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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기후에 적응해야 진짜 살아 있는 작품

  • 최광진 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장

문화적 기후에 적응해야 진짜 살아 있는 작품

문화적 기후에 적응해야 진짜 살아 있는 작품

몬드리안의 1912년 작 ‘나무’

얼마 전까지 화려하게 가을을 수놓았던 낙엽들이 떨어지고 어느덧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나무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것만 남긴다. 자신을 유지하면서 봄에는 풋풋하게, 여름에는 무성하게, 가을에는 화려하게, 겨울에는 앙상하게 외양을 바꾼다. 이는 생존을 위한 적응이고, 인생과 우주의 모든 역사가 그러한 듯하다.

미술의 역사에도 계절이 있다. 르네상스 이후 사실적인 재현으로 세계를 무성하게 드러낸 것이 여름이라면,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의 화려한 가을을 거쳐 20세기 중반에 나타난 추상미술은 앙상한 겨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몬드리안의 수직과 수평으로만 된 그림과 말레비치의 정사각형, 그리고 모노크롬과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품들은 치장을 걷어치우고 가장 본질적인 요소만 남기려 했다.

가을의 단풍을 즐겼던 사람들이 겨울나무에 눈길을 주지 않듯, 사실적인 미술에 익숙한 사람들은 추상미술에 등을 돌렸다. 그러나 겨울에 나무가 무성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스스로 버리지 못하는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서라도 그 나무를 살려야 한다. 그것은 생을 연장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시대적으로 모더니즘이 겨울로 간 역사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여름으로 가는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동시대 미술에서 이미지들의 무성함은 문화적 계절이 여름임을 입증한다. 이러한 계절감각은 지역이나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여름이 됐는데도 잎을 내지 못하는 나무들은 죽은 나무들이다. 시대정신은 바로 문화적 기후이고, 이 문화적 기후에 적응해야 살아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



주간동아 617호 (p91~91)

최광진 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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