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9

2008.01.15

금융범죄, 영화 소재로 쓰기엔 복잡해!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1-09 1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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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범죄, 영화 소재로 쓰기엔 복잡해!

    ‘모노폴리’

    “여권이 BBK가 아니라 자녀들의 위장취업 건을 쟁점화하고 공격했다면 상대하기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한 측근은 이렇게 털어놨다고 한다. 이 측근의 말은 BBK 사건의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 사건이 일반인이 이해하기 매우 힘든 것이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문제가 단순해야 사람들이 금방 이해하고 그것이 공분으로 이어지는데, 복잡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다 보니 쟁점화되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금융사건은 대체로 복잡하다. 폭력이나 살인사건처럼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사건의 흐름을 포착하기도 쉽지 않다. 범죄영화 중 금융사기 사건을 다룬 영화가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드물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수도 있지만 대중성을 얻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루는 만큼 치밀한 시나리오와 구성 솜씨를 보여주지 않으면 관객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

    비교적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금융범죄를 다룬 것으로 ‘모노폴리’가 있었다. 영화는 전국의 1억 개가 넘는 계좌에서 5조원 이상이 인출되는 전대미문의 금융범죄를 다뤘다. 그러나 과연 대형 금융사건에 걸맞은 구성 솜씨를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구미가 당기는 재료지만 서투른 숙수가 감당하기엔 벅찬 소재였던 셈이다.



    게다가 금융계 현실은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금융거래는 ‘금융공학’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복잡한 수학과 통계학의 세계가 돼가고 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7년 영화 ‘월스트리트’는 80년대 뉴욕 월가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 증권 브로커가 수갑이 채워진 채 연방수사요원에게 연행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이런 장면은 실제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 영화 역시 증권사기 실화를 토대로 했다. 금융범죄를 단속하는 법망은 촘촘했고, 사법당국의 의지만 있으면 범죄를 적발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당시 “1980년대 월스트리트에서는 기소가 채권이나 주식만큼 중요한 용어가 됐다”고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다양한 첨단 금융상품들이 등장하면서 금융거래의 탈법과 편법 방식은 법과 제도의 그물망을 넘나든다. ‘범죄’와 ‘고도의 금융기법’ 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모호한 경계를 잘 타는 것, 거기에 성공비결이 있다.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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