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2

2007.11.27

족집게 컨설팅 수업 받고 한국 기업들 성적 ‘쑥쑥’

두산·SKT·현대카드 등 위기 극복, 고속 성장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7-11-21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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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집게 컨설팅 수업 받고 한국 기업들 성적 ‘쑥쑥’
    최근 가장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는 한국 기업으로는 단연 두산그룹이 꼽힌다. 거침없는 인수합병(M·A)으로 10년도 채 되지 않아 식품회사에서 중공업 전문기업으로의 대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에서부터 최근 밥캣(Bobcat·미국 잉거솔랜드사의 소형 건설중장비 사업부문) 인수까지 두산은 M·A ‘11전 10승’이라는 놀라운 승률을 자랑한다. 지난해 대우건설 M·A에서만 금호아시아나 그룹에 졌을 뿐이다.

    이러한 두산의 성공 뒤에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있다. 1995년부터 두산에 관여하기 시작한 맥킨지는 이 그룹의 상징이던 OB맥주 매각을 시작으로 ‘두산의 변신’을 진두지휘했다. 아예 그룹 내로 영입된 ‘맥킨지맨’도 많다.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부회장, 이상훈 ㈜두산 부사장, 김용성 두산인프라코어 사장 등이 모두 맥킨지 출신이다.

    경영전략 컨설팅을 전문으로 제공하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20년 가까이 됐다. 경영에 관한 전문지식이라는 ‘무형의 재화’를 파는 이들은 그동안 한국 기업들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또한 한국 기업과 한국 경제는 선진이론과 풍부한 해외사례로 무장한 ‘경영의 가정교사’들에게서 얼마나 배웠을까.

    1930년대 미국에서 태동한 경영전략 컨설팅은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한 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주로 일본 사무소에서 한국 프로젝트를 수주하던 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이하 BCG), 베인·컴퍼니(이하 베인), 모니터그룹 등은 90년대 초반부터 잇따라 서울에 사무소를 개소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컨설팅 활용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해외시장 진출이나 인수합병 등을 통한 사업 확장에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영컨설팅이라고 하면 대학교수에게 예우 차원에서 연구비를 드리며 컨설팅을 의뢰하고 보고서를 받아 곧장 캐비닛에 넣어두는 게 관례였다.” 컨설턴트 출신 전문경영인 C씨의 회고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10대 대기업 위주로 경영컨설팅이 활용되면서부터 경영컨설팅 시장이 확대됐다. 1997년 초반 SK텔레콤이 AT커니에 의뢰한 100억원 규모의 컨설팅이 그 분수령으로 회자되곤 한다. 당시 기획조정실장이던 표문수 고문의 주도 아래 실시된 이 컨설팅을 바탕으로 SK텔레콤은 직원 수를 5200명에서 4000명으로 감축했고 조직 정비는 물론 마케팅, 네트워크, 연구개발 등 사업 전반에 손을 댔다. 외환위기 직전의 이 같은 대수술은 SK텔레콤이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바탕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환위기 전후로 경영컨설팅 활용 본격화

    족집게 컨설팅 수업 받고 한국 기업들 성적 ‘쑥쑥’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두산그룹(왼쪽)과 LG전자.

    ‘맥킨지 신봉자’로 알려진 남용 LG전자 부회장도 외환위기 당시부터 경영컨설팅 활용에 눈을 뜬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당시 LG전자 멀티미디어 사업본부장을 맡았던 남 부회장은 맥킨지가 내놓은 새로운 사업안을 바탕으로 적자에 허덕이던 멀티미디어 사업본부를 회생시켰다. LG텔레콤 사장 시절에도 남 부회장은 맥킨지 도움을 톡톡히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를 측근에서 보좌했던 한 임원은 “남 부회장은 전 세계 어느 컨설턴트 못지않게 컨설팅 프로젝트 경험이 많은 분”이라며 “맥킨지가 완벽하진 않아도 큰 도움이 된다고 여기시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후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특정 기업의 성공사례 뒤에 글로벌 컨설팅 회사가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파격적인 광고로 유명한 ‘현대카드 M’의 성공사례가 한 예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은 신용카드 업계에 위기가 닥치기 직전인 2002년 초부터 ‘불량고객’ 해지 등에 나서 부실을 미리 털어냈을 뿐 아니라, 이듬해 5월 현대카드 M을 출시해 1년 만에 신규회원 100만명을 모집하는 등 성공을 거뒀다. 이 같은 현대카드의 약진에는 모니터그룹 출신의 조좌진 씨(현 올리버와이만 서울지사 공동대표) 등을 임원으로 스카우트하고, 모니터그룹 등 전략 컨설팅 회사들을 활용한 점이 주효했다. 자신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영학 석사(MBA) 출신인 정태영 사장은 전략컨설팅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경영자로 손꼽힌다.

    유로머니지가 선정하는 ‘최우수 프라이빗뱅킹(PB) 평가’에서 3년 연속 한국 최우수 프라이빗뱅킹상을 수상한 바 있는 ‘PB 강자’ 하나은행도 경영컨설팅에 톡톡히 빚을 진 사례다. 1995년 중장기 경영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맥킨지에 컨설팅을 의뢰한 하나은행은 ‘부자 고객에 집중하라’는 의외의 진단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PB는 국내 시중은행들에게 낯선 개념이었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이 같은 맥킨지의 조언을 받아들여 국내 은행 최초로 PB 제도를 도입했다.

