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2

2008.02.05

집권 386과 짝짜꿍 대북공작은 헛바퀴 요란법석 5년 허송

김만복 원장 임기 시종일관 구설 올라 쌀·비료 ‘주고’ 이산 상봉 ‘받는’ 구태 반복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1-30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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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권 386과 짝짜꿍 대북공작은 헛바퀴 요란법석 5년 허송

    월간 ‘신동아’는 2008년 2월호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대가로 북측에 1000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차 정상회담의 이면이 조금씩 드러나는 중이다.

    [에피소드 1] “김만복(국가정보원장)도 그렇고 이재정(통일부장관)도 그렇고, ‘우리’랑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을 앉혔습니다. 우리가 민 사실을 자기네들도 잘 알아 함부로 못할 겁니다.”

    ‘친노(親盧)직계 386’으로 불리던 대통합민주신당 L의원은 2006년 말 노무현 정부가 외교·안보 라인에 손을 댄 뒤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L의원은 당시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과 함께 ‘비선’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 중이었다.

    L의원의 언급에서 ‘우리’란 안 전 위원장, 이광재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이호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지난해 12월22일까지는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장으로 일했다) 등 노무현 정권 5년을 좌지우지한 ‘친노직계 386’ 인사를 가리킨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집권 386’을 ‘뒷배’로 승승장구한 ‘코드 인사’다. 그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공격은 명예훼손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가혹하다. “깜냥에 비해 너무 큰 자리에 앉았다”거나 “7급에나 어울릴 법한 사람이 정권의 해바라기 노릇을 했다”는 식이다.

    ‘집권 386’에게 쓴소리를 하던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청와대와 갈등을 빚을 때 ‘집권 386’은 김만복 당시 1차장을 새 국정원장으로 밀었다. 그러나 당시 김 전 원장은 “김만복은 절대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돼서는 안 된다”며 혀를 찼다.



    김 원장은 기조실장과 1차장으로 일할 때 ‘집권 386’들과 식사자리, 술자리를 가지며 ‘사적 통로’로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전 원장은 “기조실장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김 원장한테 몇 차례 주의를 줬다”고 전했다.

    집권 386과 짝짜꿍 대북공작은 헛바퀴 요란법석 5년 허송

    ‘꼿꼿 장수’(김장수 국방부 장관),‘굽실 만복’(김만복 국정원장)으로 회자된 김정일 위원장과의 악수 모습(왼쪽부터).

    [에피소드 2] 지난해 10월2일 평양 4·25문화회관 광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남측 인사들과 차례로 손을 맞잡았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자신의 순서가 되자 ‘비굴하게’ 보이는 표정으로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른바 ‘굽실 만복’ 사건이 인구에 회자된 것은 대한민국 정보기관사(史)에서 ‘망신’으로 기억될 만큼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 국정원이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면 눈에 눈물이 맺힌다. 김 원장이 왜 광장에 모습을 비쳤는지 모르겠다.”(국정원 전직 간부)


    여기에 샘물교회 신도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됐을 당시의 김 원장 행동이 오버랩되면서 ‘노출증’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정보기관 수장으로서의 역량은 높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자신이 이런저런 일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그의 능력에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이 적지 않음에도 어떻게 김 원장은 국가정보기관의 ‘장(長)’이 될 수 있었을까? ‘조선일보’는 최근 ‘김만복 국정원장’은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 전 위원장의 합작품’이라고 보도했다.

    “김만복 원장은 기조실장과 1차장으로 있으면서 청와대 핵심 386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주 식사나 술자리 모임을 가졌다는 게 국정원 관계자들의 말이다. 청와대 한 전직 비서관은 ‘김 원장이 기조실장으로 있으면서 청와대 386들에게 용돈도 줬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제이유 사건으로 구속된 한 사람은 사석에서 ‘김 원장이 노사모 출신 누구의 취직을 주수도 제이유 회장에게 부탁한 일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1월22일자 ‘안희정파, 이광재파 … 청와대도 정부도 줄서기 경쟁’ 제하 기사)

    그러나 김 원장의 ‘동아줄’은 이호철 비서관이다. 남모르게 둘만의 약속이 많았다고 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의원에 따르면 김 전 원장의 경질을 앞두고 권부(權府)에선 “김승규는 잘 안 맞는다. 확실한 사람을 앉혀서 맘대로 좀 해보자. 김만복이 가장 적절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집권 386’들은 맏형 격인 이 비서관을 ‘호빵형’이라고 부른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재야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된 부림사건의 주인공으로, 노 대통령은 그를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묘사했다. 그는 이광재 의원, 안희정 전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정치적 동지’로서 ‘청와대 386’의 ‘큰 형님’이다.

