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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과 중화주의가 발목 잡는 ‘동양신화’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주의가 발목 잡는 ‘동양신화’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주의가 발목 잡는 ‘동양신화’

태양을 향해 달려가는 과보, ‘중국신화전설’(민음사).

호메로스와 오비디우스의 시,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의 희곡 등으로 전해오던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하버드대 출신 은행원 토머스 불핀치가 1855년 근대적 예술양식인 소설처럼 정리한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 청소년보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정통하다.

하지만 제우스, 아테네, 아프로디테, 하데스, 디오니소스 등 그리스 신들만 인간의 상상력 안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형서점 신화 코너의 태반은 서양신화 관련 서적이라는 게 증명해주듯 일반인도 서양, 그중에서도 남부 유럽의 신들에만 정통하다. 이는 우리 안의 서양 중심주의를 되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거울이다.

남유럽 신화 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자 독일 게르만, 스웨덴 바이킹, 영국 앵글로색슨 등의 북유럽 신화에 바탕을 둔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을 쓴 이가 바로 톨킨이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도 ‘이야기 동양신화’(황금부엉이)에서 신화 읽기의 편식 현상이 상상력의 빈곤과 편견을 낳는다며 풍부하고 균형 잡힌 상상력을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와 동양신화는 물론 다른 신화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국신화를 읽을 때 그것이 동양신화의 전부인 양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족(漢族)을 비롯해 만주족 몽고족 위구르족 회족 장족 묘족 등 55개 소수민족이 함께 사는 다민족국가인 중국은 한족 중심의 신화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 유독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정통

정 교수는 중국신화를 3가지 계통으로 나눈다. ① 동방 동이계(東夷系) ② 남방 묘만계(苗蠻系) ③ 서방 화하계(華夏系) 신화다. ①은 황하(黃河) 하류와 산동반도, 요동반도 등 발해만 일대와 중국 동부 해안지대에 거주하던 동이계 종족의 신화다. 북방신화 계통인 한국신화도 이 계통이다. ②는 장강(長江) 이남에 거주하던 묘만계 종족의 신화인데, 동이계 종족이 남방으로 이주하면서 전파한 것이 많기 때문에 묘만계 신화와 동이계 신화는 사실 같은 계통에 속한다. ③은 황하 중상류 지역에 거주하던 화하계 종족의 신화로 오늘날 중국의 중심 민족인 한족의 신화다.



중국 신화학자 장관운(蔣觀雲)이 1903년 처음으로 신화라는 말을 쓰면서 신화 연구가 활발해졌고 문화대혁명이라는 긴 휴면기를 지나, 중국신화 연구의 독보적 존재인 위앤커가 1984년 ‘중국신화전설’(민음사)를 내면서 대륙에 신화 열풍이 불었다. 물론 이 책도 한족 중심의 일원론적 문화발생론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소수민족 신화를 포괄하는 다원론적 문화론에 발을 맞추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사마천이 역사서인 ‘사기’의 ‘본기(本紀)’에서 오제(황제-전욱-제곡-요-순)를 하은주 앞 시대의 제왕으로 올려놓고 신화를 역사화해 한족 중심주의에 빠진 데 반해 위앤커는 공공과 과보, 예 등 ①과 ② 계통의 신들을 이야기하면서 다원론적 시각의 싹을 보여줬다.

예컨대 ‘동양의 이카로스’ 과보는 태양과 달리기 경주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과보의 큰 걸음은 산과 들을 성큼성큼 건너 해를 쫓아갔다. 해질 무렵 목이 말라 좌우 옆으로 흐르는 황하와 위수(渭水)를 벌컥벌컥 단숨에 마셨지만, 거인족인 과보에게는 접시물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머나먼 북쪽의 대택(바이칼 호수)에 가다 목말라 죽고 만다. 그가 짚던 지팡이는 복숭아 숲으로 변했다. 죽어서나마 그의 영혼은 복숭아 뿌리로 변해 원하던 물을 실컷 마실 수 있었던 것이다.

샤갈은 ‘이카로스의 추락’(1973)에서 태양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말을 무시하고 높이 날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 추락하는 이카로스를 그렸다. 이카로스는 추락해 죽고 만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난다. 이카로스 신화가 은유하는 것은 ‘인간의 허황된 욕망’이다. 과보도 태양과 무모한 경주를 한다. 그러나 과보는 죽은 뒤 복숭아나무로 변신해 길손들의 목마름을 달래준다. 옛 부족의 영웅이었을 과보의 도전정신이 바로 복숭아로 빗대진 것이다.

