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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 ③|허궈창(賀國强)

잡음 없는 人事혁신과 조직관리 귀재

깔끔하고 투명한 일처리 높은 평가 … 푸젠·충칭 근무 땐 남다른 경영 수완 발휘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잡음 없는 人事혁신과 조직관리 귀재

잡음 없는 人事혁신과 조직관리 귀재
허궈창(賀國强·64·사진) 신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베이징 화공학원에서 무기물공학을 전공한 고급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1967년 산둥성 루난(魯南) 화학비료공장에서 기술원으로 시작해 화학석유공업청 청장으로 재직할 때까지 20년간 화학석유 분야에서 근무했다. 테크노크라트로 오랫동안 일했지만 그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행정관료로 일하면서다.

인사비리 ‘12380 신고전화’ 개설 큰 호응

‘허궈창’ 하면 중국인들이 떠올리는 것은 ‘12380’ 신고전화다. 2002년 10월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장에 임명된 그는 곧바로 대대적인 인사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12380’ 신고전화. 전국 어디서나 ‘12380’만 누르면 지방의 현장(縣長)과 중앙기관 처장(處長)급 이상 임용과 관련한 비리를 신고할 수 있다. 공산당 고위 지도자들끼리 속닥속닥 결정하던 간부들의 인사방식을 바꿔 국민이 직접 간부 임용에 참여하고 감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 이를 위해 전국에 486개 ‘12380 신고’ 처리센터가 만들어졌다. 2004년부터 올해 초까지 3년간 직통전화를 통해 접수된 인사비리 사건은 무려 30만여 건. 그는 접수된 안건을 모두 철저히 조사해 관련 규정에 따라 처벌하게 했다. 이로 인해 중국 공산당 간부, 특히 지방 간부 사이에 만연한 매관매직(賣官賣職)과 ‘파오관야오관(保官要官·관직을 얻거나 승진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다이빙티바(帶病提拔·문제가 있음에도 발탁하는 것)’ 풍조가 크게 줄였다.

그는 성(省)-시(市)-현(縣)-향(鄕)의 지방 간부 교체시기에 맞춰 2006년부터 민주적 추천과 평가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새 제도를 도입했다. 인재를 등용할 때는 반드시 집단토론을 거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발하되, 지역 최고책임자가 하급자에게 한두 마디 물은 뒤 곧바로 결정하거나 혼자 단독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했다. 최고책임자가 남의 말을 무시한 채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는 ‘이옌탕(一言堂)’ 폐단을 근본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그를 지도자로 모셨던 주민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꿋꿋이 일을 해내는 그의 무실역행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푸젠(福建)성 성장으로 근무하다 1999년 서부 지역의 관문인 충칭(重慶)시 당서기로 부임했을 때 일이다. 동부지역에서 일하다 와보니 서부는 궁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푸젠성에서 알게 된 홍콩과 대만, 푸젠성의 거상들에게 산성(山城) 도시인 충칭을 한 번만 둘러봐달라고 친필로 편지를 썼다. 도산에 직면한 각종 국영기업이 가득한 충칭에 동부의 자금이 오지 않으면 도저히 지역경제를 살릴 수 없었던 것. 그의 이런 정성에 대만과 홍콩, 푸젠성의 많은 기업가들이 감동했다. 그가 충칭시 서기로 재직하는 3년간 무려 10만여 명의 투자자가 몰렸고, 1000억 위안(약 12조2840억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특히 푸젠성 출신의 팔순 기업가 린원징(林文鏡) 씨를 끌어들여 50억 위안(약 6142억원)을 투자하도록 유도해 충칭의 대형 군수기업을 살려놓았다.

태자당 출신 범 상하이방 … 부패척결 시선 집중

푸젠성 사람들은 푸젠성 부서기부터 대리성장, 성장으로 재직한 그를 잘 기억한다. 푸젠성 발전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푸젠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홍콩과 마카오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민강(?港·푸젠성과 홍콩)경제협력촉진회’와 ‘민아오( ?澳·푸젠성과 마카오)경제협력촉진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스스로 회장이 되어 민강타이( ?港臺·푸젠성과 홍콩, 대만) 금융토론회를 여는 등 투자 유치에 힘썼다.

그는 태자당(太子黨) 출신이다. 태자당이란 중국 공산당과 국가기관, 군부, 재계 고위층 인사의 자녀를 일컫는 말. 대략 4000여 명이 포진해 촘촘한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 정관계를 주름잡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전처 허쯔전(賀子珍)의 조카인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참지 못한다. 충칭시 서기로 재직할 때 일이다. 그는 충칭시 우룽(武隆)현 센뉘산(仙女山) 진스량쯔(石梁子) 촌이라는 한 산촌마을에 갔다가 가난 때문에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즉석에서 두 촌민의 집과 ‘친척’관계를 맺고 자녀의 입학문제를 해결해줬다.

허 서기는 부하직원 25명을 선발해 각자 한 곳의 빈곤 농촌을 연결해주고 이들 빈촌이 일어설 때까지 도와주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가 충칭시 당서기로 있는 동안 충칭은 창장(長江)강 상류의 경제중심으로 태어났다. 또 싼샤(三峽)댐 건설로 100만명 이상의 수몰민이 생겼지만 별다른 문제 없이 모두 이주시켰다.

그는 항상 주변을 깨끗이 했다. 성장과 당서기, 중앙조직부장 등 요직을 거쳤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친척이나 친구들이 이득을 챙기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그가 재임하는 지방에서는 친구들이 사업을 하지 못하게 금지했다. 특혜 의혹이 나올까봐 원천봉쇄한 것이다. 그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에 임명된 것도 이런 청렴한 기상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범 상하이방(上海幇)에 분류되기도 한다. 석유화학 분야에서 20년간 일하면서 탁월한 조직관리와 경영수완을 발휘해 행정관료로 발탁됐고, 이후 출세의 길에 들어섰지만 승승장구하게 된 데는 같은 태자당인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후원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당 중앙조직부장 자리를 물려받은 것도 쩡 부주석과 장 전 주석의 힘이 컸다.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를 끝으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직에서 물러난 쩡 국가부주석이 허궈창과 저우융캉(周永康) 신임 상무위원을 통해 ‘막후정치’를 펼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특정 계파의 정파적 이익에 맞춰 업무를 처리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청렴과 공명정대의 길을 걸어온 그가 중국 공산당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어떻게 뿌리뽑을지 주목된다.

허궈창 신임 상무위원



·한족(1943년 10월생)

·후난성 상상(湘鄕) 출신

1961~66년 베이징 화공학원 무기화공계 무기물공학 전공, 고급 공정사

1966~67년 학교에 남음

1967~78년 산둥성 루난 화학비료공장 합성작업장 기술원→주임→ 당서기

1978~80년 산둥성 루난 화학비료공장 부공장장 겸 부총공정사(工程師)

1980~82년 산둥성 화학석유공업청 관리실 주임

1982~84년 산둥성 화학석유공업청 부청장

1984~86년 산둥성 화학석유공업청 청장

1986~87년 산둥성 상무위원회, 지난(濟南)시 부서기

1987~91년 산둥성 상무위원회, 지난시 서기

1991~96년 화학공업부 부부장, 당조(黨組) 부서기

1996~97년 푸젠성 부서기, 대리성장

1997~99년 푸젠성 부서기, 성장

1999~2002년 충칭시 당서기

2002~2007년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조직부 부장

2007~현재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제12~14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제15~17기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제16기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제17기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위원,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주간동아 611호 (p26~28)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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