    그런 그가 김 원장의 ‘후견인’ 노릇을 한 것이다. 그는 386의 ‘큰 형님’답게 자신과 같은 ‘부산 라인’의 김 원장을 밀어 관철시킨 뒤, 정보·수사기관의 정보가 모이는 길목인 국정상황실장으로 일하면서 ‘김만복의 국정원’과 호흡을 맞췄다. 국정원의 대북 공작이 ‘난맥(亂脈)’으로 흐른 데는 이 비서관의 책임도 적지 않은 것이다.

    집권 386과 짝짜꿍 대북공작은 헛바퀴 요란법석 5년 허송

    국정원과 통일전선부는 각기 모시는 ‘권력집단’을 기망하면서 남북관계를 조직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비판도 듣는다.

    [에피소드 3] 북한이 핵실험에 나선 2006년 10월9일, 국정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북측과 전화, e메일로 유지되던 ‘국정원 라인’에서는 ‘일상적 대화’가 오갔을 뿐 ‘대화 루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집권 386’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당시 “국정원이 생각보다 정보가 없었다. 정보가 있으면서 안 주는 줄 알았는데, 막상 사고(핵실험)가 터지니 정말로 없더라”며 깎아내렸다.

    그러나 이 인사의 발언은 국정원의 능력을 다소 폄훼한 것이다. 대북정보만큼은 국정원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핵실험 직후 세계의 내로라하는 정보기관들이 내놓은 분석마다 오류로 가득했다.

    어쨌든 10년 가까이 북한과 라인을 유지해온 국정원의 역량은 북한이 도발에 나서자 그 한계를 또렷이 드러냈다. 어떤 라인도 가동되는 게 없자 서울의 권력 핵심부는 당혹스러워했다. 북측과의 비선 라인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던 서울이 급해진 것은 그 시점부터다.

    “안희정에게 연락해 빨리 진행하라고 하겠습니다. 잘 좀 도와주십시오.”(이호철 당시 국정상황실장)

    안 전 위원장은 2006년 10월20일 비밀리에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의 리호남 참사와 접선했다. 이렇듯 노무현 정권이 한 북한 전문가가 유지하던 비선 라인을 통해 남북간 특사를 교환하고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국정원의 역량 부족에 기인한 측면이 적지 않다.


    남북대화 채널은 크게 세 종류다. 먼저 통일부가 주연 격인 공식-공개 채널. 이 채널은 남북이 협상장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언론에도 보도된다. 공식-비공개 채널의 주역은 정보기관(국정원 대북전략국과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가 파트너). 이 채널은 공식-공개 채널에서 이뤄지는 회담의 정지작업도 한다. 끝으로 비공식-비공개 채널, 즉 ‘비선 라인’이다.

    우리 통일부와 북한 통일전선부의 ‘통-통 체제’는 ‘국(국정원)-통 체제’라 불려야 한다. 통일부는 사실상 국정원의 종속변수 노릇만 했기 때문이다.

    남북 정보기관(국정원, 통일전선부)에는 상시적인 대화 통로가 있다. ‘스포츠 세계’에 빗대 설명하면, 상대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서로 ‘스파이’를 보내면서도 각 팀의 ‘선수’들은 제각기 필요한 정보를 교류하며 팀 내 입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적(適)’을 활용한다. 그래서인지 스파이들은 묘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고 한다.

    국-통 체제가 꾸린 2000년 정상회담은 ‘돈 주고 산 것’으로 확인됐으며, 지난해 정상회담도 그 속살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가 배후에 있었든, 통일부가 ‘배우’ 노릇을 했든 비판의 화살은 국정원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요컨대 아마추어리즘으로 상징되는 대북정책 난맥의 중심에는 ‘김만복의 국정원’ ‘이호철의 국정상황실’이 있는 것이다.

    [에피소드 4] 2006년 11월 중국 단둥(丹東)에서는 ‘국정원의 응전’이 벌어졌다. 안희정-리호남 접선 이후 진행되던 비선 라인을 ‘제압’하고자, 국정원 요원들이 리호남 참사를 만나 ‘베팅에 나선’ 것이다.

    ‘비선 접촉’을 기획한 대북 사업가 권오홍(48) 씨는 자신의 비망록에서 “단둥에서는 한판 전쟁이 벌어진 모양이다. S(서훈 국정원 3차장)라인은 기를 쓰고 이 일을 따내려 할 것이다. 그들이 크게 베팅하러 갔다는 말도 들린다. 아마도 어떤 수준의 약속을 하고 자신들의 라인을 회복해 더 많은 일을 하자고 할 듯하다”라고 썼다.

