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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위기의 남자 문재인

좌고우면 평가 속 리더십 신뢰 추락…신중함이 ‘부자 몸조심’으로 부메랑

  • 유창선 정치평론가 yucs1@hanmail.net

위기의 남자 문재인

위기의 남자 문재인

11월 21일 대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뉴스1]

‘최순실 게이트’는 결국 ‘박근혜 게이트’였다는 것이 최근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재벌 총수들을 만나 돈 내라고 강요한 주인공이 대통령이었다는 엽기적인 진상이 드러나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조사 거부를 선언하며 장기전에 돌입했다. 민심에 맞서는 이런 모습에 대통령 지지율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고, 주군을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친박(친박근혜) 지도부의 새누리당 지지율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집권세력은 이렇게 몰락하고 있다.



갇혀 있는 문재인 지지율

위기의 남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오른쪽)가 11월 21일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를 찾아 경북대 학생들과 악수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현상이 나타난다. 집권세력이 국민에게 정치적 탄핵을 받고 이 정도로 추락했다면 야권, 특히 제1야당 지지율이 껑충 뛰는 것이 상식이다. 현 정권에 분노해 등 돌린 민심이 갈 곳은 대안이 될 야당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이트 정국 속에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야권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그리고 대권주자 부동의 선두인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갇혀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주간 조사 결과들을 보면 이러한 추세를 읽을 수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폭로되기 직전인 9월 셋째 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0.1%였다. 그런데 11월 셋째 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0.5%로 거의 차이가 없다. 같은 기간 새누리당 지지율이 30.1%에서 19%로 11% 넘게 폭락했지만, 이탈층은 민주당 등 야당으로 가지 않고 부동층이 됐다는 얘기다.

문 전 대표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9월 셋째 주 문 전 대표 지지율은 18.5%였는데, 11월 셋째 주에는 20.4%를 기록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소폭 상승에 머물렀다. 게다가 문 전 대표의 이 지지율은 9월 둘째 주에 비해 1%p 하락한 수치로, 박 대통령 퇴진 요구가 정점으로 향하는 현 상황에서 그의 지지율이 오히려 꺾이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한때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동반 추락하면서 차기 대통령선거(대선)는 ‘문재인 대세론’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대두되기도 했다. 여당세력의 몰락은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 가능성을 비약적으로 높인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고, 언제 대선을 치를지 모르는 급박한 환경에서는 아무래도 대선 준비를 앞서 시작한 선두주자에게 지지가 몰릴 개연성이 크다는 판단이 있었다. 민심 대다수가 정권교체를 원하는 상황이라면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일종의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가 나타나 문 전 대표가 대세를 굳힐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나타나는 지지율 추이는 ‘문재인 대세론’은 없다는 쪽으로 귀결되는 모습이다.

어째서 박근혜에게 분노한 민심이 문재인에게로 가지 않은 걸까. 야권의 최대 리더로서 국가적 위기 극복을 선도해나가는 분명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가 현 역사의 격동기에 보여준 모습은 좋게 말하면 신중함, 나쁘게 말하면 좌고우면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든 민심은 이미 저만큼 가 있는데 문 전 대표는 계속 고민하는 모습만 보였다. 촛불을 든 국민은 너도나도 ‘박근혜 퇴진’을 말하고 있는데, 문 전 대표는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은 채 장고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그가 퇴진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는 ‘중대 결심’이라는 표현이 무색한, 너무도 당연한 얘기가 돼버린 시점이었다.



대선을 의식하느냐는 시선들

물론 제1야당 리더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에 따른 신중함의 미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촛불민심이 아무리 분노해도 정치인은 자기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불행한 사태를 막을 ‘질서 있는 퇴진’을 이루기 위해 인내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중대 결심’을 고민하는 동안 막상 그와 민주당이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민주당도 ‘당론이 없는 것이 당론’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이어가는 데 시간을 다 보냈다. 당론 결정은 항상 주말 촛불집회를 보고 난 이후로 미뤄지곤 했다.

그런가 하면 문 전 대표가 강력하게 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했다 정작 청와대가 응하니까 민주당이 발을 빼야 하는 엇박자가 발생했고,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느닷없이 양자 영수회담을 추진해 야권공조에 균열을 초래한 뒤에야 취소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때 문 전 대표의 주변 사람들은 추 대표의 충정을 옹호하는 말을 쏟아냈고, 문 전 대표는 자신과 협의가 없었다는 말로 선긋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민주당은 촛불민심에 이끌려 대통령 퇴진 당론을 야당 가운데 가장 늦게 결정했다.

