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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크리스 웨이츠의 ‘황금 나침반’

진기한 볼거리로 채운 판타지 모험여행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진기한 볼거리로 채운 판타지 모험여행

진기한 볼거리로 채운 판타지 모험여행

필립 풀먼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황금 나침반’은 ‘아메리칸 파이’ ‘어바웃 어 보이’의 크리스 웨이츠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어쩌다 이렇게 재미없는 판타지 영화에 대해 쓰게 됐는지, 참 지지리 복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시작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해보자. 그러니까 ‘황금 나침반’의 원작자 필립 풀먼은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처럼 죽은 자도 아니고,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처럼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아니었다.

그들처럼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했고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빅토리아 시대를 사랑했고 다문화, 다학문, 다종교가 공존하는 또 다른 우주를 꿈꾸었던 이 작가는 1995년 화제의 판타지 소설을 출간한다. 판타지 소설의 금자탑 중 하나로 불리는 ‘황금 나침반’은 ‘나니아 연대기’처럼 예수의 사랑과 희생을 은유한 참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독교나 가족제도 등 기존 시스템을 전복하는 불온서적이며, 평행우주이론 같은 과학은 물론 영혼과 육체의 문제를 아우르는 심리학적, 철학적 테제가 담긴 현대 인문학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었다.

현대 인문학 종합선물세트 그러나 원작 훼손

그런데 이 판타지 소설이 할리우드 수중에 들어가면서 속살이 죄다 발라져버렸다. 도대체 뉴라인 영화사는 뉴질랜드에서 날아온 천재 감독 피터 잭슨을 골랐던 선구안은 어디다 버리고 ‘아메리칸 파이’ ‘어바웃 어 보이’ 같은 범작이나 쏟아낸 크리스 웨이츠의 손에 물경 2억 달러를 쥐어주었는가. 투철한 기독교 국가인 미국 내 흥행이 못내 신경 쓰였던지 크리스 웨이츠는 필립 풀먼의 종교적 성격은 모두 희석하고, 자신이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라도 되는 줄 알고 그 복잡한 ‘황금 나침반’ 용어들을 초기 10분에 줄줄이 말로 때워버리는 참극을 연출한다.

진기한 볼거리로 채운 판타지 모험여행
이 때문에 ‘황금 나침반’은 원작의 용어를 알고 가지 않으면 이리저리 조각난 줄거리 퍼즐을 맞추다 극장 문을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한 설경(雪景)에 허연 북극곰까지 출몰하니, 그들 손에 코카콜라 병 하나씩만 쥐어주었으면 영락없는 113분짜리 코카콜라 CF가 될 뻔했다.



조던대학에서 삼촌 아스리엘 경의 후원으로 살고 있는 라라. 어느 날 삼촌의 방 벽장에 숨었다가 ‘매지스테리움’이라는 절대권력 집단에 독살당할 위기에 처한 삼촌을 구하게 된다. 그 와중에 그녀는 우주를 채우는 ‘더스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이를 찾아 노스 폴(북극)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즈음 ‘고블러’라 불리는 자들에게 집시 어린아이들이 연달아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라라의 친구 로저도 납치당하고, 운명의 아이로 낙점된 라라는 진실만 말하는 ‘황금 나침반(알레시오미터)’을 갖고 로저를 찾기 위해 운명 같은 모험에 나선다. 그러던 중 차가운 미인 콜터 부인이 라라에게 노스 폴로의 동행을 제안한다.

‘황금 나침반’에는 거대한 비행선, 교황청을 연상케 하는 북극 위에 뜬 비밀의 성, 배에서 사는 집시족, 신비한 비행기 조종사 리 스코스비, 하늘을 나는 여신인 헥스족과 그 종족의 리더 세라피나 페칼라, 북극을 지배하는 아이스 베어 왕국의 왕자였던 이오렉 버니슨 등 수많은 인물과 동물, 진기한 볼거리로 채워져 있다.

물론 조던대학은 옥스퍼드대학의 다른 이름이며, 매지스테리움은 제도화된 종교집단의 은유라는 것은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이미 눈치챘으리라. 특히 어린아이 시절에는 자유자재로 변하다 어른이 되면 어느 한 동물 모양으로 고정되는 ‘데몬’으로 형상화된 캐릭터는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한 예로 매지스테리움의 사악한 학자들은 부엉이나 뱀 같은 데몬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용맹한 아스리엘 경은 표범을, 간교하고 잔혹한 콜터 부인은 원숭이 데몬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서는 악마로 번역되는 이 단어가 우리 세계와 매우 비슷하다는 ‘황금 나침반’의 평행 우주에 다다르면 영혼의 동의어처럼 쓰인다는 것 또한 원작자의 반(反)기독교적 사상이 드러나는 것 같아 의미심장하다.

웅대한 음향 변화무쌍한 왕위 쟁탈전 흥미

그런데 복잡한 3부작의 제1부라는 운명 때문인가, 애초부터 잘못된 이야기 얼개 때문인가. 영화는 이들 복잡한 인물과 사건을 두루마리처럼 죽 펼친 듯한 밋밋한 전개로 재미도 감동도 몰입도 이해도 주지 못한다. 니콜 키드먼은 예의 얼음 미녀로 분해 “내가 네 엄마다(“아임 유어 파더”로 관객들을 대경실색게 했던, 스타워즈의 쌍둥이 버전?)”라고 외치지만 그닥 놀랍지 않고, 데몬과 인간의 분리를 시도하는 인터시즌의 시각적 이미지는 ‘하얀 거탑’의 수술 장면보다 더 싱겁게 끝난다. 다만 웅대한 음향과 변화무쌍하게 이어지는 아이스 베어 간의 왕위 쟁탈전이 변화하는 데몬과 함께 그나마 영화에서 건질 수 있는 재미였다.

그러나 마지막,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소녀, 소년을 만나다’식의 뻔한 결합을 보며 어이없어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정말 착한 관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때는 연말연시이고 ‘반지의 제왕’의 추억도 떠오르며 아이들 손 잡고 딱히 보러 갈 것도 없지만, ‘황금 나침반’은 올 겨울 할리우드의 거대한 실패다. 판타지 대작 강박 때문에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치른 게 아닐까.



주간동아 618호 (p82~84)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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