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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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실용주의’로 포장된 트럼프와 푸틴의 브로맨스

친러 기업가 틸러슨 국무장관 지명…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에 미 상·하원 초당적 조사

  • 신석호 동아일보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6-12-16 18: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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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동부 시간으로 12월 13일 오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장관에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하자 러시아가 즉각적인 환영으로 화답했다. 한국 시간으로 13일 저녁 외신을 통해 전해진 이들의 소통은 거의 짜고 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트럼프는 성명을 통해 “틸러슨은 끈기는 물론이고 지정학에 대한 넓은 경험과 깊은 이해를 갖췄다”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세르비아를 방문 중이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기자들에게 “트럼프와 틸러슨 모두 실용주의적인 사람이고, 이런 실용주의가 양국 관계 구축과 국제문제 해결에 좋은 기반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워딩은 트럼프가 사용한 ‘지정학’과 라브로프 장관의 ‘실용주의’다. 트럼프가 말한 지정학을 좁게 해석하면 틸러슨이 글로벌 석유기업 CEO로서 전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경험과 인맥을 쌓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넓게,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트럼프가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일·러 3국이 중국을 둘러싸는 지정학적 포석이다. 그 대신 러시아는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를 풀고 크림반도 점령 인정 등 아시아와 유럽 주변국에 대한 합당한 영향력을 인정받는다. 그것이 러시아가 말하는 ‘실용주의’일 수 있다.



    대미외교는 푸틴이 원하는 대로 

    이런 그림을 그려보면 트럼프가 아무런 공직 경험이 없고, 더구나 외교 문외한인 석유회사 CEO를 미국 세계 정책을 책임지는 국무장관에 지명한 이유가 설명된다. 틸러슨은 대학 졸업 직후인 1975년 엔지니어로 입사해 지금까지 41년간 한 번도 엑손모빌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산유국 러시아와 다양한 네트워킹을 쌓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행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제재를 엑손모빌의 사업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비판했고, 2013년에는 17년 지기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정부 훈장인 ‘우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2013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합병한 해다.

    11월 8일 미국 대통령선거(대선) 결과 트럼프가 당선하고 친러파 국무장관까지 맞이했으니 푸틴은 뜻하는 대로 대미외교가 술술 풀리는 형국이다. 주러시아 미국대사를 지낸 마이클 맥폴 국가안전보장회의 수석보좌관은 8월 20일 ‘시카고트리뷴’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푸틴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대외정책은 모두 푸틴이 지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특히 “트럼프의 매우 충격적인 공약 가운데 하나는 크렘린이 줄곧 주장해온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자는 것”이라며 “오로지 아프가니스탄, 쿠바, 니카라과, 북한, 시리아, 그리고 베네수엘라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승인했고 자연스럽게 미국도 그 리스트에 들어가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7월 31일 미국 TV 시사프로그램 ‘디스위크’와 인터뷰에서 “그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며 “내가 들은 바로는 크림반도 주민은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와 함께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주장했다.



    12월 14일 워싱턴포스트는 ‘국무장관 자리를 놓고 틸러슨,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과 경합했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최종 탈락한 것도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에게 비판적이던 언행에 더해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 트럼프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를 지정학적 최대 적수라고 주장해온 롬니 전 주지사는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원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한 후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롬니 전 주지사는 자신이 트럼프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러시아 문제 등에서 일종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으나 결국 고배를 마셨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 CIA 보고서로 재촉발

    한편 맥폴 수석보좌관은 8월 칼럼에서 이미 “푸틴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전례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러시아의 개입이 성공할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푸틴 정부는 그렇게 해야 할 동기와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푸틴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선에서 경쟁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측이 전당대회를 앞둔 7월 러시아 정부와 관련 있는 해커들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실체가 이미 드러난 상태였다. 7월 22일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는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지도부 인사 7명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5월 25일까지 주고받은 e메일 1만9252건과 첨부파일 8034개를 공개했다. DNC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경선 승리를 막고 클린턴 편들기를 했다는 취지의 폭로 등을 통해 민주당 내분과 민주당 대 공화당의 갈등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클린턴 대선캠프는 즉각 해킹이 러시아의 대선 개입 행위라고 주장했다. 로비 묵 클린턴 대선캠프 선거본부장은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 요원들이 DNC의 e메일을 해킹한 뒤 트럼프를 돕기 위해 그것들을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양 후보 간 논쟁의 대상이 됐다.

    트럼프가 당선했고 이 문제는 가라앉았지만,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당시 사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러시아가 실제로 대선 개입을 넘어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클린턴을 공격했다고 지적하며 다시 불이 붙었다. 12월 10일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알려진 이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해커들은 DNC뿐 아니라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자료도 빼냈지만 민주당 인사에 대한 자료만 집중 공개하는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 만들기’를 실행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러시아에 대한 공화당 내부의 상반된 시각을 그대로 드러냈다. 트럼프를 비롯해 당선인 측근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부인했지만, 친트럼프 세력과의 관계 개선에 반대하는 상·하원의 당 수뇌부는 정식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상원 정보위원회가 주체가 돼 초당적인 진상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동참해 이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당내는 물론, 워싱턴 정가에서 화약고가 될 전망이다. 진상 여부에 따라 트럼프의 대러시아 관계 개선 전략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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