    노무현 정권은 2006년 12월 말을 전후해 비선 라인을 접고 공식 라인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로 ‘교통정리’했다. 국정원이 응전에서 승리한 셈이다.

    ‘집권 386’의 한 인사는 사석에서 “서훈 3차장이 김 원장을 통해 이호철 실장과 밀착했다. (대북특사로 가기로 한) 이해찬 전 총리가 서 차장의 방해를 막았지만, 이 실장이 국정원 쪽으로 기울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은 노 대통령이 통치행위로서 접근한 비선 접촉을 제압한 셈이다. 국정원은 통-통 체제의 뒤편에서 이를 넘어서는 어떤 라인도 허용하길 꺼렸다.


    공식 라인의 막판 뒤집기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고의 대북 전문가라는 평을 들어온 서훈 국정원 3차장 덕에 성사될 수 있었다. 국정원은 쌀과 비료 지원을 대가로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국-통 체제 복원에 나섰으며, 결국 이듬해 1월25~28일 서울과 평양은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서 3차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국정원 대북 채널이던 ‘KSS 라인’(김보현 당시 국정원 3차장, 서영교 대북전략국장, 서훈 대북전략조정단장)의 일원으로 활약한 뒤, 노무현 정권에서 3차장에 올라 지난해 10월2~4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전문가 중 전문가’다. 따라서 그 역시 대북정책 난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정원은 쌀과 비료를 ‘주고’ 이산가족 상봉을 ‘받아오는’ 구태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은 남북간 ‘이벤트’를 연출하면서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정보기관은 태생적으로 정권의 하수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래서 실사구시적 대북 접근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쇼’를 연출하는 데 능숙할 때가 많았다.

    통일부가 내놓은 대북정보는 엉터리인 경우가 많았다. 국정원이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측 인사들이 국정원과 청와대의 관계에서 정보가 소통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일도 잦았다. 국정원의 ‘전문가 집단’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자신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견인하는 데 그 ‘전문성’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국정원과 통일전선부가 각기 자신들이 ‘모시는’ 권력집단을 기망한 때도 많았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청와대의 아마추어리즘을 국정원의 ‘전문가 집단’이 활용한 셈이다. 국정원은 남북한의 진정한 상생보다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만복 원장은 그 가운데서 제 앞가림도 못한 셈이다.”(북한 사정에 정통한 O씨)

    통일전선부 산하 조선민족경제인연합회는 최근 평양 내부감사에서 시쳇말로 ‘박살’이 났다. 또 다른 통일전선부 조직인 민족화해협의회도 마찬가지다. 서울 국정원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게 뭇매를 맞았다. 겉으론 화려했지만, 실속은 실망스러웠던 두 정보기관이 남과 북에서 제각기 시련을 겪고 있는 셈이다.

    [에피소드 5] 1월18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말쑥한 얼굴로 춘추관에 들어섰다.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북측에 현금 1000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신동아’ 2월호 기사로 시끄러울 때였다.

    “정체불명의 사람들의 주장과 실제로 떠돈 적이 없는 듯한 ‘카더라식’ 얘기다. 소설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작문이다. 근거가 얼마나 없으면 이런 엉터리 기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천 대변인의 발언은 청와대가 정보에 어둡다는 점을 자인한 꼴이다. 지난해 11월부터 2차 정상회담 성사 배경을 둘러싸고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1000만 달러 수수설이 팩트(fact·사실)로 ‘여겨졌다’. 정보를 다루는 북측 ‘일꾼’들이 이 같은 내용을 흘렸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과연 이런 의혹이 시중에 나돈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보고했을까?


    뒤늦게 밝혀졌지만,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정상회담 이전인 지난해 9월26일 서울을 비밀리에 방문해 노 대통령을 예방했다. 11월29일 방남 때 서울에 처음 온 것처럼 연출했지만 ‘쇼’였던 셈이다. 이렇듯 국정원-통일전선부의 공작은 음지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뒤늦게 드러난 12월18일 김 원장의 평양 방문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 정권’을 기망한 측면이 있는 국정원의 대북공작 실체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한 뒤 조금씩 벗겨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새로운 집권세력이 ‘국정원의 전문가’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다. 정상회담 대가로 1000만 달러뿐 아니라 상당액의 물자가 북측으로 건너갔다는 소문도 베이징에서 퍼지고 있다.

