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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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신화’ 한국 증시 쥐락펴락

허 찌르는 상품 개발, 공격적 마케팅… 창조적 역발상으로 외국 회사와 ‘맞장’

  • 백광엽 한국경제신문 기자 kecorep@hankyung.com

    입력2007-12-05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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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신화’ 한국 증시 쥐락펴락

    창업 10년 만에 미래에셋을 국내 최고의 자산운용회사로 성장시킨 박현주 회장. 최근 ‘박현주 권력’에 대한 공방이 한창이다.

    요즘 여의도 증시는 미래에셋 얘기로 넘실거린다.

    증권맨들은 장중에 메신저를 통해 ‘미래에셋이 무슨 종목을 샀다더라’는 정보 교환에 열심이다. 점심이나 저녁자리에서도 미래에셋을 경외하는 ‘친미파’와 폄훼하는 ‘반미파’ 간에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증시의 절반은 미래에셋이고, 나머지 절반은 미래에셋을 따라하는 사람들”이란 말이 나돌 정도다.

    삼성 대우 우리투자증권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미래에셋 신화를 쓰고 있는 주인공은 창업자 박현주(49) 회장. 그는 두 달 전 “금융감독 관료들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침없는 발언으로 뉴스의 중심에 섰다. 규제산업인 금융업 종사자가 ‘갑’격인 감독자를 향해 쓴소리를 뱉었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2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는 촌평으로 관료사회를 들쑤셨던 일이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판단·돌파력 갖춘 남다른 리더십

    삼성이 짧은 시간에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배경에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리더십이 있었듯, 미래에셋 돌풍에도 ‘동물적 감각의 승부사’ 박 회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미래에셋의 강점인 경쟁자들의 허를 찌르는 상품 개발과 한발 빠른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은 대부분 박 회장의 머리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판단력과 돌파력에는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불과 3, 4년 만에 이처럼 큰 성취를 이룬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박 회장의 통찰력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자본시장이 자산운용업 중심으로 성장할 것이란 점을 깨닫고 10여 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작품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왔다. 물론 그때마다 시장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출시로 돌풍을 일으켰고, 적립식 펀드로 간접투자시대를 열었다. 중국 인도 등에 투자하는 해외 펀드로 투자자들에게 고수익을 돌려주면서 ‘원 캐리’ 시대를 개척한 주인공도 박 회장이다.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5조원에 육박하는 시중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인사이트 펀드’도 글로벌 분산투자에 대한 수요를 간파한 통찰력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시장을 꿰뚫는 통찰력의 원천으로 박 회장은 독서를 꼽는다. 그는 “독서를 통해 현상 저 너머의 진실을 감지하는 직관력을 길러야 한다. 직관력은 투자자가 갖춰야 할 최고의 자질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고생스러워도 1년 중 절반을 해외에 체류하며 글로벌 금융시장 분위기를 호흡하는 것도 직관력을 기르기 위한 수행 과정이다.

    남다른 발상으로 자신이 내린 결론에 따라 과감히 돌파하는 도전정신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소수의 처지에서 따져보는 것’을 투자의 주요 원칙으로 내세운다. “다수를 따라가면 위험은 적지만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에서 승부사 기질이 물씬 배어난다.

    창업 초 외환위기 당시 금리가 30%까지 치솟자 하락 반전을 예상해 채권에 베팅한 것이나, 조선업이 대규모 만성 적자에 시달릴 때 턴어라운드를 확신하고 현대중공업을 3만원 안팎에 대량 매집한 사례에서 승부사다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박 회장의 차별화된 역발상은 끝없이 진화하며 자본시장을 한 단계 성숙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원증권 중앙지점장 시절 전국 약정 1위에 오른 것 역시 역발상의 결과다. 당시 잦은 매매로 수수료 수입을 노린 다른 영업맨들과 달리 그는 수익률에 승부를 걸었다. 돈을 잘 벌어주면 고객이 더 많은 돈을 맡기게 돼 굳이 무리해서 매매하지 않아도 수익이 발생할 것이란 발상의 전환을 실천했다.

    박 회장의 창조적인 역발상은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정서적 동질감과 지리적 이점이 있는 아시아시장에서는 외국의 유수 금융회사들보다 못할 게 없다는 판단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그의 장담처럼 미래에셋은 글로벌 금융회사 못지않은 수익률과 서비스로 원 캐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해외 운용사에 안방을 내준 것과는 판이한 결과다.

    ‘박현주 신화’는 한국 금융의 자존심도 세웠다. 즉 피델리티, 템플턴 등 거대 투자회사들도 국내에서만큼은 박 회장의 투자전략을 벤치마킹할 정도다. 미래에셋를 따라하면 성공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전문가들은 공격적 자산운용 인색한 평가

    하지만 박 회장에 대해 인색한 평가를 내리는 전문가들도 의외로 많다. 먼저 지나치게 공격적인 자산운용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다. 미래에셋으로 돈이 몰리는 이유인 높은 운용수익률은 고위험을 감수한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대세 상승장에서는 과감한 베팅이 위력을 발휘했지만, 하락장이 시작되면 수익률 추락이 심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미래에셋 펀드는 주가 조정기에 다른 펀드보다 하락폭이 큰 경우가 많다.

    한국 증시 최대 기관투자가인 미래에셋의 공격적인 투자가 주가 왜곡을 불러오고 자본시장의 위기를 증폭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래에셋이 사들이는 주식에 매수세가 집중되다 보니 아무리 좋은 주식이라도 이 회사의 간택을 받지 못하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가격 왜곡은 언젠가는 교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증시 속성상 1년 이상 가는 조정장은 언제든지 올 수 있고, 그때가 되면 상대적으로 부진한 미래에셋 펀드에서 자금이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한 미래에셋의 부진이 우리 자본시장의 위기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

    한 운용사 사장은 “대세 상승장을 내다본 박현주 회장의 직관력과 과감한 베팅이 성공을 불러왔지만, 업계 내 위상을 고려할 때 이제 정석투자로 돌아와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경쟁자로서의 시기심 때문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상당수 사람들이 이 같은 시각에 동조한다.

    최근 불거진 미래에셋 간부급 펀드매니저의 선행매매 가담 의혹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소문으로 정리가 됐지만, 이 같은 소문은 시장에 냉소적인 시각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박 회장이 탁월한 통찰력과 돌파력으로 증시 일각의 부정적 평가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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