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2

2007.11.27

천 년 역사 간직 순결한 사원의 도시

  • 글·사진=박동식 여행작가 www.parkspark.com

    입력2007-11-21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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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년 역사 간직 순결한 사원의 도시

    루앙프라방은 전체가 사원으로 뒤덮인 평화로운 도시다.

    박물관 석판에 쓰인 옛 문자는 정말 아름다웠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책도 신기했고 비단 제품들 또한 훌륭했다. 진열장 속 수백 개의 불상 중에는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것도 제법 많았고, 금판으로 옷을 입히거나 머리 장식, 보좌 등을 만들어 장식한 것도 있었다. 대검의 칼집과 손잡이의 섬세한 금은 세공의 극치를 보여줬고, 고대 벽화처럼 문양이 퇴색된 목재가구는 신비감이 느껴질 정도로 고풍스러웠다.

    란쌍 왕조의 古都 800년 영화 누려

    한때 이 도시를 호령한 마지막 왕의 거처였던 왕궁을 개조한 박물관에는 그와 선대 왕들이 수집하고 소유한 많은 물건들이 당시 그대로 전시돼 있었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은 라오스 북부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한때 란쌍(Lane Xang) 왕조의 수도로 800여 년의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사원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적한 시골 도시 곳곳에 분포된 수십 개의 사원은 천 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으며, 라오스의 찬란한 불교미술을 엿볼 수 있는 걸작들이다.

    박물관을 나와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로 알려진 왓 씨앙통(Wat Xieng Thong)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 사원들이 아름다운 것은 웅장하거나 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곡선미와 벽면, 기둥, 천장 등에 새겨진 문양 때문이다. 검은색이나 붉은색 바탕에 금박 혹은 은박으로 문양을 새겼는데 흑, 적, 금, 은의 네 가지 조합과 수백 가지 문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작지만 아름다운 사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원을 나와 강을 따라 걸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강가에 일군 밭에 물지게로 물을 나르는 농부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삶이란 어깨에 짊어진 물지게만큼이나 버거운 것일까.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 영원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어쩌면 강을 흐르는 물줄기만이 변함없으며 바람에 쓰러지는 들풀만이 나고 지고 영원한 것은 아닐까.

    다음 날 오전, 나는 푸시(Phou Si) 언덕의 수백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루앙프라방 사람들에게 신성한 언덕으로 여겨질 뿐 아니라, 지형적으로도 중심 구실을 하는 곳이다. 그곳 계단 어느 구석에 누군가 ‘220(번째)’이라고 낙서처럼 써놓은 글씨를 보았다. 그 옆에 걸터앉아 헉헉거리며 풀무질하는 가슴을 잠시 진정시켰다.

    수십 개 불교사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천 년 역사 간직 순결한 사원의 도시

    루앙프라방의 대표적인 사원 왓 씨앙통 본전. 전형적인 루앙프라방 양식 건축물로 처마가 길고 화려하다.

    진녹색 이끼 위에, 굴러다니는 돌 조각으로 썼을 법한 숫자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언덕을 오르면서 헤아리다 잊어버린 계단의 숫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추측을 믿기로 했다. 220에 새로운 숫자들을 더하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221, 222, 223…. 그러나 정상에 오르기 전 찰나처럼 스쳐간 잡념 때문에 다시 그 숫자를 잊고 말았다.

    언덕 꼭대기에서 보니 이쪽도 강이요 저쪽도 강이었다. 남칸강 철교를 지나는 자동차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고 강을 오가는 배들의 엔진 소리도 환청인가 싶게 아련했다. 칠이 벗겨진 사탑과 문이 잠긴 작은 사당 하나. 그리고 이 도시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버려진 러시아제 대공포.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대공포는 기능을 상실했지만 회전력만은 신기할 정도로 유연했다. 모두들 어디로 갔는지 정상에는 찾는 이 없이 나 혼자뿐이었다.

    산과 강에 감싸인 채 수십 개 사원이 산재한 루앙프라방의 전경을 감상하며 한참 앉아 있노라니 누군가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언덕 아래 매표소 직원이었다. 그는 탑 뒤에 앉아 있는 나를 보지 못하고 곧바로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나는 시야에서 사라진 그를 의식하지 못했다. 문득 그 소리가 궁금해서 탑을 돌아 그가 사라진 쪽으로 가보았다. 그는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는데 손에는 몇 장의 표가 들려 있었다. 여행객이 버린 입장표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순간적으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입장료 8000킵(약 1000원). 점심 한 끼는 너끈히 먹을 돈이다. 하루에 10장씩 모아서 다시 팔아도 그의 월급보다 많은 액수가 될 것이다. 매표소 직원의 행동이 올바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인생에서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더 중요한 것은 진실과 정직이라는 설교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가식과 위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보며 그냥 웃고 말았다.

    8000킵짜리 입장표를 줍기 위해 정상까지 올라와 쓰레기통을 뒤지는 그의 인생이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그를 통해 집 떠난 영혼처럼 길 위를 방황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던 것은 아닐까. 기억하지 못하는 계단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는 삶의 깊이와 다양함과도 같을지 모른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을 만큼 아름답고 유서 깊은 이곳에서 나는 흩어져 있는 사원들만큼이나 많은 번민을 했다. 까닭도 없이 삶이 무엇이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며칠이 수행의 시간과도 같았다. 비록 그곳을 떠나면서 다시 빈 마음이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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