전 복싱체육관을 열었다. 수련생이 100명 가까이 된다. 프로선수 지망생이 3명인데 이들을 열심히 지도해 큰 선수로 키우겠다. 사업을 하면서 여러 차례 사기도 당했지만 링에서 일어섰던 오기로 재기했다.

◇김철호 씨=1983년 은퇴 후 88체육관을 열어 후배를 양성했다. 1994년 미국으로 가서 10년 동안 지내다 귀국해 서울 화곡본동에서 ‘김철호 다이어트복싱’이라는 체육관을 경영한다. 복싱을 중흥시키려면 복싱계의 단합이 필요하다.

◇변정일 씨=격렬한 스포츠인 복싱을 다이어트 운동과 접목해 보급한다. 그의 영문 이름 이니셜을 딴 ‘BJI’ 복싱클럽은 미용 목적으로 운동하는 여성들로 붐빈다. 복싱 발전을 위해서는 낡은 규칙과 정관을 바꾸는 등 관련 시스템 전체를 혁신해야 한다.




주간동아 2008.02.19 623호 (p86~87)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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