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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들도 풀기 힘든 ‘중동 평화’

촘스키-더쇼비츠 교수 양보 없는 설전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인류의 숙제 재확인

석학들도 풀기 힘든 ‘중동 평화’

석학들도 풀기 힘든 ‘중동 평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전혀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는 앨런 더쇼비츠 교수(왼쪽)와 놈 촘스키 교수.

올 들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시몬 페레스 부총리의 주도로 이스라엘이 1967년 이래 점령해온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것. 이는 점령과 팽창으로 일관해온 이스라엘 정책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처럼 심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이-팔 관계에 관해 세계의 석학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최근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초청으로 이 문제에 정통한 석학 두 명이 논쟁을 벌였다. 논쟁의 주인공은 놈 촘스키와 앨런 더쇼비츠 교수.

촘스키 교수는 MIT대학의 언어학 교수지만 중동을 비롯한 미국의 외교정책에 관해 수십 년간 날카로운 비판을 해 전 세계적 존경을 받았다. 반면 하버드 로스쿨의 더쇼비츠 교수는 미국 행정부와 국제기구, 주지사 및 기업 등의 자문에 응해왔으며 미국의 이-팔 정책에 가장 영향력 있는 교수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유대계 미국인이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촘스키 교수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팔레스타인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는 쪽이라면, 더쇼비츠 교수는 옹호하는 입장.

유대계 미국인 크게 엇갈린 시각

두 사람의 시각차는 이날 논쟁에서도 확연했다. 서로의 발언이 앞서다 보니 상대의 말을 끊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청중도 입장에 따라 박수의 세기 등으로 양쪽 학자를 응원하거나 경원하는 태도를 보였다.

더쇼비츠 교수는 미국 내 형사 항소사건 최고 승소율을 기록한 변호사다. 그래서인지 달변의 말솜씨로 촘스키 교수를 먼저 자극했다. 그는 주인공들이 고통과 괴로움을 겪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안톤 체호프의 문학세계를 설명한 뒤, “실용주의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체호프식 해법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가자와 서안에서 철수하고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주거지를 연결하는 도로망 등을 건설하는 반면, 팔레스타인 측은 테러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나는 이-팔 평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데 반해, 촘스키 교수는 최근 펴낸 그의 책 제목 ‘노 챈스 포 피스(No chance for peace, 평화의 기회는 없다)’처럼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는 촘스키 교수의 생각이 틀리기를 바란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더 나아가 “많은 학자들이 이상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함으로써 현실적인 중동 평화를 더 어렵게 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어떤 양보를 해도 깎아내리기 바쁘며, 페레스를 히틀러나 이디 아민 같은 독재자에 비유한다”며 이 같은 지식인들의 시각이 팔레스타인에 주는 메시지는 절대 타협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석학들도 풀기 힘든 ‘중동 평화’

가자지구 철수를 반대하는 이스라엘 민중(위)과 가자지구에 입성한 후 환호를 지르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아래)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에 촘스키 교수는 “두 당사자가 거짓된 주장을 하지 않도록 했다. 나는 이번 포럼의 주제와 규칙을 지키겠다”며 정면대응을 피한 뒤, 역대 이-팔 협상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위선과 이를 지원한 미국의 잘못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거대한 벽과 철조망에 둘러싸여 사실상 봉쇄돼 있고, 팔레스타인 경제·정치·문화의 중심지인 동예루살렘과 분리돼 있다”며 “이 같은 인간적 재앙은 필연적으로 복수를 불러오게 돼 있다”고 이스라엘 점령정책 기조를 비난했다. 그는 이어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동의한 각종 평화 해법과 결의안이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으로 늘 휴지조각이 됐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거부하는 안을 내놓은 이스라엘의 강경파들이 중동 평화의 정착을 가로막은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다소 차분해지는 듯했던 두 사람 간의 논쟁은 청중이 공격적인 질문을 퍼부으면서 다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촘스키 당신은 홀로코스트와 자살 폭탄테러 등 이스라엘인들이 겪은 폭력의 파급효과를 놓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이스라엘 청중의 질문이 신호탄이었다. 이에 촘스키 교수는 “당신은 절반의 문제만을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고 있는 폭력을 함께 언급해야 완전한 질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리력의 균형은 팔레스타인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며 “인티파다가 발생한 2000년 첫 두 달 동안 팔레스타인 주민은 수백 명이 죽었지만 이스라엘 사람은 불과 네 명밖에 죽지 않았다”고 거론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클린턴 행정부는 헬기부대를 보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아파트 공격을 도왔다”고 미 정부를 비난한 뒤, “팔레스타인의 공격이 거세져 사망자의 비율이 초기 20대 1에서 3대 1로 줄자, 미국 언론이 초점을 맞춘 것은 3(팔레스타인 사망자)이 아닌 1(이스라엘 사망자)이었다”며 언론의 보도 행태도 성토했다.

한 시간 반 동안 감정적 공방도

더쇼비츠 교수는 “당신은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인용하는데, 촘스키 행성(planet Chomsky)의 시각을 반영하는 뉴스만 진실된 뉴스인가”라고 비꼬았다. 그러자 촘스키 교수는 “권위 있는 군사전문지인 ‘제임스 디펜스 위클리’ 등에 나오는 내용인데, 미국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용한 것일 뿐이다”라고 응수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이스라엘이 계획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거지의 도로 연결망의 접속성 문제로 이어졌다. 촘스키 교수는 “내가 동예루살렘에 가봤더니 이스라엘 주민을 위해서는 엄청난 도로 인프라가 구축돼 있었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해서는 망가진 택시가 방치돼 있는 텅 빈 진흙탕 길밖에 없었다”며 “이게 이스라엘이 말하는 접속성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더쇼비츠 교수는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팔레스타인인도 고속도로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며 “무조건 비관적으로만 보지 말라”고 반박했다.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 문제도 주요 대치전선이었다. 더쇼비츠 교수는 “예방적 군사활동과 첩보활동이 없었다면 수천명의 이스라엘인들이 숨졌을 것”이라고 이스라엘 측을 옹호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인권 성적으로 매기면 B-나 C+ 정도 될 것”이라며 “이 정도면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 나라 가운데서는 가장 좋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촘스키 교수는 “외부의 위협에 대응한 나라 가운데 이스라엘보다 인권 침해가 덜했던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고 반박했다.

논쟁이 격화되면서 두 사람은 여러 장의 지도를 청중에게 들어 보이며 각자의 주장을 펼쳤고, ‘인용의 정확성’을 둘러싼 감정적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된 이날 논쟁에서는 단 하나의 접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포럼에 참석했던 한 케네디스쿨 학생은 “두 사람이 어느 정도 합의할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때가 이-팔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두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지를 판단하기는 힘들었지만 적어도 이-팔 분쟁이 얼마나 민감하며, 쉽게 해결하기 힘든 ‘인류의 숙제’인지는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주간동아 2005.12.27 516호 (p64~65)

  • 보스턴=선대인/ 전 동아일보 기자 battiman@daum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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