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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이랜드 사태 130일

누가 이 아줌마들을 투사로 만들었나

이랜드 비정규직 끝나지 않은 파업 … 노사정 모두 아물기 힘든 상처

누가 이 아줌마들을 투사로 만들었나

누가 이 아줌마들을 투사로 만들었나

10월24일 이랜드그룹 노조 조합원들이 종로에서 3보1배를 하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첫날인 7월1일,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였다. 6월30일 시작된 파업은 1300여 명의 참여로 격렬하게 진행됐다. 매장 점거농성→공권력 투입→매장 재점거 농성→공권력 재투입으로 노사(勞使) 모두가 상처를 입었다. 그들의 극한 대결은 ‘넉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나눔과 베풂 실천한다는 회사가 직원을 배신”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서 기절할 뻔했는데, 가을이 되니 오히려 추워져서 걱정이네요.”

이랜드그룹 비정규직 근로자가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한 지 123일째인 10월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김정애(45) 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밤 이곳에서 홈에버 동료 25명과 노숙했다. 소슬바람은 으스스했다. 이불과 두꺼운 재킷, 종이박스, 비닐장판을 준비해 왔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밤새 뒤척였다.

“우리 아들이 스무 살이거든요. 지키고 있는 전경 애들 보면 우리 아들 고생시키는 것 같아 안쓰럽죠. 고생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죄 없는 애들만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해요.”



그는 까르푸 시절인 2003년 홈에버에 입사했다. 분식집, 정육점 등 안 해본 장사가 없을 만큼 열심히 살아온 그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힘겨워하던 상황에서 “까르푸 같은 좋은 일터에 취직했다”는 것이 더없이 기뻤다고 한다. 대형 화물차를 운전하는 남편과 고등학생 두 아이를 두고 빠듯한 살림을 꾸려오던 그에게 월급 80여만 원은 값진 돈이었다.

“이런 데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까르푸에 들어갈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샐러드바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면서 즐거웠고, 축산 파트로 옮긴 뒤에는 “장사만은 자신 있다”며 부지런히 일했다. “보너스가 없어 서운한 적은 있지만 비정규직이란 말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이랜드그룹이 까르푸를 인수해 홈에버 소속이 됐을 때는 자신처럼 “하나님을 믿는 회사”라 내심 기뻤다.

이랜드그룹은 김씨의 말마따나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회사’‘선교와 구제를 펼치는 기업’으로 알려져왔다. “기업 활동에서 벌어들이는 순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내부 시스템을 갖춰놓았으며, 매년 100억원 넘는 예산을 ‘사회복지 기관, 시설 지원’ ‘북한 주민 돕기’ 등에 사용하고 있다.”(‘한경비즈니스’ 6월19일자)

김씨의 종교적 친근함이 실망감으로 바뀐 것은 그의 소개로 2005년 까르푸에 들어온 친언니와 몇몇 동료가 해고당한 올 2월부터다. 친절사원으로 뽑힐 만큼 열심히 일했던 언니가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뒤 눈물을 보이며 나오는 모습을 보고 “배신감이 컸다”고 한다. 그 후 ‘파업투쟁’에 참여했고 어색하기만 하던 시위현장도, 민중가요도 익숙해졌다.

“파업이란 것도 처음 해봤고 경찰서에 연행된 것도 처음이에요. 남편은 난리가 났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도 들었고요. 텔레비전에서 데모하는 거 보면 왜 저렇게 거칠게 싸울까 했는데, 그동안 겁도 없어진 것 같아요. 처음엔 며칠만 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가고 보름이 가더니 어느새 넉 달이 지났네요. 무슨 꿈을 꾼 것 같아요.”

이랜드그룹은 독특한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키워왔다. 현재는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순위 32위(공기업 포함)의 기업집단으로, 모태는 박성수 회장이 1980년 서울 신촌에 꾸린 2평짜리 옷가게다.

박 회장은 기독교 장로로,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청교도적 기업가로 알려져왔다. 그는 신앙생활과 근면·검약 정신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업문화를 구축해 ‘구멍가게’를 26년 만에 매출 2조6000억원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부(富)의 사회 환원을 강조해왔으며 인수합병도 선교의 일환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회장은 노조에는 차가웠다. 2005년 5월 삼일교회의 간증에 참석해 ‘직업(job)이냐, 소명(calling)이냐’를 주제로 강연했는데, 근로자들이 ‘일’로서가 아니라 ‘소명’으로서 회사에 다니기를 바라는 듯했다. 실제로 이랜드그룹엔 ‘소명 의식’을 가진 임직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그가 비정규직 대량해고의 장본인이 된 것이다.