문 전 대표의 여유로운 행보는 계속됐다. 최근에는 ‘명예로운 퇴진 보장’ 발언이 나왔다. 야권 대선주자 회동에서 그는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준다면 대통령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 그뿐 아니라 퇴진 후에도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틀 뒤인 11월 21일 경북대 학생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다시 명예로운 퇴진론을 제기했다. 물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유도하려는 발언이었다는 설명이지만,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까지 거부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무엇보다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보장해줄 권한이 있느냐는 반발이 컸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 퇴로 보장은 안 된다”며 반박했고, 국민의당은 “벌써 대통령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민주당 추미애 지도부가 국무총리 인선 문제를 계속 뒤로 돌린 배경도 의아하다. 박 대통령이 장기전을 선언한 후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회 추천 총리 인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특히 청와대 측이 오히려 탄핵하라고 나오고, 국회도 탄핵절차 돌입을 피할 수 없게 된 마당에 황교안 총리 교체 필요성이 절박하게 대두된 것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다 해도 총리 교체가 선행되지 못하면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진다. 이 점을 우려한 국민의당, 그리고 민주당 내 상당수 의원은 ‘선(先)총리 인선-후(後)탄핵’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추미애 지도부는 요지부동이었다. 탄핵절차 돌입은 임박해가는데 황 총리를 교체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버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국회가 새 총리를 추천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요청을 야권이 ‘2선 후퇴’를 주장하며 거부한 상태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2선 후퇴’가 불가능해지고 장기전을 예고하는 탄핵절차에 들어가려는 변화된 상황에서도 총리 인선을 서두르지 않는 민주당 지도부와 주류의 모습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설혹 박 대통령이 마음을 바꿔 국회 추천 총리를 거부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새 총리가 임명될 경우 개헌이 추진될지 모른다는 문 전 대표 측의 우려가 추 대표와 교감을 이룬 결과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문 전 대표와 추 대표가 자기들끼리만 멀찌감치 대선에 가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유독 민주당 지도부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에 대한 우려가 뒷전으로 밀린 것은 매우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시험대에 올라선 문재인 리더십

위기의 남자 문재인

야권 대권주자 및 정치인들이 11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상시국정치회의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천정배 전 공동대표. [동아일보]

새누리당이 무너진 덕에 민주당 지지율이 선두에 오르긴 했지만, 촛불민심은 이번 국면에서 민주당이 한 일이 무엇이냐고 다그친다. 문 전 대표 역시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그동안 문 전 대표에게는 야당 지도자로서 특별히 한 일이 없다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여러 차례 중대한 고비가 있었지만 가시적인 정치 업적을 보인 것이 없다는 점은 사실이다. 어쩌면 정치인 문재인의 태생적 한계일 수도 있다. 자신의 정치능력으로 세력을 만들고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세력이 그를 필요로 해 위에 앉히고 여기까지 온 셈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고비 때마다 그가 보여준 결기 부재, 상황 주도력의 미약, 정치적 판단능력 미숙은 차기를 책임질 리더로서 부족함을 적잖게 드러냈다.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층에서도 그가 선한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지만 리더로서 능력에는 물음표를 던지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치인의 리더십은 비상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민은 현 국가적 혼돈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국면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 과정이지만, 다음 수권세력의 리더십을 판단하는 시험장이기도 하다. 문 전 대표가 장고만 계속하는 사이 그에게 불만을 가진 지지층의 왼쪽은 이재명 시장에게로 이동했다. 반면 리더로서 신중함이 겨냥했던 중도층은 정작 문 전 대표에게로 와주지 않았다. 고정 지지층이 언제나 받쳐주고 있지만, 그 이상의 새로운 지지층이 만들어지지 않는 ‘문재인의 딜레마’는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를 욕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싫다는 층이 여전히 많은 현실. 그 속에서 내려가지도 않지만, 올라가지도 못하는 문재인. 그 답보 상태를 타파할 수 있는 것은 문 전 대표 자신밖에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안에 ‘뉴(new) 문재인’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시간은 결코 문 전 대표의 편이 아닐 수 있다. 






주간동아 2016.11.30 1065호 (p21~23)

유창선 정치평론가 yuc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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