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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⑦ 왕양(汪洋)

권위주의 타파 선봉…서민 찬사 ‘한 몸에’

17세 공장 노동자로 사회 첫출발…33세 청장급, 38세 차관급 초고속 승진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권위주의 타파 선봉…서민 찬사 ‘한 몸에’

권위주의 타파 선봉…서민 찬사 ‘한 몸에’
“앞으로 특별한 요청이 없는 한 지도자 동정은 1면에 싣지 마라.”

지난해 말 왕양(汪洋·52·사진)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충칭시 지역신문에 내린 지시다. 그는 중앙 지도자의 일정이나 연설 등 특별히 중요한 내용이 아닌 한 모두 2면 뒤로 기사를 돌릴 것을 요청했다.

‘땡전 뉴스’가 사라진 지 오래인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동정일지라도 뉴스 가치가 없으면 싣지 않지만, 중국은 다르다. 매일 오후 7시 전국에 동시 방영되는 ‘신원롄보(新聞聯播)’는 사실상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의 동정 뉴스나 다름없을 정도다. 항상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시작으로 우방궈(吳邦國)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 순으로 그날의 지도자 활동이 전해진다.

지방 뉴스도 마찬가지다. 성(省), 직할시, 자치구의 당서기부터 서열에 따라 기사가 배열된다. 이런 점에서 왕 서기의 지시는 ‘천지개벽’이나 다름없다. 그는 이어 당 지도부와 관련한 기사도 1000자가 넘지 않게 하고, 라디오와 TV는 3분이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그는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지도자들이 어디에 가서 뭘 하는지가 아니다”라면서 “앞으로 매체는 서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소식들을 더 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2006년 1월 ‘충칭일보(重慶日報)’ 1면에 78건이나 실렸던 지도자 기사는 올해 1월 41건으로 크게 줄었다.

충칭 근무할 때 주민 식사대접·기념품도 사양



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을 섬기는 지도자로서의 왕 서기 모습은 여러 곳에서 포착된다. 가뭄이 심하던 지난해 여름 그는 농촌의 채소시장을 방문했다. 채소 파는 농민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보는데, 옆에 있던 수행원이 농민에게 앉아서 얘기하지 말고 일어서서 답하라고 했다. 그가 손으로 제지했지만 수행원은 재차 농민에게 재촉했다. 그러자 화가 난 그는 농민이 파는 고추바구니에서 큰 고추를 꺼내 수행원에게 던지며 말했다.

“이봐, 우리가 공복(公僕)인데 우리가 일어서서 얘기해야지, 물건 파는 농민에게 몇 마디 때문에 일어서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한번은 그의 현지시찰 차량을 위해 경찰이 교통통제를 실시해 많은 시민들의 차량이 길게 늘어선 모습을 보고 당장 길을 터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백성 위에 군림하는 등 사상해방이 안 된 관리들이 있다”면서 “이들이 서민을 돕지는 못할망정 되레 괴롭히고 있다”고 일갈했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오히려 국민에게 폐만 끼치는 관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실제 행동이 (모든 것의 정수를 모아놓은) 강령보다 낫다”고 말하는 그는 쓸데없는 공론보다 행동을 중시한다. 그래서 책상머리에 앉아 일을 하기보다 밖으로 시찰을 나갈 때가 더 많았다. 지난해 충칭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도 그는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현장을 뛰며 가뭄 극복에 진력했다.

그가 광둥(廣東)성 당서기로 발령나 11월30일 충칭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눈물로 전송했다. 기업가인 랴오창광(廖長光) 씨는 “그는 실무에 힘쓰고 청렴하며, 항상 서민에게 친근하고 올바르며 진실한 사람이었다”면서 “한번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지만 끝내 응하지 않았고 기념품도 모두 돌려보냈다”며 아쉬워했다. 충칭시 우룽(武隆)현 훠루(火爐)진 바오펑(保峰)촌의 농민 왕쿤(王坤) 씨는 “왕 서기가 며칠 전에도 왔을 정도로 오지인 이곳까지 관심을 갖고 돌봐줬다”면서 “돼지 닭을 잘 기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을 절대 중단하지 말라며 돈까지 주고 갔다”고 말했다.

이처럼 남다른 업무 태도로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인정받아 누구보다 승진이 빨랐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치가 안정기에 들어선 다음 승진이 가장 빨랐던 3인은 후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상무위원 그리고 왕 서기다.

