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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소광섭 교수

“경락의 신비 풀 열쇠 찾았다”

장부와 경혈 연관성 발견으로 ‘봉한학설’ 입증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경락의 신비 풀 열쇠 찾았다”

“경락의 신비 풀 열쇠 찾았다”
최근 한 이론물리학자의 연구 발표 하나로 한의학계가 흥분해 있다. 한의학 치료의 기본이 되는 경락(經絡)이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 의서 ‘난경(難經)’에는 경락이란 ‘혈과 기를 운행시키고 음양을 통하게 해 몸에 영양을 공급한다’고 풀이돼 있다. 한의학계에선 인체의 모든 장부 기관 피모 근육 골체 등의 조직이 경락에 의해 연결돼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보고, 이를 바탕으로 치료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서양 의학에서는 그동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소광섭(62·사진) 교수가 11월10일 서울대 의대 보완대체의학연구소의 국제심포지엄 ‘침과 뜸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접근’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은 현대의학에서도 인정할 만한 것이라 눈길을 끈다. 소 교수는 이 자리에서 “쥐를 이용해 위와 췌장을 관장하는 혈로 알려진 중완혈(배꼽과 명치 가운데) 자리에 염료를 주입한 뒤 이 염료가 집중적으로 췌장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한의학 이론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는 또 당뇨병과 췌장암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가능성이 열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중완혈에 약물을 투입할 경우 주사나 경구용으로 전신에 투입하는 방법보다 더 간단하고 치료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 김기옥 부회장은 “이번 연구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통합한 제3의학을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국가가 나서서 더 체계적으로 연구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당뇨병과 췌장암 치료에 획기적 진전 가능성



소 교수의 이번 연구는 ‘봉한학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봉한학설이란 1960년대 북한 의학자 김봉한이 주창한 것으로 인체에는 영양을 공급하는 혈액순환계(심혈계), 외부 침입자를 감시하는 면역세포의 순환계(림프계) 외에 제3의 순환계, 즉 봉한관이 있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은 봉한체계 중 피부에 분포된 일부이며, 봉한관은 이를 포함해 혈관 속, 장기 표면 등 몸속 전체에 퍼져 있다고 한다. 또 봉한관 안에서는 산알(살아 있는 알이라는 뜻으로 나중에 DNA 알갱이임이 밝혀짐)이 봉한액을 따라 흐르면서 세포재생, 조혈작용 등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5년 전 봉한학설을 연구하기 시작한 소 교수는 지금까지 토끼 쥐 등 동물실험을 통해 혈관이나 림프관 속, 피부, 장기 표면 등에서 머리카락 굵기(30~50마이크론)의 봉한관을 찾아냈고, 이를 혈전(fibrin)이 엉켜 생긴 줄과 구분하는 방법도 알아냈다. 해부학자들이 봉한관을 발견할 수 없었던 이유는 관이 투명해 혈전과의 구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또 봉한관이 식물뿌리처럼 내부가 치밀하고, 그 안에 집어넣은 형광염료가 혈류보다 아주 느리게(분당 0.3㎜) 이동하며, 봉한관 안에 면역세포나 호르몬 등이 있다는 사실 등도 추가로 밝혀냈다. 그리고 이 결과를 2004년부터 미국 해부학회가 발행하는 ‘해부학기록 B(Anatomical Record B)’ 등 국제 저널에 발표했다.

그러나 소 교수는 아직까지 봉한관이 인체 내에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제3순환계의 존재는 밝혔고, 앞으로 산알이 어떻게 손상조직을 재생해내는지에 대한 연구에 착수할 계획이다.

“봉한학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논문에 결과만 있고 방법이 기술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를 따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만큼 김봉한 선생이 논문에서 주장한 내용과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점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고려청자라는 실체는 아는데 그것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서, 봉한관을 확인하는 것은 고려청자 제작 방법을 알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리학자가 어떻게 한의학을 연구하게 됐을까?

“전 세계적으로 많은 물리학자들이 생물과 의학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서양의학의 기초도 물리학자들이 연구한 것입니다.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사람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카벤디시 연구소의 물리학자 크릭과 미국 생물학자 왓슨입니다. 저는 한국의 물리학자니까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한의학의 기본 원리를 파헤쳐보자는 취지에서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2001년 그는 시드니공대 한의학과에 3개월간 방문교수로 머물면서 관련 자료를 검토하던 중 한의학의 기본원리 구명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동생이 세명대 한의학과 교수(소경순)로 있었고, 평소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구상에 도움이 됐다. 또 자기장 이론을 경락에 적용해 병을 치유하는 한서자기원 구한서 원장에게서도 힌트를 얻었다.

“경락의 신비 풀 열쇠 찾았다”

쥐의 혈관 속에 말려 있는 봉한관을 형광염료로 염색해 촬영한 장면. 장기 표면에 있는 봉한관에서 혈류보다 느리게 형광 나노입자가 흘러가는 모습(오른쪽).

한의학계 흥분, 외국서도 공동연구 지원

“연구 초기 봉한학설이 공산권에서 나온 연구라 허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 봉한관에 대해 말하면 림프관을 잘못 본 것이라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구상을 밀고 나갔다. 이후 그는 DNA가 내는 빛(생물광자)의 광통신 채널이 경락이라는 가설을 세워 진단기를 개발하는 산자부 지원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제3의 순환계를 찾는 작업을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국가지정연구실(NRL) 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연구 수준이 일정 궤도에 오르자 외국에서 공동연구를 지원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7월까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물리학부 카벤디시 연구소의 도움으로 실험기자재를 사용했으며 네덜란드, 중국의 연구소와도 공동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쥐의 당뇨’에 관한 연구는 상지대 한의학과 이수진 교수와 공동으로 실험에 착수했다.

소 교수는 1968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74년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양자장론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대통일이론’, 관찰과 인식의 문제를 다룬 ‘물리학과 대승기신론’ 등이 있다.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은 1999년부터 이끌고 있다. 현재 이 연구실에서는 이병천(약리학), 김정대(물리학), 오가이(세포생물학), 한현정(수의과학) 박사와 4명의 박사과정 연구원, 3명의 석사 연구원, 외국에서 온 2명의 방문연구원이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제가 더 구체화돼 제3의 순환계를 확립하려면 연구가 지속돼야 합니다. 그런데 내년 8월이면 NRL 연구가 마감되기 때문에 연구가 중단될 우려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김봉한 연구팀이 70여 명이나 됐듯, 이 연구는 많은 연구 인력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체계적인 연구가 뒷받침될 경우 소 교수의 연구는 물리학과 한의학의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리학과 한의학의 상쾌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Tip

김봉한


경성제대(옛 서울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북한에서 평양의대 경락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1961년부터 ‘경락의 실태에 관한 연구’ 등 5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경락체계와 산알에 관한 봉한학설을 제기했다. 염료로 봉한관을 확인한 그의 연구 결과는 생물학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성과로 받아들여졌고 노벨상 수상도 기대됐지만, 1966년 그를 지원하던 권력자가 숙청된 뒤 갑작스럽게 잊혀졌다.




주간동아 612호 (p64~65)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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