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2

2008.02.05

  • 입력2008-01-30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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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1921~1968)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출전] 김수영/ 백낙청 엮음, ‘사랑의 변주곡’, 창작과비평사, 1988

    김수영은 신동엽과 더불어 1960년대 한국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끌며 우리 시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이지적이며 때로 난해한 현대시가 주를 이루지만 ‘눈’은 초등학생인 조카아이에게 들려줘도 좋을 장난감 같은 시다. 유일한 관념어(?)인 ‘폐허’는 눈을 바라보며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의 어린아이면서 어른이기도 한 단순복잡한 내면이 투시된 핵심 단어다.

    한 줄 두 줄 마치 종이 위에 눈이 내리듯 ‘내린다’와 ‘내릴까’를 엇갈려 배치한 독특한 구성이 시를 그림으로 만들고 있다. 낡은 듯하면서 매우 참신하고 현대적인 서정시다. 어느 겨울날, 첫눈을 보며 동심으로 돌아가 욕심 없이 눈을 굴리듯 시심(詩心)을 굴려 빚은 걸작이라 하겠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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