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8

2008.01.08

이상한 러시아식 플리바게닝

  • 입력2008-01-02 18: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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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드카, 빠잘스타(할인 부탁합니다).”

    요즘 러시아 길거리에서는 단속에 걸린 운전자들이 교통경찰관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교통법규를 어겼다면 벌금을 내면 그만이지 왜 할인을 부탁하는 것일까. 사실 교통경찰이 떼는 벌금은 높은 러시아 물가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 모스크바 시내의 경우 불법 주·정차 100루블(약 3700원), 우회전 신호 위반 200루블 정도다.

    교통법규 위반 인정하고 경관과 협상하면 비용(?) 절감 효과

    러시아 운전자들이 벌금보다 무섭고 귀찮게 여기는 것이 있으니, 바로 운전면허증 같은 자동차 관련 서류 압류다. 러시아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법규 위반을 인정하지 않는 운전자들의 서류를 임의로 압류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경찰관에게 빼앗긴 서류를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교통 위반 장소를 관할하는 경찰서를 찾아가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벌금 내기도 쉽지 않다. 범칙금 용지 뒷면에 적힌 납부 은행은 모스크바 시민들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후미진 곳에 있기 일쑤다. 또 벌금을 내고 받은 영수증을 딱지 뗀 경찰관이 일하는 경찰서에 직접 가서 제출해야 한다.



    이처럼 복잡한 절차에 따른 시간 낭비를 잘 아는 러시아 운전자들은 현장에서 즉각 잘못을 인정하는 편이다. 그런 다음 벌금보다 몇 배 많은 뇌물을 경찰관에게 건네줄 준비를 한다.

    법규 위반 기록 삭제와 시간 절약에 대한 대가로 만만치 않은 비용을 써야 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 그런데 요즘 경찰관이 부르는 뇌물액수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뇌물액수 증가에 기름을 부은 것은 얼마 전 교통경찰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나선 크렘린의 불호령이다. 길거리에서 돈을 받다 당국에 적발될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에 뇌물 할증액도 크게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교통법규를 어겨 경찰에 적발된 운전자들 사이에서 상점에서나 사용하는 ‘스키드카(할인)’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결국 러시아에선 운전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교통경찰과 협상하면 ‘비용’을 적게 들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현장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범칙금 딱지를 원한다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러시아식’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형량을 낮춰주는 제도)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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