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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⑧ 류옌둥(劉延東)

剛과 柔 겸비한 자수성가형 권력자

공장 노동자로 시작해 공직에서 출세가도 … 해외까지 인맥 넓은 마당발 ‘정평’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剛과 柔 겸비한 자수성가형 권력자

剛과 柔 겸비한 자수성가형 권력자

류옌둥 중앙정치국 위원.

10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 직후 선출된 25명의 중앙정치국 위원 가운데 류옌둥(劉延東·62) 위원은 홍일점이다. 류 신임 위원은 곧잘 ‘철의 낭자’로 불리는 우이(吳儀·69) 부총리에 비견된다. 중앙정치국 위원 중 홍일점이라는 점도 같거니와, 말 그대로 자수성가해 ‘중국 정치권력의 심장부’인 중앙정치국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거 장칭(江靑) 예췬(葉群) 덩잉차오(鄧穎超) 등 3명이 중앙정치국 위원에 선출된 적이 있지만 이는 모두 정계 실력자인 남편의 후광을 입은 경우다. 장칭은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이고, 예췬과 덩잉차오는 각각 린뱌오(林彪)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부인이다.

하지만 우 부총리와 류 위원은 다른 점도 있다. 바로 이미지다. 우 부총리 하면 ‘여전사(女戰士)’를 떠올리지만, 류 위원은 원숙함이 묻어나는 미모의 여인을 연상케 한다.

강철 같은 이미지의 우 부총리와 달리 ‘중국 정계의 미인’으로 불리는 류 위원은 일에서는 굽힐 줄 모르는 의기를 보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는다. 중화권 매체는 이런 류 위원을 ‘굳셈과 온유함을 함께 지닌(剛柔相濟) 여인’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미모에 뛰어난 패션감각으로도 유명세



류 위원은 패션감각도 뛰어나다. 2004년 5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 정협) 부주석과 중앙통일전선공작부(이하 중앙통전부) 부장 자격으로 홍콩을 방문했을 때 그는 하루 4차례 치러진 행사 때마다 옷을 갈아입었다. 옷마다 행사 내용과 잘 어울리는 데다 그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멋지게 표현해 홍콩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는 홍콩에서 ‘류 패션 선풍’이 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류 위원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필두로 한 ‘퇀파이’(團派·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소속이면서 당·정·군 고위직 인사의 자제를 일컫는 태자당(太子黨) 출신이다.

부친 류루이룽(劉瑞龍)은 중국 공산당 혁명운동에 참가한 혁명 원로였다. 항일전쟁 때 부친은 대장정에 참여했고, 인민해방군 제3야전사령군 후근사령원(사령관) 겸 정치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건국 뒤엔 상하이(上海)시 당위원회 비서장과 농업부 부부장을 지냈다.

이처럼 집안 배경은 좋았지만, 그는 부친의 후광에 따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중앙 최고 행정기관인 국무원 판공청에서 비서로 일했던 시진핑(習近平) 상무위원과는 달리 화공공장의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0년 칭화(淸華)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 카이핑(開平)현의 카이핑 화공공장에서 기술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해 10년간 허베이성과 베이징시의 화공공장에서 일했다.

그가 공직자로 변신한 것은 1980년 베이징시 당위원회 조직부 간부를 맡으면서부터. 특히 82년 공청단 중앙서기처에서 후 주석과 일하면서 출세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84년까지 그는 후 주석과 함께 중앙서기처 서기로 근무했다. 84년 후 주석이 제1서기로 승진한 뒤에도 중앙서기처 서기로 1년 더 일했다. 중앙서기처 서기와 함께 83년부터 전국청년연합 주석직도 맡았던 후 주석 밑에서 부주석으로 일한 그는 85년 4월 후 주석이 구이저우(貴州)성 당서기로 발령나자 주석직을 물려받았다.

후 주석과의 인연으로 치면 같은 ‘퇀파이’ 가운데 리커창(李克强) 상무위원이나 리위안차오(李源潮) 중앙정치국 위원보다 더 끈끈한 셈이다.