    김 원장은 이번 대선이 끝난 뒤 간부들에게 이 당선인의 저서를 돌리는가 하면, 인수위에 이 당선인과의 면담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차기 정부와의 뒷거래 시도 의혹’ ‘납득하기 어려운 대화록 유출사건’ 등 그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김 원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국정원 굴욕사’를 쓴 셈인 김 원장을 두둔하는 청와대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런 사람이 정상회담의 막후 노릇을 했으니 잘될 턱이 있었겠는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청와대의 아마추어들이 이끈 지난 5년간의 남북관계는 한마디로 빈 수레가 요란한 꼴이었다고 할 수 있다.”(북한 전문가 K씨)

    인수위는 통-통 체제(정확히는 국-통 체제)를 해체하고 청와대가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 당선인은 “남북관계를 통일부와 통일전선부가 밀실에서 수군대던 시대는 지났다. 해당 부처들이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컨트롤타워를 두고 각 부처가 제각기 평양 부서와 교류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인수위의 한 인사는 “국정원은 그동안 정권이 원하는 바를 시녀처럼 수행한 전문가 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된 측면이 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각색해 보고함으로써 대통령을 바보로 만든 예도 있다. 새 국정원장은 실무형으로 뽑아야 한다. 새 원장에 취임한 사람이 전문성이 떨어지면 국정원 내 전문가들이 올리는 보고서에 취해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보는 국정원

    “막강 권력 생산적 활동에 쓰면 좋으련만 …”


    국정원에는 다섯 가지 잘못이 있다. △능력을 허투루 쓴 잘못 △소수를 위해 다수를 기망한 잘못 △권력을 지향하는 해바라기로 비친 잘못 △아직도 사찰기관으로 비치는 잘못 △정보기관으로서 세계와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잘못이 그것이다.

    국정원은 귀한 조직이다. 나라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런데 요즘엔 ‘세상의 욕이란 욕은 다 먹는’ 듯한 모습이다. 국정원이 일하는 음지는 원래 보여선 안 되는 법이다. 그런데 양지를 지향한 몇몇 인사들이 있다.

    10년을 되돌아보자. 국정원이 개입한 굵직한 일은 대부분 정치적 목적을 지녔다. 국민의 정부 때의 도청사건이 대표적이다. 1, 2차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성사 과정의 은밀성은 내버려둬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이 앞장서서 “나 잘했지?”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김만복 원장이 남북간 대화록을 언론에 유출한 일은 일종의 코미디다.

    국정원이 수난을 당하는 이유는 정권과의 밀착 때문이다. 국정원은 임명권자를 위해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순간 비난의 대상이 된다. 국정원은 ‘까라면 까는’ 군대보다 위계질서가 무서웠던 곳이다. 윗사람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데다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사안을 지시해도 아랫사람들은 임무를 완수할 수밖에 없다.

    권력이 크면 남용 가능성도 커지게 마련이다. 국정원은 노무현 정권 때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통-통(통일부-통일전선부) 체제의 당사자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높은 뜻’은 7년의 ‘정치적 쇼’로 퇴색했으며,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은 그 이면에 숨겨진 ‘반갑지 않은’ 숱한 이야기들이 드러나는 중이다.

    국정원은 정상회담을 만드는 데는 전문가로 기능했다. 그러나 정작 회담의 결과물을 알차게 하는 데는 서툴기 짝이 없었다. 물론 국정원의 책임만은 아니다. 굳이 한 곳만 비판받아야 한다면 청와대의 무능함이 먼저다. 그러나 국정원도 남북간 라인을 사실상 독점해 남북대화를 조율했으므로 책임이 막중하다.

    평양은 국정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일상적 활동’이 아닌 ‘생산적 활동’에선 국정원의 구실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경협사업을 시작했음에도 평양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없기 때문이다. 평양도 국정원을 힘센 기구로 봤지만, 무소불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국정원은 자신 외의 대화 루트가 생기는 것을 가차없이 자르고자 했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강화하고자 그랬다고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뛰어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라인’을 등에 업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정치 행위가 남북 정보기관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협도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평양에서 최근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안쓰럽다.

    “지난 10년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봤지만 아직도 ‘먹는 것’ ‘따뜻한 것’이 해결되지 않았다.”

    남북문제는 ‘정치적 게임’보다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정원은 막강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검을 잘못 휘두르면 자신이 다친다. 겉보기에 화려하다 해서 좋은 검술(劍術)은 아니다. 실전에서 쓸모 있게 사용하지 못하면 보검으로 김치를 자르는 꼴이 된다. 남북의 정보기관이 제각기 지난 5년, 아니 10년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오남북 북한전문가 ossn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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