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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끓는 사제단 속 썩는 검찰

김변호사 “핵심은 삼성 총수 일가의 불법, 수사 상황 봐가며 추가 폭로”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속 끓는 사제단 속 썩는 검찰

속 끓는 사제단 속 썩는 검찰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가 11월13일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기억이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11월13일 인사청문회에 나온 임채진 신임 검찰총장 내정자는 ‘떡값 의혹’ ‘골프 의혹’ 등에 대해 굳게 입을 닫았다. “사퇴하라”는 위원들의 압박은 “의혹만으로 사퇴할 수 없다”며 맞받아쳤다. “검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게 사퇴 불가의 이유였다.

인사청문회 전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임 내정자를 포함한 3명의 ‘떡값검사’ 명단을 발표해 논란을 키웠다. 다음은 임 내정자에 대한 부분.

“임채진은 2001년 서울지검 2차장 때 내(김용철 변호사)가 관리대상 명단에 넣었다. 그를 관리하던 사람은 구조조정본부 인사팀장이자 부산고 선배인 이우희였다.”

뇌물 의혹에도 임 내정자는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했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등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두 거대 정당(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합의를 뒤집지는 못했다. 임 내정자와 검찰은 한숨을 돌렸고, 삼성을 고발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은 검찰과 정치권에 등을 돌렸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검찰조사에 불응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삼성과 검찰의 커넥션으로 본질 바뀌어



공은 검찰로 넘어갔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당장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서로 다른 특검법을 제출해놓고 있어 검찰은 ‘수사를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곤혹스러운 처지다. 수뇌부 관련설로 인한 내부갈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정상명 검찰총장은 사제단을 향해 “뭐 하는 짓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로비검사 명단을 먼저 공개해라. (사제단이) 임 후보자의 처지와 검찰 처지를 악의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 내에선 정 총장의 발언을 두고 ‘내부결속용 발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집안단속을 위해 정 총장이 총대를 멘 것”이라는 분석. 한 현직 검사의 말이다.

“이미 3명의 이름이 거론된 마당에 검사 명단 공개는 수사에 변수가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검찰조직의 사분오열 가능성이 걱정이다. 검찰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내부분열을 막기 위한 정 총장 나름의 고육지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정 총장의 주장에 대한 여론은 그리 좋지 않다.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해 3월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와의 형평성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에도 함구한 채 전광석화처럼 압수수색과 관련자 소환을 진행했던 현대차 사건과 이번 삼성 수사와 관련된 검찰의 움직임은 어느 면에서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상당수 법조계 관계자들까지 “검찰은 11월5일 사제단의 기자회견 즉시 수사를 진행했어야 했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을 정도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삼성에 대한 수사 타이밍을 놓쳤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삼성 본관 27층에 있다는 비밀금고, 회장 지시사항, 편법증여 사건 조작 증언과 같은 핵심 단서들이 이미 오래전 공개됐다는 사실은 이런 의견에 힘을 보탠다.

수사 본격화 땐 범위 확대 가능성 높아

속 끓는 사제단 속 썩는 검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11월1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성당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주장하는 ‘떡값검사’ 명단 일부를 공개하고 있다.

‘떡값검사’ 논란 와중에 김 변호사의 폭로 사건은 어느새 ‘삼성과 검찰의 커넥션’으로 본질이 바뀌어갔다. 삼성 비자금, 불법적인 경영승계 등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사제단과 김 변호사는 조바심을 낸다. 당초 의도대로 여론이 움직이지 않는 데 대한 우려다. 사제단 신부들은 12일 3차 기자회견에서 검사 명단 공개에 앞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삼성 비자금 문제를 검찰의 뇌물수수 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작금의 옳지 못한 방향에 대한 꾸짖음이다. 명단의 일부만 밝히는 것은 검찰 스스로 진실 규명의 본분을 되찾도록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아울러 사태의 핵심이 삼성에서 검찰로 옮겨지는 오류를 염려하면서, 삼성 이재용 전무의 불법적인 재산 조성 경위를 보여주는 자료 하나를 공개한다.”

현재 김 변호사와 사제단 측은 “당분간 추가 자료폭로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서가 붙어 있다. “검찰이 의지를 가지고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 만약 이것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 제2, 제3의 폭로가 불가피하다고 사제단은 강조한다. 사제단과 김 변호사는 국민을 향해 ‘절박한 요청’이라는 표현도 썼다.

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추가 (뇌물수수 명단) 폭로 계획이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명단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본질을 봐달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김 변호사가 할 말이 정말 많다. 한두 시간 얘기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작심하고 입을 열면 며칠을 얘기해도 모자란다. 우선 검찰 수사과정을 지켜보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삼성이 저질러온,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든 불법행위를 고발하고 처벌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이것이 안 될 경우 추가 폭로는 불가피하다. 그동안 주장한 내용에 대한 입증자료는 충분하다. 다만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삼성 문제의 본질은 떡값검사가 아니라 이건희 회장 일가와 일부 가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검찰과 언론이 의지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구속을 각오하고 끝까지 (삼성과) 싸우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가 몰고 온 2002년 대선잔금 논란에 대해서도 김 변호사는 “내가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수사팀의 의지가 있으면 한번 같이 해보자고 제의할 것이다. 대선 전에 이 수사를 잘해서 삼성 돈을 먹어도 문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김 변호사의 폭로사건 수사 범위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과 검찰은 물론 언론 국세청 재경부 금감원 등도 모두 검찰 수사의 사정권 안에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김 변호사는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소개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의 대담에서 “새로 정부가 들어서면 부서마다 (삼성에) 정책 도움을 요청하고 장관급 각료를 인선할 때도 추천을 받았다. 참여정부(의 각료인사)도 삼성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논의했다”고 밝혀 논란을 부채질했다.

당장 차기 검찰총장 등 수사팀의 최종 보고라인이 ‘떡값검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검찰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김 변호사의 직접 폭로 이후인 지난 8일, 일찌감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해놓고도 수사팀 발표를 미뤄온 검찰이 이번 수사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612호 (p26~27)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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