리 상무위원은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8세에 이미 공청단 중앙학교 부부장과 중앙서기처 후보서기로 청장급에 승진했고, 2년 뒤엔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로 차관(부부장)급에 올랐다. 이어 38세에 장관(부장)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거머쥐고, 43세에 당시 최연소로 성장급에 승진했다.

후 주석 역시 출발은 늦었지만 42세에 장관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역임한 데 이어, 이듬해 43세에 구이저우(貴州)성 당서기가 됐다. 그리고 49세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는데, 후 주석의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0대 초반에 시장 지내 ‘갓난아기 시장’ 별명 듣기도

17세에 공장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왕 서기 역시 누구 못지않게 승진이 빨랐다. 26세에 안후이(安徽)성 쑤(宿)현 부서기에 이어 이듬해엔 처장급인 공청단 안후이성 선전부 부장에 올랐다. 이어 33세에 청장급, 38세에 차관(부부장)급이 됐다. 리 상무위원보다는 못하지만, 집안 배경이나 이끌어주는 사람 없이 자력(自力)으로 올라섰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30대 초반에 안후이성 퉁링(銅陵)시 시장을 할 때는 전국에서 가장 어린 청장급 간부 가운데 한 명이었기 때문에 ‘와와(娃娃) 시장’이라 불렸다. ‘와와’란 갓난아기를 일컫는 중국어다. 이처럼 젊은 시장이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은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하면서 특별히 그를 접견해 격려했다. 38세로 안후이성 부성장에 임명될 때도 당시 전국 최연소였다.

충칭시 사람들은 그가 충칭시 서기로 재직하면서 충칭시를 농공병진의 모범지역으로 만든 것에 감사한다. 그 또한 충칭시를 떠나면서 “나는 영원한 충칭인”이라며 충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안후이성에서 태어나 1999년 국가발전계획위원회 부주임으로 베이징(北京)에 올라오기 전까지 안후이성에서만 27년을 근무한 정통 안후이방(安徽幇)이다. 현재 안후이방은 후 주석을 비롯해 우 상무위원장, 리 상무위원, 왕 서기, 왕민(王珉) 지린(吉林)성 당서기, 추보(儲波)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당서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 정치권력의 심장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3명이 안후이성 출신이다. 중국의 태양은 안후이성에서 비추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왕 서기는 현재 25명 중앙정치국 위원 가운데 가장 어린 데다 후 주석과 같은 공청단 출신이고 고향도 같아,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정치 분석가들의 지배적인 예측이다.

왕양(汪洋)



·한족

·1955년 3월생

·안후이(安徽)성 쑤저우(宿州) 출신

1972~1976년 안후이성 쑤(宿)현 지구 식품공장 노동자. 공장 작업장 책임자

1976~1979년 안후이성 쑤현 지구 ‘75’ 간부학교 교원. 교원연구실 부주임. 교당위원

1979~1980년 중앙당교 이론선전간부반 정치경제학 이수

1980~1981년 안후이성 쑤현 지구 당위원회 당교 교원

1981~1982년 공청단 안후이성 쑤현 지구 당위원회 부서기

1982~1983년 공청단 안후이성 선전부 부장

1983~1984년 공청단 안후이성 부서기

1984~1987년 안후이성 체육위원회 부주임, 당조(黨組) 부서기

1987~1988년 안후이성 체육위원회 주임, 당조 서기

1988~1992년 안후이성 퉁링(銅陵)시 부서기, 대리시장, 시장

1989~1992년 중앙당교 통신(函授)학원 본과반 당정관리 전공

1992~1993년 안후이성 계획위원회 주임, 당조 서기, 성장 조리

1993~1993년 안후이성 부성장

1993~1998년 안후이성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부성장

1993~1995년 중국과학기술대학 관리과학 전공 연구생 과정 이수. 공학석사 취득

1997~1997년 중앙당교 성부급 간부 연수반 이수

1998~1999년 안후이성 부서기, 부성장

1999~2003년 국가발전계획위원회 부주임, 당조 성원

2001~2001년 중앙당교 성부급 간부 연수반 연수

2003~2005년 국무원 부비서장, 기관 당조 부서기

2005~2006년 충칭시 당서기

2006~2007년 충칭시 당서기, 시 인대(人大) 상무위원회 주임

2007~2007년 중앙정치국 위원, 충칭시 서기, 시 인대 상무위 주임

2007~현재 중앙정치국 위원, 광둥(廣東)성 서기

제16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제17기 중앙위원회 위원, 중앙정치국 위원




주간동아 615호 (p58~59)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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