또한 시인 도연명(365~427)은 시 ‘독산해경(讀山海經)’에서 동진(東晋)의 군벌 유유(劉裕)가 왕권을 찬탈한 것에 대한 절망감과 저항의식을 과보 등의 비극적 영웅에 빗대 다음처럼 노래했다.

“과보 장대한 뜻 세워/ 태양과 달리기를 했네/ 우연 근처 이르러도/ 이기지 못하고/ 거대한 신의 힘 빼어나지만/ 강물을 다 마셔도 목마름 채우지 못하네/ 그의 남은 자취 등림(鄧林)에 깃들어 있고/ 빼어난 공은 죽은 뒤에 빛나네.”

황지우도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에 발표한 시 ‘산경(山經)’에서 과보 신화를 패러디해 당시 저명한 정치지도자의 좌절을 노래했다.

“다시 서쪽으로 5백 리 가면 일산(日山)이라는 곳이다. 해와 달리기 시합을 하여 이기면 신제(新帝)가 되기로 한 대주(大周)가 이곳에서 해와 경주를 했는데, 일산에서는 아침에 해가 세 개나 떴다. 해질 무렵 목이 말라 한수를 마시러 갔다가 거기에 도착하기 전 목말라 죽었다. 그가 꽂고 쓰러진 지팡이가 변하여 눈부신 도림(桃林)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대주(야당 대통령 후보)가 선거 패배 후 일산으로 이사를 갔고, 10년 후에는 신제(대통령)가 됐다. 놀랍도록 예민한 시인의 감수성이다.

동양의 신들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 무궁무진

훗날 과보족은 황제와 치우의 전쟁에서 치우 편에 가담했다고 한다. 그들은 치우와 마찬가지로 염제 계통(①과 ②)의 신이기 때문이다. 한데 치우가 황제군의 응룡에게 죽자 과보족도 대부분 전사한다. 그러나 과보족은 오랫동안 ①과 ②에 의해 저승세계를 지키는 ‘동양의 하데스’ 신으로 숭배된다. 예를 들면 고구려의 삼실총(三室塚) 고분벽화와 경북 영주군 읍내리 고분벽화에는 뱀을 쥐고 달려가는 자세를 취한 거인 장사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과보를 상징한다.

또 사마천은 ‘사기’의 ‘본기’에서 ③의 우와 곤은 기록한 데 반해 ①의 예는 기록하지 않았다. ①의 신인 예는 고구려 신화의 주몽처럼 명궁이었다. 그는 요임금 때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10개의 태양 중 9개를 화살로 명중해 떨어뜨렸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을 위해 많은 어려움을 해결해준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와 비교되는 대목인데, 김선자 연세대 중문과 교수는 ‘변신이야기’(살림)에서 예 신화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한국신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예의 화살을 맞은 태양은 빛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졌는데, 그게 바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세 발 달린 까마귀(三足烏)’다. 예는 스승의 재주를 시기한 제자 봉몽에게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맞아 죽었는데, 죽은 뒤 귀신들의 우두머리인 종포신(宗布神)이 돼 나쁜 귀신들을 잡아먹었다. 죽어서도 인간들의 수호신이 된 셈이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단옷날이나 설날이 되면 나쁜 귀신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예 종포신을 대문 앞에 걸어둔다. 우리가 제사상을 차릴 때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 까닭은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예가 죽임을 당했고, 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복숭아나무였기 때문이다.

신화는 인간의 최고 상상력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상상력이 마냥 자유로울까. 정 교수는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문학동네)에서 상상력도 생산과 소비를 지배하는 문화산업의 영향 아래 있기에 우리가 아프로디테, 세이렌, 미노타우로스(사람의 몸에 소 머리를 한 크레타 섬의 반인반수), 예쁜 인어공주는 알지만 ‘산해경’ 속의 인어가 평범한 아저씨라든지, 농업과 의약의 신인 염제는 잘 모른다고 일갈한다.

서양신화가 풍요로운 만큼 동양신화도 그러한데, 그 까닭은 한족 중심의 중국신화 덕분이 아니라 ③ 외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자는 이야기다. 오리엔탈리즘인 서구중심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 못지않게 중화주의인 한족중심 신화를 극복해야 동양신화의 정체성이 올곧게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617호 (p98~99)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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