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7

2016.12.14

정치

호남은 ‘집권’을 선택했다

문재인 우향우 진격 노선의 딜레마…오른쪽엔 반기문·안철수, 왼쪽엔 이재명이 文 압박

  • 오승용 전남대 교수 osyong@gmail.com

    입력2016-12-09 17: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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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결과 예측은 장기간의 민심 흐름을 반영한 자료에 기초해야 한다. 가장 좋은 자료는 여론조사다. 하지만 현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 결과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특히 야권 대통령선거(대선) 후보들에게 호남 여론은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다. 20대 총선 이후 큰 변화 없이 이어지던 대선후보 지지율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 앞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은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서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나타난 (호남) 민심의 흐름을 거칠게 스케치하면서 각 후보 앞에 놓인 과제를 간략하게 짚어보려 한다.



    박근혜 추락, 반사이익은 없다

    먼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10월 둘째 주 이후 지지율 변화를 살펴보자.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10월 둘째 주 주간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20.1%,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24.0%,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9.6%, 이재명 성남시장 4.6%, 박원순 서울시장 4.8%였다. 같은 시기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문재인 18%, 박원순 6%, 반기문 27%, 안철수 9%, 이재명 5%였다. 다음으로, 박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4%에 그치며 탄핵표결을 앞둔 시점의 지지율을 보자. 리얼미터 11월 25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20.8%, 반기문 18.9%, 이재명 14.7%, 안철수 9.8%, 박원순 4.3%였다. 한국갤럽의 가장 최근 여론조사인 11월 둘째 주 조사는 반기문 21%, 문재인 19%, 안철수 10%, 이재명 8%, 박원순 4%였다.

    지지율 변동 폭을 살펴보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시점의 리얼미터 지지율 조사에서 문재인은 20.1%, 가장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20.8%로 두 조사 결과의 차이는 0.7%p에 그쳤다. 반면 반기문은 24.0%에서 18.9%로, -5.1%p를 기록했으며 안철수는 9.6%에서 9.8%로 0.2%p 차이를 보였다. 이재명은 4.6%에서 14.7%로 10.1%p 상승했다. 박원순은 4.8%에서 4.3%로 -0.5%p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의 선호도 추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월 둘째 주와 11월 둘째 주 선호도 조사를 비교해보면 문재인 1%p, 박원순 -2%p, 반기문 -6%p, 안철수 1%p, 이재명 3%p였다.

    야권 중심 지역인 호남에서 지지율 변화는 좀 더 역동적이다. 리얼미터 10월 둘째 주 호남에서 지지율은 문재인 26.6%, 반기문 15.8%, 안철수 14.0%, 박원순 7.0%, 이재명 4.4%였다. 그런데 11월 둘째 주 호남에서 지지율은 문재인 27.7%, 이재명 16.4%, 안철수 16.6%, 반기문 9.6%, 박원순 5.1%였다. 한국갤럽 10월 둘째 주 여론조사는 문재인 16%, 반기문 20%, 안철수 11%, 이재명 4%, 박원순 9%였는데, 11월 둘째 주 조사에서는 문재인 18%, 반기문 15%, 손학규 17%, 안철수 12%, 이재명 8%, 박원순 4%였다. 두 조사 모두 문재인은 답보 상태(+1.1%p, +2%p), 반기문은 하락(-6.2%p, -5%p), 안철수는 답보 상태(+2.6%p, +1%p), 이재명은 상승(+12.0%p, +4%p), 박원순은 하락(-1.9%p, -5%p)이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확인된 호남 여론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박 대통령의 추락에 따른 지지율 반사효과는 문재인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문재인이 비록 야권 대선후보 가운데 가장 높고 견고한 지지율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지지하지 않는 응답자들과 결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즉 호남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장성에 한계가 있음이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답보 상태 지지율은 문재인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호남 유권자가 문재인 지지를 망설이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도 이것이다.



