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1

2008.01.29

카리브해 해적 닮은 헤지펀드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1-23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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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리브해 해적 닮은 헤지펀드

    ‘진홍의 도적’

    스페인 영해는 ‘황금의 바다’다. 이 바다 밑에는 과거 금은보화를 싣고 스페인으로 귀국하던 길에 폭풍우나 해적을 만나 난파당한 보물선이 수백 척 가라앉아 있다고 한다. 최근엔 탐사 전문업체가 4000억원대의 보물선을 인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스페인 정부가 이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그러면서 스페인 정부는 “해저 탐사업체는 21세기 해적”이라고 했단다.

    어지간한 금액도 아니고 4000억원이니 스페인 정부가 아까워할 만하다. 그러나 ‘해적’이라는 말에 대해선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스페인 정부가 그런 비난을 할 자격이 있을까.

    난파선에 실린 금화는 어디서 난 것인가. 스페인 정부가 정당한 수출의 대가로 받은 것도 해외 건설사업을 해서 얻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중남미 원주민을 상대로 약탈한 보화들이다. 그러니 탐사업체가 해적이라면 옛 스페인 제국이야말로 진짜 큰 해적인 셈이다.

    스페인이 보물선의 목적지였다면 출발지는 카리브해였다. 약탈한 보물이 실린 스페인 선박을 노린 해적들은 카리브해에 출몰했다. 1950년대 버트 랭커스터 주연의 ‘진홍의 도적’을 비롯해 많은 해적 영화의 배경이 됐던 것도 카리브해였다. 해적물로는 오랜만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무대로 삼은 곳도 제목에서처럼 역시 카리브해다.

    그런데 보물선 인양 사건과 함께 카리브 해적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론스타라는 사모펀드와 관련된 얘기다. 이 펀드는 외환은행 인수로 부당하게 막대한 차익을 올린 일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데, 이들의 돈 버는 기술은 그야말로 놀랍다. 불법 여부를 떠나 가장 약탈적인 형태의 자본이랄 수 있다.



    이들 사모 헤지펀드가 본사를 많이 두고 있는 곳이 바로 카리브해다. 버뮤다나 케이먼 제도 등 이들 펀드가 본사를 두고 있는 카리브해의 조그만 섬들은 조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기에 위장 본사를 설치하고 세계 곳곳에서 거액을 벌어들인다.

    칼과 도끼로 돈을 빼앗은 해적과 이들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들이야말로 팔을 비틀 일도 없이 ‘금융 귀재’라는 칭송을 들으며 신사적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이유일까. 둘 중 누가 더 진짜 해적 같은지 시비를 걸고 싶은 것은.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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