그는 30년에 이르는 공직생활 대부분을 공청단과 중앙통전부에서 보냈다. 특히 중앙통전부에서는 1991년 부(副)비서장을 시작으로 정치국 위원에 오른 뒤 중앙통전부 부장 자리를 두칭린(杜靑林) 쓰촨(四川)성 당서기에게 물려줄 때까지 무려 17년간 근무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통전부는 대만과 홍콩, 마카오, 화교는 물론 부녀연합회, 공회 등 연결되지 않은 조직이 없을 정도다. 류 위원의 친구는 사해(四海)에 모두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요직 이동 기회 가졌지만 잇따라 쓴잔

하지만 그는 최근 들어 잇따라 쓴잔을 마시고 있다. 후 주석은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당서기의 낙마로 빈자리에 류 위원을 천거했지만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반대에 부딪혀 시진핑 당시 저장(浙江)성 서기에게 내주고 말았다. 류 위원이 후 주석과 지나치게 가깝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정치국 위원에 오르긴 했지만 이번에도 당초 예상했던 우 부총리 자리는 그를 비켜가고 있다.

4개의 부총리 자리 가운데 3개가 비었지만 올해 6월 사망한 황쥐(黃菊) 제1부총리 자리는 리 상무위원이, 내년 3월 물러날 쩡페이옌(曾培炎) 부총리 자리는 왕치산(王岐山) 정치국 위원이, 우 부총리 자리는 장더장(張德江) 정치국 위원이 각각 차지할 전망이다.

현재 그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위는 교육과 과학기술, 문화, 매체, 출판, 체육 등을 담당하는 천즈리(陳至立) 국무위원 자리. 국무위원은 부총리급이긴 하지만 중앙정치국 위원이 아닌 사람도 차지할 수 있는 직위다.

현재 5개인 국무위원직은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과 양광례(梁光烈) 국방부장, 마카이(馬凱) 국무원 비서장 예정자,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상무부부장 등 모두 정치국 위원에 진입하지 못한 간부들이 맡을 것으로 관측된다. 류 위원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굴욕인 셈이다.

류 위원의 길을 가로막은 장 전 주석이 중국 최고의 지도자로 오르게 된 첫 출발점이 바로 류 위원 부친의 도움이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장 전 주석의 생부(生父)는 장스쥔(江世俊)이지만 딸만 둘인 동생에게 양자로 보냈기 때문에 장 전 주석은 어릴 때부터 양부인 장상칭(江上靑)의 집에서 자랐다. 장상칭의 원명은 장스허우(江世侯). 장상칭은 1927년 일찍이 혁명에 참가한 류 위원의 부친이 소개해 중국 공산당 청년단에 가입했고, 2년 뒤 상하이에서 공산당에 정식 가입하면서 혁명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류 위원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 부총리의 뒤를 이어 중국 최고의 여성 정치인으로서 위상을 굳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류옌둥 프로필



·한족

·1945년 11월생

·장쑤(江蘇)성 난퉁(南通) 출신

1964~1970년 칭화(淸華)대학 공정화학과 수학. 정치보도원

1970~1972년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 카이핑(開平)화공공장 직원, 기술원, 작업반장

1972~1978년 베이징(北京)화공실험공장 직원, 작업반 서기, 공장 당위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부 부주임, 주임

1978~1980년 베이징화공실험공장 당위원회 부서기

1980~1981년 베이징시 조직부 간부

1981~1982년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당위원회 부서기

1982~1991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 상무서기, 전국청련 부주석, 주석

1991~1995년 중앙통일전선공작부 부비서장, 전국청년 주석, 중앙통전부 부부장

1990~1994년 중국 런민(人民)대학 사회학 이론 및 방법 수학, 석사학위 취득

1995~1998년 중앙통전부 부부장, 중앙사회주의학원 당조(黨組) 서기

1998~2001년 중앙통전부 부부장(정부장급), 중앙사회주의학원 당조 서기

1994~1998년 지린(吉林)대학 행정학원 정치학이론 수학, 박사학위 취득

2001~2002년 중앙통전부 부부장, 중앙사회주의학원 당조 서기,

쑹칭링(宋慶齡)기금회 부주석

2002~2003년 중앙통전부 부장, 중앙사회주의학원 당조 서기, 쑹칭링기금회 부주석

2003~2005년 제10기 전국 정협 부주석, 당조 성원, 중앙통전부 부장,

쑹칭링기금회 부주석

2005~2007년 제10기 전국 정협 부주석, 당조 성원, 중앙통전부 부장

2007~현재 중앙정치국 위원, 제10기 전국 정협 부주석, 당조 성원,

제15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제16, 17기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제17기 중앙정치국 위원

제7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

제6, 8, 9기 전국 정협 상무위원

제10기 전국 정협 부주석




주간동아 617호 (p62~64)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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