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2016.11.23

사회

복지 없는 사회복지사, “우리도 직업인이다”

폭언·폭력 참다 마음병…파업해도 ‘착한 사람들이 왜 그러냐’ 반응에 괴로워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11-21 09: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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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차 사회복지사 김모(29·여) 씨는 요즘 주 2회 심리상담을 받는다. 김씨는 한 사회복지관(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일하는데 보람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에게 자주 욕설을 듣고 심지어 성희롱이나 신체적 폭력도 종종 겪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에 꾹 참았지만 4년째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우울증이 생겼다. 함께 일하는 상사에게 고민을 털어놨지만 상사는 “사회복지사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렇다고 클라이언트(복지 서비스 이용자)에게 항의하거나 그들을 신고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다음은 김씨의 말이다.

    “하루는 복지관에서 치매 어르신의 발을 씻기고 있는데 ‘물이 튄다’며  어르신이 내 어깨를 밀쳐 넘어질 뻔했다. 욕설을 듣는 일도 다반사지만 아무도 이것을 ‘인격모독’이라 생각지 않고 ‘사회복지사의 사명감으로 극복해야 할 일’쯤으로 여긴다. 게다가 주 6일 이상 저녁 8~9시까지 일해도 추가 근무수당을 요구하기 힘든 분위기다.”



    극한의 감정노동에 성폭력까지

    청소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모(30·여) 사회복지사도 “사회복지사는 가끔 인간 이하 취급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착한 아이도 있지만 어떤 아이는 사회복지사에게 욕설과 반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청소년과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때로 신체적 위협까지 느낀다. 하지만 복지관 측은 ‘별일 없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토로했다.

    많은 사회복지사는 스스로를 ‘극한의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2013년 한 해에만 사회복지공무원 4명이 육체 및 감정노동의 한계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논란이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그해 말 사회복지사의 인권 및 근로환경을 조사한 후 ‘사회복지사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들은 “2013년 이후로 나아진 게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가 낸 ‘2015년 사회복지사 통계연감’에 따르면 사회복지사는 폭언과 폭력을 흔하게 겪는다. 사회복지 이용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의 43.2%가 ‘클라이언트가 욕설 또는 저주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사회복지 생활시설에서도 사회복지사의 피해 비율이 높았다. 생활시설 사회복지사의 22%가 ‘클라이언트가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클라이언트가 시설 또는 개인 물품을 파손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30.3%나 됐다. 또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공무원의 10.2%도 ‘성적 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2013년 ‘사회복지사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폭언·폭행·성추행을 당했지만 피해 구제를 위한 도움을 받았다는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6%에 그쳤고, 피해자의 81.4%는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최영광 한국사회복지사협회 기획실장은 “지금도 사회복지사의 고충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피해 보상을 논의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공식 기구가 없다. 직업상 안전에 대한 전수조사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복지사의 일이 고된 데 비해 급여가 낮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건복지부가 권고한 ‘2016년 사회복지사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회복지사는 월 163만9000원(1호봉 기본급 기준), 선임사회복지사는 179만7000원, 과장급은 191만8000원, 부장급은 212만3000원을 받는다. 하지만 최 실장은 “인건비 가이드라인은 권고사항일 뿐이라 실제론 이보다 훨씬 낮은 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상당수가 휴일 및 연장근로에 대한 추가 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사회복지사 통계연감’을 보면 사회복지사 중 ‘연장근로수당을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51.9%에 불과했고, ‘휴일근로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비율도 29.3%나 됐다. 



    ‘원래 희생하는 직업’ 인식도 문제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정신보건계열 종사자 300여 명은 10월 2일부터 “더는 일할 수 없다”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파업 참가자는 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자살예방센터 정신보건 전문요원들이다. 이들은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조건에서는 안정적으로 일하기 어렵다. 남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지만 정작 우리의 복지와 인권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고진선 사회복지사(서울시자살예방센터)의 말이다.

    “사회복지사도 엄연히 직업인인데 ‘자원봉사자’ ‘좋은 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고착화됐다. 지금도 ‘착한 일 하는 사람이 왜 파업하느냐’ ‘원래 희생하는 직업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어떤 부당한 대우에도 무조건 참다 보니 장기간 트라우마를 겪기도 하는데 정작 우리의 복지와 인권을 상담할 기관은 전혀 없다.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맘 프로젝트’라는 심리치유 프로그램이 있지만 일반 시민이 대상자라 우리처럼 직업상 내상을 겪는 사람에겐 적합하지 않다.”

    고씨는 “임신한 사회복지사도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야간근무, 응급출동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24시간 전화상담을 이용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폭언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옥상에 있는데 날 살려내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는 식이다. 이 경우 응급출동을 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면 임신한 사회복지사라도 나가서 자살을 말려야 한다. 인력 부족도 큰 문제다. 각 자살예방센터 예산에 인건비가 따로 확보돼 있지 않기 때문에 급여가 많은 경력자는 센터의 눈치를 보며 퇴사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복지 혜택이나 추가 근무수당은 꿈도 못 꾼다.”

    즉 경력이 긴 사회복지사는 퇴사하고, 경력이 짧은 사회복지사는 적은 급여와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다 전문성을 쌓을 때쯤 퇴사하는 악순환 구조라는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사회복지사를 배려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동시에 인식이 개선돼야 복지 서비스도 건전하게 시행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국 사회복지시설의 98%가 직영이 아닌 민간위탁이나 민간운영 방식이고, 30인 미만 소규모 시설이 85% 이상으로 사실상 ‘법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민간위탁 사회복지시설은 고용노동부나 복지 관련 부서 공무원의 모니터링 없이 방치된 경우가 많다. 또한 업계가 좁다 보니 ‘기본 인권과 복지에 대해 항의했다 소문이 나면 이직조차 힘들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육체 및 감정노동은 각 기관이나 지자체에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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