    보수성향 무응답으로 돌아서

    둘째, 그렇다고 이재명의 지지율 상승이 박 대통령 추락에 따른 반사효과라고 이야기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이재명의 지지율 상승세는 기존 선호 후보를 교체한 결과가 일부 반영된 것이겠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선호 후보가 없던 응답자들이 지지를 표명한 결과라고 추론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호남과 비호남의 이재명 지지 변화가 다른데, 호남지역에서는 반기문이나 박원순에서 이재명으로 지지가 이전된 응답자층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반면, 비호남지역에서는 기존 지지층에서 이재명으로 이전된 응답자층을 발견하긴 어렵다. 문재인 지지층이 확고한 반면,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는 더 많은 응답자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고, 이러한 모색으로 이재명과 결합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셋째, 반기문과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선후보를 지지하던 보수성향 응답자가 무응답으로 돌아서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내년 대선에서 야권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 역시 높지 않다. 따라서 정당 경쟁구도를 놓고 보면 제3지대로 지칭되는 중간지대 대선후보군의 반등 가능성이나 새누리당의 변신 및 분화 등 정계개편에 따라 지지율이 큰 폭으로 변동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최근 (호남) 여론 흐름은 문재인에겐 청신호가 아니라 적신호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보면 문재인은 여전히 야권 1위 후보이고, 견고한 지지층은 다른 후보들이 갖지 못한 큰 자산이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 위험 혹은 시련이 문재인을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위험은 문재인의 오른쪽에서 오고 있다. 이 위험은 상존해온 위험이기도 하다. 안철수의 존재가 문재인의 중도 확장에 장벽이 될 것임은 많은 전문가가 수없이 지적한 문제다. 이념적으로는 중도 보수성향, 세대 차원에서는 50대 이상 장·노년층, 지역적으로는 호남이 문재인으로의 지지 변경을 망설이고 있다. 문재인은 호남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안철수를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만 있는 게 아니다. 아직까지 호남을 제외하곤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손학규가 이미 제3지대로 가 있고, 반기문도 중간지대에서 세력화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반기문, 안철수, 손학규 등으로 대표되는 중간층 유권자를 타깃으로 하는 후보군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문재인의 우향우 진격 노선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위험은 문재인의 왼쪽에서 오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이 성장과 안보라는 보수 정당의 슬로건을 차용할 수 있었던 데는 이념적으로 정의당 쪽에 가깝지만 마땅한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진보성향 유권자에게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본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수 있었던 배경이 있다. 그러나 이재명이 등장하면서 더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가 이재명에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난 미국 대선에서 중도 보수를 지향하던 힐러리 클린턴에 맞서 진보성향의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던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 클리턴에겐 자신보다 오른쪽에 서 있는 후보가 없었지만 문재인은 오른쪽에서 반기문과 안철수, 왼쪽에서 이재명이 압박해오는 형국이다. 이제 문재인도 클린턴이 직면했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오른쪽을 잡고자 우향우를 가속화하면 왼쪽을 잃을 것이다. 이를 우려해 왼쪽을 강화하면 오른쪽의 판이 커지게 된다. 어느 경우든 매우 곤란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큰 과제가 있다. 문재인은 호남에서 여전히 강자가 아니다. 반기문, 안철수에 손학규의 지지율이 문재인에 버금갈 정도로 높다. 이념적으로 통합되기 어렵지만 호남에서 반문재인 정서가 작동할 경우 반기문, 안철수, 손학규 지지자가 통합할 가능성도 있다(리얼미터 11월 다섯째 주 여론조사 참조). 이들은 모두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을 지지할 개연성이 높은 유권자다. 그리고 최근 호남에서 이재명 지지율은 문재인 못지않다. 이재명은 지난여름부터 토크콘서트, 광주·전남 순회 강연, 촛불집회 참여, 방송토론 등을 통해 오랜 시간 호남에 공을 들여왔고, 이재명에 대한 선호를 만들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보여준 반응은 문재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정치적 관여도가 높은 호남 유권자층에서 이재명의 상승세는 다른 누구보다 높아 보인다.



    당락 가르는 제1 요소

    호남은 전체 유권자 기준으로 보면 이제 충청보다 적고, 전체 유권자의 10%를 간신히 유지할 뿐이다. 그러나 야권 대선후보에게 호남은 아직도 매우 중요한 전략 지역임은 틀림없다. 대선 레이스를 1단계 경선과 2단계 본선으로 나눌 때 대선에 나가려면 먼저 경선에서 이겨야 한다. 야권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데 호남 당원과 출향 당원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1단계보다 못해도 대선 2단계에서 호남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호남은 야권 대선후보에겐 일종의 고정자산으로 인식돼왔다. 그런데 지난 총선부터 호남이 더는 고정자산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유동성이 증가한 것이다.

    경선 결과에 따라 본선에서 특정 후보에게 표를 집중해주던 투표 행태가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더는 비밀이 아니다. 이재명과 화학적 결합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지가 선결과제다. 그런데 최근 흐름을 보면 문재인이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1단계를 통과해도 국민의당을 포함한 제3지대 후보군이 기다리는데, 제3지대 후보와 야권 후보단일화를 성사하려면 문재인이 가진 모든 것을 내줄 수 있다는 각오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 문재인의 머릿속엔 다자필승론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대선후보군이 3자 구도가 될지, 4자 구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전략이다. 자칫 4자 구도하에서 노태우에게 패했던 1987년 대선의 데자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문재인 양강구도를 제외하면 민주화 이후 한국 대선은 항상 제3 후보가 존재하던 다자구도로 치러졌다. 이전 사례만 본다면 제3 후보가 승리한 경우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문재인보다 안철수나 제3지대 후보가 느끼는 부담감이 더 크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민주화 이후 치른 대선에서 집권 여당이 사실상 무너져 제1야당 후보에 견줄 만한 대선후보가 한 명도 변변하게 없는 상황은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바꿔 이야기하면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의 2강-1약 구도로 치른 이전 대선과 달리 19대 대선은 집권 여당 후보가 1약이 되고 제1야당과 제3지대 후보가 2강이 되는 구도도 가능하다. 만약 이런 상황이 온다면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예측도 허용하지 않는다. 경쟁구도에서 후보와 정당의 확장성이 승패를 가를 수밖에 없다. 아니, 전적으로 후보의 확장성이 당락을 가르는 제1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에게 예정된 길은 어떤 길일까. 그 길이 고칠 수 없는 길이 아닌, 어느 정도 고칠 수 있는 길이라면 문재인에게 다소 위로가 될까. 그 시험은 결국 호남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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