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5

2007.12.18

유권자 감성 자극 이미지 전쟁

정동영·이명박·이회창의 광고 3파전 … 한국인 보편 심리 집요하게 공략

  • 김홍탁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광고평론가

    입력2007-12-12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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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한국에서도 대통령선거는 하나의 이벤트다. 군부통치를 종식시키고 민주 대통령을 뽑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던 정치적 준엄성의 시대는 지났다. 후보자들의 언변엔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았다 할 것 같은 기세가 담겨 있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들이 내건 공약(公約)이 상당 부분 공약(空約)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민은 날조된 선전(propaganda)과 꾸며진 상황으로 가득 찬 ‘이미지’를 소비할 뿐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대통령선거는 공약 대결이 아니라 이미지 대결이다. 그 이미지를 증폭하기 위해 정동영 이명박 이회창 세 후보는 TV와 신문을 통해 활발한 광고활동을 펼치고 있다. 먼저 세 후보는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의 성공사례에 대한 강박에 싸여 있는 듯하다.

    당시 노무현 후보자는 눈물을 흘리며 ‘위대한 마이너리티를 위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것’을 천명했다.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한 이 광고는 감성적 소구가 잘 먹힌다는 한국민의 보편적 심리를 겨냥해 효과를 봤다. 그 감성에 이번 입후보자들 역시 ‘올인’했다.

    유권자 감성 자극 이미지 전쟁
    [정동영] 카리스마 없음을 대변하는 카리스카 없는 광고

    정동영 후보는 일반 국민 처지에서 볼 때 정치인으로서 뚜렷한 캐릭터가 없다. 점잖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카리스마는 약하다. 이처럼 뚜렷한 이미지가 없는 사람을 광고를 통해 명확한 이미지로 포장하기란 힘든 일이다. 지금 그의 TV광고는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의 모습을 비춰주는 첫 편에 이어 ‘안아주세요’라는 콘셉트의 두 번째 편을 방영하고 있다. ‘안아준다’는 콘셉트는 효과적이다. 따뜻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내세우는 ‘좋은 대통령’이라는 메시지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슬로건이 지나치게 두루뭉술해서 별 특징이 없다. 광고 이미지는 감성에 호소하더라도 카피만큼은 이성을 잡아끌 강력한 것을 찾아내야 하는 법인데 그 부분에 빈틈이 보인다.



    정 후보의 신문광고는 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호전적이다. 이명박 후보가 저지른 ‘나쁜 짓’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이 후보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다. ‘1번 생각하면, 좋은 대통령이 보입니다. 2번 생각하면, 나쁜 대통령이 보입니다’라는 카피에서 드러나듯 유권자의 마음속에 ‘정동영=좋은 대통령, 이명박=나쁜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광고 효과에선 의문이 든다. 지금 이 후보를 지지하는 40%대 유권자들은 그에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방 일색의 광고는 정 후보가 그만큼 내세울 게 없다는 사실을 역으로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된다. 선두주자를 비방하고 물타기를 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후발주자가 취하는 수법이다. 하지만 이 수법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음을 유구한 마케팅의 역사는 알려준다.

    유권자 감성 자극 이미지 전쟁

    정동영 후보의 TV광고와 네거티브 전략을 내세운 신문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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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초지일관 경제혁명가 아이디어 2% 부족

    이명박 후보는 초지일관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심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데 올인한 것이다. 마케팅에서 기본인 SWOT분석(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Threat ·강점, 약점, 기회요인, 위협요인)을 빌린다면, 자신의 ‘강점’을 완벽한 ‘기회요인’으로 삼는 전략이다.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에게 ‘청계천 신화’로 각인돼 있는 이 후보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확실하게 호소할 수 있는 요소다.

    국밥집의 욕쟁이 할머니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장통의 할머니를 등장시킨 두 편의 TV와 인쇄 광고는 경제를 살리는 데 이후보가 제격이라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심어주고 있다. 두 편의 광고에 감정이 이입되기 때문이다. 민심을 살피려면 택시기사나 시장 상인들과 얘기를 나눠보라지 않던가. 이 후보의 광고는 시장에서 주워온 말들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살기 힘드니 잘살게 해달라는 메시지를 실감나게 전달한다. 광고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하지 않고 거리감을 없애 광고에 젖어들게 한다.

