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7

2007.10.23

바람난 40대, 방황을 두려워 마라

‘사추기’는 인생 2막 여는 출발점 …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올인 기회

  • 이경수 ‘마흔의 심리학’ 저자

    입력2007-10-17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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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의 자화상

    바람난 40대, 방황을 두려워 마라

    최근 40대 동방신기로 데뷔해 화제를 모은 댄스그룹 ‘파파스’.

    ‘바람난 남자’. 40대 남자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40대가 되면 남자들의 가슴에는 바람이 분다. 태풍처럼 거센 바람의 소용돌이가 속을 마구 흔들어댄다. 눈이 멀도록 ‘찐한’(?) 연애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뜬금없이 머리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침 출근길에는 지하철을 타고 그냥 이대로 종점까지 가고 싶기도 하다. 학창 시절 품었던 꿈이 떠오르면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린다. 하고 싶은 게 어찌나 많은지,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처럼 경쟁하듯 머리를 내밀고 쑥쑥 올라온다.

    하지만 할 수가 없다. 얽매인 것이 많아서, 주머니가 가벼워서, 용기가 없어서, 주위 시선이 두려워서….

    그러자니 한없이 처량하다. 지금껏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갑을 열어보면 만원짜리 몇 장 달랑 들어 있다. 누군가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올까 두렵다. 옷차림은 후줄근하고 귀가 드러나도록 짧게 깎은 머리는 변함이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자체가 싸구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울을 보면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수북이 올라와 있고 눈가 주름살은 밭고랑만큼이나 깊다. 배는 대책 없이 나오고 머리카락은 서리 맞은 단풍처럼 빠진다. 어느 때부턴가 친구들의 부음마저 들려온다. 인정하기 싫은 나이, 마흔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일상은 일말의 기대도 허용하지 않는다. 훤히 내다보이는 미래에 가슴이 답답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이 없다. 아니, 사람은 많은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살기 바쁜 친구들은 약속시간 잡기조차 어렵고, 아내에게 남편의 존재는 아이들에게 밀린 지 오래다. 직장에서는 중간에 끼여 위아래 눈치 보기 일쑤다.

    주책없이 눈물은 왜 자꾸 나는지. 노래를 들어도, 영화를 봐도 모두가 내 이야기인 것 같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눈물이 핑 돈다. ‘바람난 40대’의 자화상이다.

    40대의 가능성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만일 그렇다면 얼마나 서글픈가. 당장 한강에라도 가야 할 것 같다). 40대의 가슴에 이는 바람은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이 에너지를 잘 활용한다면 그 이후는 달라질 것이다. 때문에 40대의 방황은 중요하다. 이 시기를 변화의 기회로 활용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다.

    마흔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은 수많은 경험을 한다. 나이는 허투루 먹는 게 아니다. 40대와 비슷한 과정을 겪는 10대 사춘기 청소년은 무조건 덤비고 본다. 때문에 이들의 도전은 쉬이 실패한다. 하지만 40대는 현실에 발을 디디고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한층 높다. 여기에 한 가지 더. 40대는 경제적인 여력까지 있다. 많든 적든 새로운 시도를 할 때 필요한 ‘총알’이 있는 것이다.

    풍부한 경험과 경제적 여력은 가슴에 이는 바람을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재료다. 문제는 두려움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판단하는 만큼 가족, 나이, 건강, 시간 등 많은 것을 고려한다. 그만큼 제약 조건이 많다는 뜻이다. 때문에 가슴으로는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머리로는 그것이 안 되는 이유를 수십 가지씩 꼽고 있다. 그러면서 실패했을 때 빚어질 결과를 떠올리며 두려워한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마흔의 바람은 단순한 방황에서 그치고 만다.

    두려움 극복법

    그럼 이러한 두려움을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의외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두루뭉술하게 ‘나는 이런 사람일 것이다’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자신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흰 종이나 컴퓨터 워드 문서에 자신의 이름, 나이, 학력, 외국어 수준, 건강 상태, 보유 자격증, 성격의 장단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관심 분야, 반드시 해보고 싶은 것,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등을 생각나는 대로 한번 써보라. 이렇게 하나하나 써 넣다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윤곽이 그려진다. 이 과정이 끝났다면 평가한 것을 가족이나 친구 등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평가서를 완성했다면 이제는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가장 잘하는 것, 경쟁력을 가질 만한 것들만 남기고 못하는 것, 모자라는 것들은 과감히 버린다. 20, 30대까지만 해도 잘하는 것은 더욱 잘하기 위해, 못하는 것은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하기 위해 둘 다 안고 간다. 하지만 40대에는 둘 다 갖고 가기 어렵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시험이 임박했을 때 모르는 것은 과감히 뛰어넘듯, 40대에는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대신 못하는 것에 쏟을 열정과 노력을 잘하는 것, 하고 싶은 일에 몰아주자. 그러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이 된다. 이제 실천만 남았다.

    40대의 방황은 가슴속에 품고 있는 바람과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 간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방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바람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퇴근 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아니면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 틈틈이 자신의 바람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도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심한 마흔앓이를 경험했다. 그때 그 방황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이었다. 퇴근 후 시작된 나만의 작업은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피곤했지만 아주 즐거운 고단함이었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회사 일은 부업이다. 본업은 퇴근 후부터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본업을 하기 위해 그깟 아르바이트 10시간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서서히 나를 옥죄고 있던 우울증과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사추기 No, 사춘기 Yes

    바람난 40대, 방황을 두려워 마라

    40대 아저씨들이 20년 전 밴드를 재결성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즐거운 인생’.

    두려움 극복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은 대화 상대를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를 미워하고 외면하는 사람보다 나를 사랑하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 다만 언제 도움을 줘야 할지 몰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외롭고 힘들 때, 새로운 도전을 앞에 놓고 떨릴 때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 상태와 기분, 계획 등을 털어놓아보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다의 효능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대화 상대는 가족이어도 좋고 친구여도 좋다.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정신과를 찾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신과 의사는 언제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좋은 대화 상대는 역시 배우자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과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마흔은 흔히 말하듯 ‘사추기’가 아니다. 저물어가는 석양, 계절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가을이 아니다. 희망찬 시작을 알리는 일출, 꿈틀대는 생명의 힘과 에너지를 품고 있는 봄의 느낌, 사춘기와 똑같다. 더욱이 40대는 그 에너지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좋은 재료를 갖고 있는 시기다. 그만큼 마흔의 방황과 고뇌는 새로운 인생의 제2막을 열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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