    컨설팅은 컨설팅일 뿐 … 기업의 실천의지 중요

    국내 모 전자회사도 2년 전 수조원에 이르는 설비 투자에 앞서 모니터그룹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이에 모니터그룹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투자는 옳은 결정”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어렵게 결정한 투자는 현재 이 회사가 1위 업체의 턱밑까지 추격할 정도로 크게 성장하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올바른’ 진단이 곧 기업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 회사를 활용한 기업인이나 컨설턴트 모두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의사결정자(Decision Maker)에게 달린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옳은 해법이라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맥킨지도 두산에 OB맥주를 매각하라는 주문을 했을 때 오너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후문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오늘의 두산이 있기까지 맥킨지의 구실이 컸지만, 경영 컨설턴트들은 결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라며 “대주주의 올바른 판단과 직원들이 그것을 얼마나 믿고 따르느냐에 달린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카드 마케팅총괄본부장을 맡아 현대카드 M의 성공을 이끌었던 조좌진 대표도 “경영자가 자기 회사와 시장에 대해 갖는 통찰력(insight)을 컨설턴트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태영 사장이 광고비로 수백억원을 쏟아붓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나는 오히려 말리는 입장이었다”고 회고했다.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으로 여러 기업의 임원을 두루 거친 L씨도 “컨설턴트가 한국 기업에 영입됐다는 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 선수가 K리그에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라면서도 “그러나 컨설턴트들은 기업 오너의 열정과 운, 집념 등을 따라가진 못한다”고 말했다. ‘두뇌’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열정에 바탕을 둔 과감한 추진력이라는 의미다.

    모든 경영컨설팅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모 시중은행의 경우 2000년경 글로벌 컨설팅 회사로부터 “특정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영업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 리스크는 크지만 수익이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권고를 그대로 실행에 옮긴 이 은행은 그러나 몇 년 후 실패를 시인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특정 고객층을 배제한 은행 영업이 어렵다는 뼈아픈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영업조직 개편에 대한 컨설팅을 받은 모 대기업도 현장의 반발로 수백억원짜리 컨설팅 결과를 썩혀야 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일부 영업점에서 컨설팅 결과를 그대로 시행해봤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컨설팅 실패’에 대해 컨설팅 회사 측은 “우리의 조언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적극적으로 실현하지도 않은 채 잘못된 컨설팅으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좀더 구체적인 실행방법에 대해서도 계속 컨설팅을 받아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가 제대로 힘을 실어주지 않을 경우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게 컨설턴트들의 주장이다. 컨설팅 결과에 따라 손해 보는(?) 쪽에서 가하는 맹공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업 측은 “컨설턴트들이 경영이론이나 해외 성공사례에 대해서만 잘 알 뿐이지 한국 시장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여러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과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경험이 있는 전문경영인 J씨는 “컨설턴트들은 창의력이나 전문지식, 해외정보 등에 매우 밝다. 특히 그들의 신선한 시각은 기업 내부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그들의 조언이 과연 우리 기업과 우리 시장에 맞는지 반복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 실패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아예 기업 안으로 흡수되는 컨설턴트들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58쪽 참조). 컨설턴트들은 고객사에 직접 스카우트되거나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입사 제의를 받는다. 인력시장에서 이들의 몸값도 매우 높다. 헤드헌팅사 HR코리아의 김희정 부장은 “경력 5~7년의 매니저급 컨설턴트들이 대기업 임원으로 옮기면서 같은 직급의 임원들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기도 한다”며 “기업들이 컨설턴트 영입을 쉬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기업 내에 전략기획팀 같은 컨설팅 전문조직이 꾸려지기도 한다. 외부 인사를 임원으로 영입하는 사례가 극히 적은 현대기아자동차그룹도 최근 전상태 아서디리틀 부사장을 이사(대우)로 영입, 산하기관인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내에 컨설팅 전담조직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의 경우 계열사 네오플럭스가 그룹 컨설팅을 도맡고 있으며, 그룹 내에도 컨설턴트 출신 및 MBA 학위 소지자 등으로 꾸려진 ‘TRIC 팀’이 컨설팅 업무를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턴트들 기업 내부로 흡수 추세

    컨설턴트 경력을 가진 임원들이 사내에 포진하면서 기업들도 자체적인 문제 해결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컨설턴트 출신 전문경영인 S씨는 “과거 컨설팅 회사에 크게 기댔던 기업들이 최근에는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치밀하게 따지기 시작했다”며 “이는 미국의 전략컨설팅 시장과 비슷해져가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기업이 의뢰하는 컨설팅 프로젝트도 더욱 구체화, 전문화하고 있다. 이병남 BCG 서울사무소 대표는 “요새 한국 기업들의 가장 큰 화두는 신성장이며 그 방법론으로 새 상품과 새 서비스 개발, 해외시장 개척, 인수합병 등에 관한 컨설팅 의뢰가 많다. 한편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 기업들도 늘고 있어 그들이 의뢰하는 프로젝트가 전체의 약 30%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은 한국 기업의 선진화, 글로벌화에 밑거름 구실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은 오너의 리더십으로 성장했지만 경영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는 요즘, 기업의 과학적이고도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이러한 의사결정에 전문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지원 구실을 하는 장본인이 바로 전략 컨설턴트들”(모니터그룹 코리아 조원홍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컨설팅 회사의 운명은 한국 기업에 달려 있다. “매출규모가 최소 8000억원 이상 되는 기업들만이 ‘비싼’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이성용 베인 코리아 대표)이다. 실제로 1980년대 호황을 누렸던 일본의 컨설팅 업계는 90년대 일본 경제가 불황을 맞이하면서 함께 고통을 겪은 바 있다.

    시장환경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시장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 내수시장에 안주하는 기업은 더 이상의 퇴로가 없는 글로벌 시대에 한국 기업과 글로벌 컨설팅 회사는 더욱 강한 끈으로 ‘공동운명체’로 묶이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일궈낼 상생의 효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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