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1

2008.01.29

특검 ‘화끈한’ 의욕 과시?

삼성, 9주 동안 수사 대비 … 예행연습까지 완료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1-23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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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검 ‘화끈한’ 의욕 과시?

    특검 시작 하루 전인 1월9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천주교성당에서 김용철 변호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변호인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삼성 특검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삼성본관 27층에 ‘비밀금고’는 없었다. 삼성그룹이 정·관계 로비에 썼다는 비자금 뭉치와 각종 로비 리스트가 보관돼 있다는, 김용철 변호사가 주장했던 비밀금고는 삼성 특검(이하 특검)의 압수수색에서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특검의 대(對)언론 창구인 윤정석 특검보는 압수수색을 마친 1월16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치밀하게 수색했지만 현재로선 확인된 게 없다. (27층의) 사무실 배치도 과거와 달라졌다. 이전에 금고가 존재했다면 구조변경 등을 통해 없어졌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특검은 수사목표 달성의 필요성과 판단에 따라 추가 압수수색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 고위간부 “지난해부터 지우고 없애고…”

    삼성에 대한 압수수색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게 사실이다. 이미 삼성 측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 11월30일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이하 특본)의 삼성증권 압수수색 이후 45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실시된 추가 압수수색에서 성과를 기대하긴 처음부터 무리였다.

    실제로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자금 의혹을 처음 제기한 지난해 10월 이후 삼성은 수사에 대비해 준비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특본이 꾸려진 뒤 삼성은 수사 대비에 박차를 가했다. 삼성그룹 한 간부는 “비자금 의혹이 불거진 이후 9주 동안이나 주말에도 출근하며 수사에 대비했다”고 밝혔다. 계열사인 삼성생명의 한 간부도 “지난해 11~12월 전략기획실의 지시를 받고 모든 문서를 폐기하는 등 수사 대비를 끝냈다”고 전했다. 삼성 전략기획실 한 고위간부의 설명이다.

    “전략기획실이 압수수색에 대비한 모든 계획을 총괄했고 전 계열사에 지시했다. 압수수색 대처를 위한 예행연습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압수수색이 들어왔을 때 누구 자리인지도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을 치우도록 지시가 내려갔다. 여직원 책상에 보관된 선물 포장지 하나도 남기지 않게 조치했다. 서류를 없애고 컴퓨터 파일을 지우는 정도가 아니다. 압수수색을 해도 가지고 나갈 종이 한 장 남아 있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삼성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비자금 의혹이 불거진 이후인 지난해 11월 말~12월 초 삼성 측은 전략기획실이 입주한 서울 중구 태평로 본관 26~28층의 내부구조 변경을 단행했다. 예정된 압수수색과 검찰조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 특검팀이 비밀금고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비밀금고는 최근까지도 있었던 셈이다.

    비밀금고가 분명 ‘있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과 각종 정황은 최근 공개된 한 검찰조서에서도 확인됐다. 2003년 김인주 삼성 전략기획실 사장(당시 구조조정본부 부사장)이 대선자금 수사를 받던 중 비밀금고의 존재를 인정하는 진술을 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주식은 그대로 가지고 있거나 증권예탁원에 보관·위탁하는데, 가지고 있을 때는 ‘창고 겸 금고’에 보관한다. 현금과 예금, 부동산 관련 증빙(서류)도 이곳에 보관한다. 사무실 옆에 시건(잠금) 장치가 잘된 방이 있어 여기에 적절히 보관하고 있다. 열쇠는 한 개인데 박재중 구조본 상무(2005년 사망)가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후임자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진술조서 내용과 관련해 전략기획실 한 간부는 “김 사장의 진술조서 어디에도 비밀금고라는 말은 없다. 어느 기업이나 중요 서류를 보관하는 공간이 있게 마련 아닌가. ‘비밀’이라는 이름을 붙여 큰 불법이라도 되는 양 보도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모든 의혹 진실캐기 초미의 관심

    비록 압수수색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삼성 특검의 ‘신고식’은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 압수수색 장소로 택한 곳이 이건희 회장 집무실인 승지원이라는 점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전략기획실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예상했지만 승지원과 경영진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은 충격이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와 변호인단은 특검 시작 전날인 1월9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특검이 반드시 수사해야 할 36가지 리스트를 공개했다. 이 내용은 고스란히 특검에 전해졌다. 김 변호사 측은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는 계획이다.

    김 변호사 측이 제기한 수사 대상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경영권 불법 승계 △비자금 조성 및 사용 △불법로비 의혹이 그것이다. 여기엔 이미 네 차례나 진행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을 통해 제기된 의혹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특히 김 변호사와 사제단 측은 “경영권 불법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건희 회장 일가에 대한 소환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변호사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영희 변호사(경제개혁연대 부소장)는 “삼성에버랜드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해 반드시 이건희 회장을 소환 조사해야 한다. 당시 이 회장이 이 사건의 CB(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사전에 지시 또는 인지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검에 주어진 시간은 최대 105일. 현재 30명 규모의 특별수사관이 투입돼 있고 금융감독위원회, 국세청 등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도 40명에 이른다. 이미 특검에는 특본이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면서 넘긴 압수물 등 관련 자료와 4만2000여 쪽에 이르는 수사 자료도 도착해 있다. 수사의 실마리는 잡은 셈이다.

    모든 의혹은 사실로 확인될 수 있을까.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특검이 밝힐 결과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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