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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레이디 인 더 워터’

괴물과 요정 출몰사건 동화인가 팬터지인가

괴물과 요정 출몰사건 동화인가 팬터지인가

괴물과 요정 출몰사건 동화인가 팬터지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어렸을 때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 적이 있을 것이다. ‘옛날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솔깃한 이야기를 듣다 스르르 잠든 기억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신작 ‘레이디 인 더 워터’는 머리맡에서 듣기 좋은 전래동화, 혹은 신비한 요정 이야기로 우리의 눈과 귀를 유혹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살해된 뒤 의사라는 직업도 버린 채 건물 관리인으로 살아가는 힙은 어느 날 수영장에 숨어 있는 물의 요정 스토리를 만난다. 인류에게 요정 세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물 밖으로 나왔다는 그녀. 힙은 언젠가 할머니에게 들었다는 한국인 모녀의 설화를 바탕으로 스토리의 정체를 추적해나간다. 괴물에게 쫓기는 요정 스토리를 돕는 가운데, 힙과 그 건물에 세 들어 사는 다양한 사람들은 이 물속의 여인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문제는 하룻밤 동화로 충분한 이야기, 자기 딸에게 들려주려고 시작한 이야기를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왜 7500만 달러나 들이고 디즈니와의 결별을 감행하면서까지 영화로 만들었냐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대판 ‘인어공주’나 ‘ET’의 수중 버전쯤인 듯하지만, ‘레이디 인 더 워터’는 동화라는 원형성을 빌려 샤말란의 욕망과 팬터지를 표현한 개인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 모녀, 주인공에게 결정적 단서 제공

괴물과 요정 출몰사건 동화인가 팬터지인가
이 영화에는 그동안 샤말란의 영화 세계를 지탱해온 반전이 없다. 그러나 그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계시와 화해, 영감의 메시지는 더욱 충만하다.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떨친 ‘식스 센스’에서부터 ‘레이디 인 더 워터’까지 이 인도 출신 감독은 귀신이나 절대로 다치지 않는 초인, 고립된 사람들, 그리고 요정들을 통해 으스스하면서도 영롱한 팬터지의 세계를 축조해왔다. 샤말란은 이런 타자들을 괴물로 변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을 품에 안고 늘 이방인과 소통하고자 노력하면서, 그 소통의 과정에 놓인 갖가지 모험의 신비한 기운과 아우라의 힘으로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 ‘코브’는 미국 사회의 축소판 혹은 미국 사회 그 자체로 형상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주류 미국인이 한 명도 살지 않는 이 아파트에는 딸만 줄줄이 낳은 히스패닉 가장, 주인공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한국인 모녀, 낱말 맞추기에 열중하는 흑인 부자, 담배나 피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히피 청년 등 누구 하나 ‘정상적’인 가정을 이룬 사람이 없다. 그러나 상징계의 그물망을 뚫고 나타난 우리의 요정은 이들이 힘을 합침으로써만 그녀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이 영화에는 전례 없이 샤말란 본인이 빈번히 등장한다(디즈니는 샤말란의 등장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에 샤말란은 워너로 자리를 옮겼다). 히치콕처럼 항상 카메오로 출연했던 그이지만, 이번에는 요정에게서 축복과 계시를 듬뿍 받는 인도인 청년으로 나와 조연을 자청한다.

영화평론가 괴물에게 희생 … 감독의 은근한 속내 표출?

괴물과 요정 출몰사건 동화인가 팬터지인가

상처받고 결핍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수영장에 출몰한 요정을 소재로 한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레이디 인 더 워터’. 감독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는 신작.

생각해보자. 왜 요정의 이름이 스토리겠는가. 즉, 이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입담꾼으로서 샤말란 감독 자신의 능력에 대한 대관식인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시종일관 차가운 얼굴로 아파트 사람들과 거리감을 두다가 결국 유일하게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하필이면 영화평론가라는 점이다. 가끔 감독들은 영화에 평론가를 등장시켜 가장 멍청한 악당으로 조롱하거나 그간 받은 비판을 복수하듯 되돌려준다. 예를 들면 ‘고질라’의 감독 롤런드 에머리히는 멍청한 뉴욕 시장을 에버트로, 그의 비서를 시스켈로 등장시켜 로저 에버트와 진 시스켈 같은 유력한 영화평론가에게 은근한 복수를 감행했다. 사태가 이러하니 미국의 평론가들이 일제히 ‘나이트 샤말란의 자아도취적인 영화’라며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도 당연할 터다.

그런데 정작 물속 요정에게 마르지 않는 이야기 주머니를 선물받는 행복한 대관식을 치른 영화의 스토리가 무척이나 빈약하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관객들은 ‘반전’이 없기 때문에 이 영화에 실망한 것일까. ‘레이디 인 더 워터’는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도 샤말란의 주술에 빠지면 그것을 믿게 만드는 그 무엇, 캐릭터와 이야기의 핍진성(그럴듯함), 영롱한 마법처럼 천천히 실체를 드러내는 샤말란 특유의 서스펜스와 스릴의 힘을 상실한 채 이야기의 앙상한 뼈대만을 드러낸다. 즉, 사람들이 샤말란의 영화는 항상 두 번 봐야 이해된다고 했던 그 무엇, 줄거리 속에 은밀히 숨겨진 사금파리처럼 빛나던 퍼즐로서의 이야기 맞추기에 대한 재미가 사라진 것이다.

스토리 빈약, 샤말란 특유의 맞추기식 재미도 실종

샤말란의 연출력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언브레이커블’에서 카메라를 360도 회전함으로써 가장 취약하고 선해 보이는 새뮤얼 잭슨이 악의 화신이라는 힌트를 주는 것 같은, 느리지만 유장하고 신비롭던 스타일이 자꾸 빛을 잃는다.즉, 전형적인 할리우드 수법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물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몇몇 수중 장면의 아름다움이 인상적일 뿐이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화면이 더 관심을 끄는 것이다.

결국 ‘레이디 인 더 워터’는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늘 자신이 성장한 필라델피아만을 배경으로 한 영화만 만들어온 샤말란에게 인도인도 미국인도 아닌 절반의 정체성으로 살아온 인생을 결산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샤말란 씨, 필라델피아에 가다’ 같은 영화다. 그것은 개인적인 소망을 담은 팬터지며, 동화로 퇴행한 한 소년의 개인적인 꿈이기도 하다. 워너 브라더스는 샤말란에게 전권을 주었지만, 이번에는 디즈니의 판단이 옳았던 듯싶다. 샤말란은 조연으로 자신을 드러내놓고 관객들과 체스 게임을 벌이기보다 자신을 숨겼어야 했다. 물 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사람은 스토리가 아니라 샤말란 자신이다. 7500만 달러의 제작비에 1804만 달러의 흥행 수치가 샤말란의 판단 오류를 말해주고 있다.



주간동아 2006.10.31 558호 (p7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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