누가 이 아줌마들을 투사로 만들었나

10월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는 이랜드그룹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매달 결제일만 돌아오면 가슴이 철렁해요”

통계청에 따르면 임금 노동자의 35.5%인 546만여 명(2006년 현재)이 비정규직이다. 임금 노동자 10명 중 3.5명꼴인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62.8%에 그친다. 한 대기업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는 김모(25) 씨는 “똑같은 일을 직영(정규직)보다 2배, 3배 더 하고도 월급은 절반조차 안 되는 생활을 이젠 그만 접고 싶다”고 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에 맞춘 이랜드그룹의 대량해고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가슴에 맺힌 한을 자극한 측면이 크다. 이인숙(42) 씨는 2006년 4월부터 뉴코아 강남점 킴스클럽에서 일했다. 뉴코아는 결혼 후 20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의 첫 직장. 남편이 지난해 대장암 선고를 받은 뒤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아들의 “교육비라도 벌고자” 수납원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주 자리를 비우면 안 되니까 몇 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참을 때가 많았어요. 비정규직은 휴무도 주말에는 못 내요.”

정규직 근로자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이씨는 4월 중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두 달 전 10개월 연장 재계약을 체결한 터라 부당 해고라며 회사에 항의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자 홀로 점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나중에 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하니까 그제야 ‘계약서가 잘못됐다, 복귀하라’고 하더군요. 살아오면서 부당하게 차별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정말 화가 났어요.”

그는 이후 노조의 파업에 동참했다. 급여를 받지 못하다 보니 생활을 꾸려나가는 게 시급한 문제다. 체육특기생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가정형편상 운동을 그만둘 것을 호소했다고 했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운동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아들이 월급도 안 주는데 왜 매일같이 나가냐고 물어요. 그럼 ‘이 엄마가 처음으로 직접 번 급여로 네 회비 낼 수 있어서 자부심을 갖고 일했는데, 그렇지 못해 속상하다’고 설명하죠. 생계 때문에 시위를 그만두는 분도 많은데, 이제부터 저도 저녁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생계문제는 거리로 나선 ‘아줌마 근로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넉넉지 않은 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직업전선에 뛰어든 이들이고, 개중에는 남편 대신 생활을 꾸려야 하는 가장도 적지 않다.

“아까 은행에 다녀왔는데, 한동안 마음이 먹먹해서 주변에서 나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더라고요.”

7년간 홈에버 면목점에서 수납원으로 일해온 L씨(40)는 “매달 결제일만 돌아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초등학교 6학년 딸과 3세 아들을 둔 그는 몸이 안 좋아 입원한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리는 실질적 가장이다. 정규직으로 파업에 참여한 그는 엄마 대신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12세 딸에게 “친구가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아닌데요’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지만,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엄마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아닌지 고민이 크다”고 털어놨다.

2004년 남편과 사별하고 초·중·고생 세 아이를 키우는 C씨도 ‘내 옆에 있던 동료가 안 보이고, 차별받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파업에 참여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빨리 정상적으로 돌아가서 근무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도 계속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안 좋은 것 같아요.”

국정감사에서도 이랜드그룹 성토 빗발

비정규직보호법은 2년 넘게 고용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고, 같은 사업장에서 구체적인 이유 없이 비정규직을 차별대우할 수 없게끔 돼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의 취지를 살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분리직군제를 도입해 고용을 보장하고 복리후생을 정규직 수준으로 개선한 기업이 적지 않다.

‘이랜드그룹 사태’는 사측이 비정규직법을 회피하기 위해 계약해지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사실상 해고하고 계산원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촉발됐다. 이 과정에서 이랜드그룹은 백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단체협약을 어기는 등 ‘명백한 잘못’도 저질렀다. C씨가 국회 앞에서 불안한 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 국회 안에선 이랜드그룹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10월23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은 ‘이랜드그룹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한선교 의원(한나라당)은 백지계약서와 관련해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계약서를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계약서의 문구를) 화이트로 지우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몰아붙였고 우원식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근로계약서를 위조했다. 그건 사문서 위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종길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파업으로 조합원이 빠진 계산대에 (월 30만원의 연수비를 받는) 청소년 직장 프로그램 연수생들을 배치했다(대체근로는 불법이다)”고 주장했으며, 조성래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외국 출장을 구실로 박 회장이 국정감사에 나오지 않은 까닭”을 추궁했다. 홍준표 위원장(한나라당)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랜드그룹 경영진을 질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마음대로 경영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헌법상 노동권은 기업경영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기본권’이다. 11월2일 노동부 국정감사에 출석하라고 박 회장에게 전하라. 출석하지 않으면 고발할 것이다.”

