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5

2007.12.18

연필로 그린 조각, 조각에 그린 그림

  •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입력2007-12-12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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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필로 그린 조각, 조각에 그린 그림

    ‘Deller hon Dainy’(작은 사진), ‘Shamoralta Shamoratha’.

    조각가 김인배 씨의 작업은 드로잉에서 시작된다. 여러 장의 그림 중 하나를 선택하고 섬유 강화 플라스틱(FRP)으로 흰색 입체조각을 만든 다음, 조각 표면에 연필로 머리카락과 같은 신체의 일부분을 그린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전시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놓는다. 작품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장소에 포함되는 것으로, 즉 공간과 조응해 ‘설치’예술로 자연스럽게 탈바꿈한다.

    예를 들면 ‘I Love You’는 우주인을 묘사한 드로잉이 모태다. 작가는 그것을 바탕으로 2m45cm의 입체를 제작했다. 얼굴은 헬멧을 쓴 모양인데, 헬멧에는 반사된 냉장고 형상의 이미지가 연필로 그려져 있다.

    ‘차원의 경계에 서라’라는 2006년 개인전 제목이 암시하듯 그의 작업에는 회화적 요소, 조각적 요소, 설치적 요소 등이 복합적으로 침투해 있다. 때문에 그가 조각을 전공했다 해도 이런 특징으로 인해 단순히 조각가라고 하기보다는 장르와 매체를 교묘하게 횡단하며 시공간을 진지하게 사유하는 ‘개념미술가’라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동시에 그의 작업에는 이성과 감성이 섞여 있다. 그는 논리적·합리적 개념뿐 아니라 정서적·감각적 개념에 근거해 예술 활동을 펼치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작품은 근본적으로 이 두 영역의 만남이자 조화이지만 말이다.

    회화·조각·설치적 요소 복합된 독특한 작품세계



    이처럼 김인배 씨는 여러 층위를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가공해 리듬감과 운동감이 돋보이는 독창적 상황을 연출한다. 그의 작품에는 크게 다섯 가지 방법이 눈에 띈다.

    연필로 그린 조각, 조각에 그린 그림

    ‘I Love You’

    첫째, 색채를 검은색과 흰색으로 한정했다. 최소화된 색채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둘째, 종종 눈 코 입이 생략되거나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생략과 강조를 통해 미묘한 뉘앙스를 포착하려는 시도다.

    셋째, 수직과 수평을 어우러지게 한다. 그는 전시장에 기립한 인물 형상을 배치하고 그 옆에 누워 있는 형상을 배치한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조각상을 배치한다. 넷째, 전시장 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벽이라는 평면에 조각을 붙이기도 하고, 나아가 벽이 튀어나오거나 들어가게 만듦으로써 평면, 부조, 입체의 높낮이를 다양하게 부각한다. 다섯째, 조명을 중요하게 활용한다. 밝음과 어둠을 대조시켜 풍부한 공간감과 미세한 리듬감이 살아나게 유도한다.

    11월2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시작한 김인배 개인전 ‘진심으로 이동하라’에서는 김씨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전시회는 12월28일까지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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