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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F학점의 국정감사

정보교류 겉핥기, 정쟁엔 죽기 살기

17대 국회 관련 연구보고서로 본 국감 문제점 전문성·질의시간 부족에 불성실 증인 활용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정보교류 겉핥기, 정쟁엔 죽기 살기

정보교류 겉핥기, 정쟁엔 죽기 살기

2004년 12월21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장이 텅 비어 있다.
2005년 7월1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정부조직법안을 발의하자 항의하는 한나라당 의원과 민노당,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설전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아래).

2004년 6월 17대 국회는 ‘제2의 제헌의회’라는 기대 속에 출범했다. 역대 총선 가운데 가장 큰 정치인 물갈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정치는 과연 얼마나 변했을까?

한국민주시민교육원 박병석 원장은 2005년 7월 국회의 의뢰를 받아 2004~2005년 국회에서 열린 각종 회의 속기록을 토대로 국회의원들의 의사진행 및 의사소통 역량을 분석했다. 국회의원들의 의사진행과 의사소통 역량이 바로 국회의 민주화와 효율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박 원장이 지난해 초 국회에 제출한 ‘국회 의사진행 및 의사소통구조 개선을 위한 연구보고서’가 그 결과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7대 국회의 의사진행 및 의사소통 수준은 여전히 낙제점이었다.

17대 국회의 파행은 오히려 역대 국회보다 더 심각했다. 본회의의 경우 출범 초기인 2004년 6월 원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해 23일간 공전된 데 이어, 2004년 9월 개최된 정기국회도 15일간 공전됐다. 상임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국정감사와 상임위원회 회의 진행 결과를 보면, 전체 회기의 3분의 1 정도가 열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진행과 소통이 제대로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보고서는 국회 의사진행 과정과 의사소통상의 문제점을 별도로 분석하고 있다.



국회 의사진행상의 문제점으로, 본회의에서는 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이 가장 먼저 지적됐다. 17대 국회에서도 의장의 직권 상정으로 처리된 안건이 줄어들지 않은 것. 2004년 첫해에만 13건이 본회의에 올랐으며, 그중 11건이 처리됐다.

보고서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의장을 선출할 때 대통령이나 특정 정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위원회 안에서 자율적으로 선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회 의사소통에선 말 끊기, 자리 비우기 등 도마에

본회의의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된 것은 의원들의 대정부질문 태도다. 대정부질문에 나선 의원들이 현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원고만 읽어 내려가거나 과시용 연설형태가 여전하다는 것.

한 예로 2005년 4월13일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선 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은 질문시간 전체를 자전거타기 홍보에 썼다. “자전거를 탄 뒤 디스크가 완치됐다. 의원님들이 자전거를 타겠다면 한 대씩 다 사드리겠다”고 한 것. 자전거 타기가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다(박 의원은 국회 자전거타기 추진위원장이다).

다음 날 교육·사회·문화 분야 질문에서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은 “정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에 지원된 208억원 중 170억원을 회수하기로 했는데, 그 배경이 뭐냐”고 물었다. 김 의원은 민간으로부터의 일정액 기금모금 조건이 지켜지지 않아 회수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는 상임위원회의 고질적 문제인 전문성과 직결된다. 현재 상임위원회 구성은 의원들의 전문성보다는 지역구의 특성이나 당내 영향력에 좌우된다. 소속당 지도부에 의해 자의적, 임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또 개인 사정이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대통합민주신당 한 의원의 경우 17대 마지막 국정감사를 앞두고 법제사법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당 안팎에서는 해당 의원이 법률위반 행위에 따른 소송을 진행 중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보고서가 가장 많은 문제점을 지적한 분야는 국정감사. 문제점은 모두 9가지다. △국정감사의 장이 불필요한 정쟁의 장으로 변한다는 것 △당내에서조차 지나친 정파 간 대립으로 정보교류나 역할분담을 못하고 있다는 것 △전문성 부족 △질의시간 부족 △국민 관심이 높은 현안에 대해서만 중복 질의하는 경향 △피감기관에 불필요한 자료제출 요구 △불성실한 증인 활용 △과다한 피감기관으로 인한 감사의 전문성과 집중도 하락 △피감기관의 불성실한 국감 태도다.

보고서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의원들이 국감 자세와 자질을 어느 정도 갖춘다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국회 내 의사소통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보고서는 2004년 10월 국정감사와 같은 해 12월 상임위원회, 2005년 3월 검찰총장 김종빈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같은 해 7월 조대현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 2005년 6월 본회의 등 모두 8건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국회 내 의사소통 부분에서는 크게 절차상의 문제점과 수사적 오류, 부적절한 표현 등이 지적됐다.

절차상 문제로는 증인이나 피감기관의 자료 부족, 말 끊기, 끼어들기, 자리 비우기, 회의 안건과 관계없는 질의하기 등이 꼽혔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말 끊기. 2004년 10월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건설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여당 의원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의원들이 시간상 이유로 말을 끊거나 발언 기회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적 오류로 지적된 문제는 근거 없는 주장과 결론 또는 의혹 제기, 성급한 일반화, 인신공격, 불필요한 감정에 호소하거나 근거없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 잘못된 유추, 흑백논리 등 수없이 많았다.

속기록에 ‘조지다’ ‘나쁜 놈’ 등 부적절한 표현 수두룩

의원들 간의 말싸움은 가끔 ‘배를 산으로 몰고 간다’. 2004년 12월30일 행정자치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과거사법안’ 문제에 대해 여야 간 공방이 벌어졌다. 그때 여야 의원이 주고받았던 대화 한 토막.

열린우리당 노현송 위원 : 합의했다고 같이 점심도 먹었어요.

한나라당 박찬숙 위원 : 밥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거죠.

노현송 위원 : 합의했다고, 잘했다고 서로 격려하면서 먹었습니다.

한나라당 이인기 위원 : 부부간에 싸움을 하더라도 밥은 먹잖아요.

정보교류 겉핥기, 정쟁엔 죽기 살기
부적절한 표현으로는 속어와 반말이 거의 대부분이다. 한 예로, 2004년 12월22일 열린 행정자치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속기록만 보더라도 ‘조지다’ ‘나쁜 놈’ ‘패 죽인다’ ‘붙어먹었다’는 등 지극히 부적절한 표현들이 적지 않게 사용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박 원장은 보고서에서 “우리 국회의 의사소통 과정은 상식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을 벗어난 것으로 판단된다”며 “문제가 되는 절차 및 내용을 엄격하게 규제할 장치를 만들거나 국회의원들 스스로의 변화를 기대해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주간동아 610호 (p56~57)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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