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2

2007.11.27

자타공인 조사통 “환골탈태 국궁진력”

  • 고기정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koh@donga.com

    입력2007-11-21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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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회의실. 전날 전군표 청장이 부산지검에 구속 수감되자 국세청은 긴급 지방국세청장 회의를 열고, 이례적으로 회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현직 청장이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터라 회의실 분위기는 무겁고 침통했다. 회의를 소집한 한상률 차장(사진)이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굽혀 절했다. 이어 “직원들에게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사과 인사가 끝나자 회의는 힘 있게 진행됐다. 한 차장은 종합부동산세 징수 등 현안을 일일이 거론하며 빈틈없는 일 처리를 지시했다. 비위 혐의가 드러난 직원들을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강도 높은 쇄신 방안도 내놓았다.

    비리척결 조직쇄신 부담 … 차기 정권 인정도 불확실



    전날 저녁 전 청장이 구속된 지 불과 15시간여 만에 열린 회의였지만, 한 차장은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해온 듯 자신의 페이스대로 회의를 이끌었다. 더욱이 말미에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각오로 국궁진력(鞠躬盡力)하자”며 조직의 리더들이 제시할 만한 화두를 던졌다. 국궁진력은 중국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좌우명으로 ‘섬기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 힘을 다한다’는 뜻.

    한상률 국세청장 내정자. 그는 이처럼 치밀하고 신중하며 조직적인 사고를 갖춘 ‘정통 국세공무원’이다.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조사통’답게 즉답을 피하고 암시를 자주 해, 처음엔 좀처럼 속내를 파악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꼼꼼하다는 느낌을 준다. 조용한 말투에 얼굴을 붉히는 일도 별로 없어 겉으로는 부드러운 듯하지만, 일단 업무를 맡으면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 외유내강형이란 말을 듣는다.

    1953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나 태안고와 서울대 농업교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78년 행정고시 21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사무관 시절부터 동기들보다 늘 승진이 빨랐다. 매사에 빈틈없고 기획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본청 조사국장으로 있던 2005년 처음으로 론스타 등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대규모 추징금을 부과했다. 1999년 국세행정개혁기획단 총괄팀장을 지낼 때는 국세청 조직을 기능별로 개편하는 등 개혁 마인드도 드러냈다.

    이 때문에 그는 일찍부터 차기 청장감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당면 현실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뇌물수수 혐의로 수뇌부가 구속된 상태에서 지휘권을 넘겨받은 이상 강도 높은 조직 쇄신을 추진해야 한다. 한때 비리 척결을 위해 국세청장을 외부에서 발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던 만큼 그가 느끼는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차기 정권이 한 내정자를 인정할지도 불확실하다. 따라서 현 정권이 끝나기까지 약 3개월간 그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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