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5

2016.11.30

강유정의 영화觀

딸이든 아들이든 난 널 사랑한단다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6-11-29 16: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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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엘 패닝 분)는 겉으로 보면 영락없는 남자아이다. 남자아이처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짧은 머리에 헐렁한 셔츠를 걸치고 다니며, 남자아이들과 은어를 나누고, 매혹적인 여자에게 눈길을 빼앗기니 말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레이는 여자다.

    미국 뉴욕에 사는 레이의 가정은 좀 독특하다. 돌이켜보면 뉴욕이니까 독특하다 정도지, 텍사스나 이곳 대한민국 서울이었다면 아예 불가능한 가족 구성일지도 모르겠다. 레즈비언 할머니 부부와 어머니, 그리고 레이. 이렇게 생물학적 여자 넷으로만 구성된 가정이니 말이다.

    ‘어바웃 레이’는 퀴어나 동성애 같은 성적소수자 영화라기보다 젠더에 대한 영화라고 하는 게 옳을 듯싶다. 엄밀히 말하자면 젠더 롤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가령 레이의 할머니(수전 서랜던 분)-할머니(린다 에몬드 분)는 둘 다 여자지만 한쪽은 아버지, 다른 한쪽은 어머니 구실을 맡는다. 싱글맘인 레이의 엄마 매기(나오미 와츠 분)는 아버지, 어머니 두 몫을 다 하려 한다. 사실 그리 부족함도 없다.

    문제는 아직 미성년자인 레이가 젠더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2차 성징이 시작되고 점차 여성의 외모를 갖게 된 레이는 월경과 유방을 지긋지긋해한다. 자신은 남자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생물학적 성숙 과정이 역겨울 뿐 아니라 너무 힘들다고 여긴다. 생각해보라. 만일 남자가 가슴이 나오고 월경을 한다면 어떻겠는지. 물론 관객은, 아니 레이를 이해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이상하게 볼 수 있다. ‘어디로 보나 문제가 없는 여자인데 영혼만, 정신만 남자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고집이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레이는 자신이 남자라는 데 전혀 의심이 없다. 그래서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기로 결정한다. 이때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미성년자라 부모가 동의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레즈비언 할머니들은 그냥 자신처럼 있는 그대로 여자를 좋아하면 안 되느냐고 의아해한다. 물론 레이는 다른 레즈비언처럼 여자를 좋아한다. 차이점은 레이가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자, 즉 이성애자로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설명하려고 레이는 무척 애를 쓴다. 말하자면 레이는 성적 소수자인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총칭)에게조차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인 셈이다.



    엄마 매기는 레이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막상 서명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자 두려워한다. 호르몬 치료라는 게 한 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로만 구성된 가정에서 살아온 매기에게 딸이 아들로 바뀌는 것은 너무 낯선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레이의 선택과 고민, 갈등은 가족 모두를 성장케 한다. 레이가 젠더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적 선택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레이가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가 서명을 받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는 단지 형식적 서류 작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 방향을 다시 결정하는 일이고, 그건 새로운 삶의 시작일 수밖에 없다.

    결국 매기는 레이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준다. 어떻게 보면 뻔한 결말이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고민과 갈등은 이 필연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젠더를 고민하는 레이 역의 엘 패닝이다. 다부지고 당찬 꼬마가 어느새 훌쩍 자라, 좀 더 깊은 고민의 여러 면모를 담아내는 배우가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떤 심각한 문제일지라도 함께 고민할 가족이 있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따뜻하고 포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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