    아쉬움도 있다. 광고에서 욕쟁이 할머니의 지청구에는 아랑곳 않고 이 후보가 계속 국밥을 먹는 장면에 대해 ‘그렇게 먹고도 또 먹느냐’는 식의 반대 댓글이 나온 게 그 예다. 이 후보의 약점이랄 수 있는 탐욕스러움이 부각된 것이다. 공감에 중심을 두는 괜찮은 아이디어였지만, 아이디어의 힘을 충분히 끌어내는 데는 2%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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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통 할머니를 등장시킨 이명박 후보의 TV와 인쇄 광고.



    유권자 감성 자극 이미지 전쟁
    [이회창] 금 간 ‘대쪽 이미지’ 다시 내세워 무감동

    이회창 후보의 대쪽 미지에는 이미 금이 많이 갔다. 게다가 ‘뉴 페이스’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연속 두 번 낙방하고 정계 은퇴까지 선언한 이 후보는 함량이 모자란다. 어느 때보다 차별화가 쉽지 않다. 이 후보는 현재 시점까지 TV광고 한 편만을 활용했다. 가정경제, 교육, 사회 약자를 대변하는 아버지, 선생님, 소녀가장을 등장시켜 그들의 마음을 알았으니 그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잘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내용이다. 오만하게 비춰지던 약점을 극복하면서 반듯한 대한민국을 세워나가겠다는 슬로건을 통해 자신의 강점인 대쪽 이미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그의 광고는 마치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감성에 호소하는 표현이라도 그것이 마음에 스며들 때 효과가 발휘되는 법이다. 이 후보의 광고처럼, 얻은 교훈을 기반으로 잘 해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내러티브는 마치 논설문을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다. 감동이 없다. 오히려 감동스러운 내용마저 토막내 이성적으로 정리하려는 듯한 부자연스러움이 드러난다.

    유권자 감성 자극 이미지 전쟁

    아버지, 선생님, 소녀가장을 등장시켜 감성에 호소하는 이회창 후보의 TV광고.

    이명박 광고에 필적 못한 정동영, 이회창표 광고

    게다가 이 후보의 광고에 등장하는 핵심 슬로건 ‘듬직한 대통령, 반듯한 대한민국’ 역시 뚜렷한 인상을 각인시키는 메시지가 되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대통령은 지미 카터처럼 양심적이고 반듯한 대통령이 아니라 루스벨트처럼 공황에 빠진 나라를 건져낼 지혜와 용기를 가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광고는 전략에는 충실했지만, 약효가 없는 전략에 충실한 셈이 됐다.

    세 후보의 광고에서 보듯, 이미지 포지셔닝이라는 광고의 장르적 성격을 가장 잘 활용한 쪽은 이명박 후보다. 다른 두 후보의 경우 광고라는 형식은 빌려왔지만 내용 구성에서는 홍보물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동영 후보는 ‘좋은 대통령’이라는 날이 무딘 칼을 버리는 게 좋겠다. 지금 국민은 빈부격차, 공교육·사교육의 대립, 계속되는 노사갈등 등 어느 때보다 양극화가 심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 후보의 콘셉트인 ‘안아주세요’는 광고에서 보여준 ‘희망을 안아주세요’류의 막연한 포옹이 아니라, 위의 문제들을 아우르는 포옹으로 비춰져야 할 것이다. 정 후보는 똑똑한 공약을 바탕으로 스마트한 후보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그의 이미지에 맞을 듯싶다.

    이회창 후보는 차라리 ‘정통 보수’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그의 표밭은 보수성향 대통령을 뽑고 싶은데 이명박 후보는 마음에 안 드는 그룹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통 보수로서 안정 속에 발전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로운 인물로 다가가는 것이 나을 듯싶다. 결국 나이 든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은 명석한 머리도 뜨거운 가슴도 아닌, 깊고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 아니겠는가. “나이 든 사람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겠소?”라는 먼데일의 공격에 “상대편의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용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응수한 것은 레이건이었다. 유권자의 마음을 뒤흔든 한마디였고, 레이건은 압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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