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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가 만난 따뜻한 세상 ⑥

70살에 ‘진동’ 사용법 알고 ‘사랑의 문자’도 날렸다

대한도시가스 사랑나누리 ‘어르신 휴대전화 교육’…디지털 세상 열어주기 남다른 보람

70살에 ‘진동’ 사용법 알고 ‘사랑의 문자’도 날렸다

70살에 ‘진동’ 사용법 알고 ‘사랑의 문자’도 날렸다
“수화기 모양 버튼을 누르시면 지금까지 통화한 기록이 나오죠?”

한 노인과 젊은이가 머리를 맞댄 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손바닥 절반 크기도 안 되는 휴대전화.

“가운데 단추를 살짝 눌러 다시 걸고 싶은 번호를 선택하세요. 그런 다음 수화기 모양을 누르면 전화가 걸리는 거예요. 한번 해보세요.”

방금 전 통화한 사람에게 다시 전화를 걸 때도 수첩을 꺼내 일일이 번호를 찾아 누르곤 했다는 나이 지긋한 ‘학생’은 새파랗게 젊은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통화기록을 찾아 ‘간편하게’ 전화를 거는 데 성공하고는 환하게 웃는다. “허허, 그렇게 하는 거였구먼!”

경기 이천시 노인복지회관에는 올해 1월부터 눈길을 끄는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이 개설됐다. 4주 과정의 ‘어르신 휴대전화 교육’이 그것. ‘아니, 그런 것도 교육을?’이라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6개월 동안의 모든 강의가 이틀 만에 마감될 만큼 인기 강좌다. 사회복지사 강혜진(27) 씨는 “심지어 휴대전화가 없는 노인들까지도 ‘이번 기회에 장만하겠다’며 프로그램 참가 신청을 했다”고 귀띔한다.



매주 화요일 이천시 노인복지회관을 찾아 지역 노인들에게 휴대전화 사용법을 교육하는 이들은 ㈜대한도시가스의 ‘사랑나누리’ 자원봉사단이다. 봉사단 리더인 대한도시가스 경기지사 이주석(37) 대리는 “지난해 한 번 휴대전화 교육을 했는데, 이후 다시 해달라는 어르신들의 요구가 많았다”면서 이 교육프로그램을 만든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는 회사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회사 측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노인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봉사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예배시간에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어쩔 줄 몰라했다는 한 노인은 이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진동’ 사용법을 배우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전화도 안 하면서 “하루 종일 전화했는데 엄마가 받지 않았다”고 우기는 줄 알았는데 ‘부재중 통화’를 알고 나서는 비로소 사태 파악을 했다는 노인도 있다.

“자식이나 손자들은 한번 ‘주욱’ 읊어주고는 되물어보면 신경질을 부리는데, 여기 오는 젊은이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 설명해주니 참 좋다고들 하십니다.”

이 대리가 속한 경기지사의 자원봉사단 ‘그린보이’팀은 휴대전화 교육 외에도 방과후 교실과 장애인 지원, 환경보호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대리는 ‘그린보이’팀의 자원봉사뿐 아니라 회사의 다른 봉사단 활동의 밑그림을 제시하는 ‘숨은 조종자’다.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이천시 중리동에서 중학생 대상 방과후 교실을 열었던 그는 학생들의 성적이 급속도로 오르자 “생계지원 대상이 아닌 집에서도 아이를 보내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올 만큼” 좋은 성과를 올렸다.

70살에 ‘진동’ 사용법 알고 ‘사랑의 문자’도 날렸다

4주 과정의 휴대전화 교육프로그램은 이틀 만에 6개월 강의가 마감될 만큼 인기다.

기계 조작 부담과 두려움 제거, 글 깨치는 기쁨

이후 그는 회사 사람들과 봉사팀을 조직해 이천시 축제와 장애인 시설에 지원을 나가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고, 회사에서도 지난해 11월부터 부서별로 6개 봉사단을 만들어 월 1회 근무시간 중에도 봉사활동을 나갈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배려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회사 내 봉사자들이 주도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대리는 “(봉사활동도) 시키는 일을 그냥 따라하면 흥미를 잃게 된다”면서 “자신의 의지와 아이디어를 개발하면서 만들어가야 재미도 있고 오래 지속할 수 있다”며 성공적인 봉사활동의 노하우를 들려줬다.

이날 이 대리와 함께 노인복지회관에 봉사활동을 나온 직원은 8명. 휴대전화 사용법이 기종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오전반은 S사 제품, 오후반은 L사 제품 사용자가 교육 대상이다.

“매주 수요일은 광주 노인복지회관에 같은 교육을 나가는데 거기는 M사 제품, V사 제품까지 한 반에 섞여 있어 어려움이 많습니다.(웃음)”

홍일점으로 온 임현주(33) 씨는 “어르신들께 휴대전화 교육을 해드리다 보니, 막상 집안 어른들에게는 못 가르쳐드린 게 마음에 걸린다”면서 “어르신들이 이렇게 휴대전화 사용에 관심이 많을지 몰랐다”고 했다. 김동천(37) 씨도 “휴대전화를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분, 기능 메뉴를 순서대로 적어달라는 분 등 요구가 구체적이고 다양하다”며 “수업 후 연습으로 보내온 문자를 받았을 때 정말 흐뭇했다”고 말했다.

이 대리와 함께 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김장기(44) 과장도 처음엔 “휴대전화 교육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미심쩍었다”고 한다.

“(노인들은) 자기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는 기계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을 의외로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글을 모르던 이가 글을 깨치게 된 기쁨과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김 과장은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에겐 쉽고 간단한 일이 다른 사람에겐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처럼 반갑고 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살면서 불평만 늘고,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누려왔던 모든 것들에 감사하게 됩니다. 봉사활동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이랄까요.”

‘감사’라는 양념을 한 숟가락 뿌렸을 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맛은 더욱 깊어져 ‘진국’이 된다는 심오한 비밀. 이 비밀이 지금 그들 사이에서 귀엣말로, 눈빛으로 전달되며 퍼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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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8.02.19 623호 (p84~85)

  • 오진영 자유기고가 ohn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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