오상흔 이랜드리테일(홈에버) 대표이사, 최종양 뉴코아 대표이사가 국회에서 진땀 빼고 있을 때 김민자(33) 씨는 임신 8개월의 몸으로 국회 밖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김씨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이번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주변에서 말려도 집에서 쉬고 있으면 답답해 현장에 나온다”고 했다.

이랜드그룹 사태의 겉으로 드러난 주인공은 김씨 같은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후 첫 분규는 비정규직보호법을 둘러싼 ‘힘 겨루기’로 비화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학생 등 비(非)이랜드그룹 노조원이 ‘불법 점거농성’ 등에 뛰어든 것. ‘아줌마 조합원’들의 생존권 투쟁이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투쟁’에 이용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랜드그룹 사측은 “노조가 교섭에 나서려 해도 민주노총이 이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상수 노동부 장관도 “제삼자인 민주노총이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장관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고 가계에 보탬이 되려 일터에 나온 아주머니들이 영업장을 무단 점거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랜드 파업사태는 개별기업의 노사문제로 다뤄졌다면 이렇게 오래 끌 일도 아니었다”(박종남 대한상의 조사2본부장)는 주장도 나온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법안 상정 후 2년여의 논의 끝에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이 법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노동계의 반발이 경영계보다 좀더 강한데, 기업의 집단해고와 외주화로 고용안정이 오히려 약화된다는 것이다. 반면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노동의 유연성을 떨어뜨려 거꾸로 실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랜드 사태 장기화 민노총·노동부는 책임 없나

즉각적인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정규직 근로자가 ‘특정 이유’로 일을 못할 때만 계약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제계는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밝힌다. 경영계는 일단 비정규직법을 안착시킨 뒤 미비점을 보완하자는 주장이다(한국노총, 노동부의 견해는 경영계와 비슷하다).

홈에버, 뉴코아 노조의 ‘아줌마 조합원’들은 이튿날 오후 종로에 다시 모였다. 노사 협상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모습이다. 조합원들은 종각에서 세종로 네거리까지 3보1배를 했다.

홈에버 상암점에서 수납원으로 일하던 J씨(52)는 “7시간 넘게 계산대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일하고, 과잉친절이라 할 만큼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하려 했다”며 “점거농성을 하면서 썩은 계란이나 물대포를 맞을 때 내가 몸바쳐 일한 회사가 이런 수준이었음을 생각하고 쓸쓸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웬수 보듯” “때려잡듯” 한 회사에 원망이 크다. 일터로 복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9월에는 회사로부터 사정이 어렵거나 비교적 온건한 일부 조합원에게 “추석 전까지 복귀하면 조건 없이 받아주겠다”는 연락도 왔다고 한다. 생계 또는 다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복귀해야 하는 이들의 사정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조합원들은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하나 들어가면 하루가 늦춰지는 것 같고, 둘이 들어가면 이틀 늦춰질 수 있으니까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하지만 들어간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죠. 들어갔다가도 얼마 안 돼 그만두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더 안타까운 것은 점거농성을 가서 같은 매장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싸워야 할 때예요. 회사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싸움 붙이는 격이죠.”

“결혼한 아줌마가 할 수 있는 건 보험영업, 식당 서빙, 유통업이 전부예요. 여길 그만두고 다른 데로 가도 비정규직으로 잘릴 상황이 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이런 나쁜 기업은 망해야 앞으로 우리 같은 피해자가 안 생기죠.”

세계은행은 최근 발표한 ‘2008 기업환경 보고서’에서 한국의 고용환경을 세계 131위로 평가했다. 전투적 노동운동은 외국자본의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다. 기업들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비정규직을 통해 풀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으며, 합리적인 노동운동과는 거리가 먼 노조의 ‘떼법’으로 사회가 지불하는 코스트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이랜드그룹은 국정감사에서 “악덕 기업주”(우원식 의원)라는 소리까지 들을 만큼 부도덕한 면이 많았다. ‘이랜드 신화’의 축이던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회사’ ‘선교와 구제를 펼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물거품이 됐으며 ‘돈보다 일, 일보다 사람’이라던 기업정신도 머쓱해졌다. 이랜드그룹의 사례에서만큼은 ‘위선(僞善)’이 ‘떼법’보다 훨씬 커 보인다.



주간동아 2007.11.06 609호 (p48~52)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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