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3

2016.11.16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세상이 격변할 때 음악은 반응한다

트럼프 시대의 팝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11-11 17: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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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가 요동쳤다.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했으며 금값은 상승했다.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의 당선 유력 소식이 전해진 바로 직후다.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한 한 정치평론가는 미국 CNN 방송에 출연해 진심으로 두렵다는 말을 했다. 그의 표정은 모든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지지자와 ‘안티 트럼프’ 진영의 그것과 동일했다. 그들의 얼굴에 나는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12월 19일 밤, 이미 한 번 겪었던 일 아닌가. 그날 밤의 기분과 그다음 날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식당에서 마주했던 이들의 엇갈린 표정을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출현에 좌절하고, 불안해하며, 그가 벌일 온갖 퇴행의 시간을 겪을 미국인과 세계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음악계 또한 트럼프 시대를 맞이해 요동칠 테다.

    이번 대선 기간 내내 팝스타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막으려고 몸부림쳤다. 반(反)트럼프 진영에 섰던 뮤지션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 마돈나, 카녜이 웨스트, 레이디 가가 같은 팝스타부터 닐 영, 로저 워터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같은 록 뮤지션과 인디 뮤지션 전부가 클린턴을 지지했다고 봐도 좋다. U2는 콘서트에서 트럼프 영상을 띄워놓고 정면으로 비판했으며, 마돈나는 선거가 임박할 무렵 길거리에서 클린턴을 지지하는 즉석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아들 부시가 재선에 임한 2003년에도 이 정도의 절박한 움직임은 없었다. 그만큼 이들의 허탈감은 클 테다. 많은 이의 예측을 깨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좋은 행보를 보이지 않는 한, 이들은 끊임없이 음악을 통해 그를 공격할 것이다. 우리의 지난 경험과 최근 정국으로 보건대, 트럼프가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서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팝 역사에서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가진 음악이 득세하던 시대가 꼭 혼세였던 건 아니다. 1990년대가 대표적이다. 빌 클린턴 재임 시절이던 그 시대는 미국 역사상 최고 호황기였다. 대통령은 경제 호황 아래 소수민족과 여성 친화 정책을 폈고 환경정책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 시대의 정신을 대변하는 음악은 격렬하되 어두웠다.

    1991년 ‘Nevermind’로 음악의 진정한 90년대를 열어젖힌 너바나를 비롯해 얼터너티브 혁명의 주요 축을 차지했던 밴드들은 한결같이 성장 과정에서 불안함, 화려한 80년대의 그늘, 군중 속 고독 등을 노래했다. 그뿐인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대놓고 기득권 권력을 날 선 언어와 공격적인 사운드로 비난했다. 혁명을 외쳤다.

    또한 1980년대까지 비주류였던 힙합이 이때 투팍, 스눕 독, 닥터 드레 등의 스타를 낳으며 당당히 주류 음악의 한 축이 됐다. 이로 인해 흑인의 비참한 삶과 노골적 차별이 미국 대중음악을 구성하는 한 축이 되기도 했다. 풍요와 진보의 시대, 소외계층의 목소리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희망 안에 포용됐던 것이다.



    이를 받아안은 사람들이 전후 베이비붐 세대 자녀라는 것도 한 원인이었다. 한때 사회변혁을 꿈꾸던 부모 세대, 즉 히피가 중산층이 되면서 어떻게 현실과 타협했는지를 보고 자란 청년들의 불만이 음악에 투영됐다. 그 1990년대 에너지에 비하면 2000년대는 오히려 조용하고 산발적이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물론 여기엔 여러 원인이 있지만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자).

    어쨌든 미국은, 그리고 세계는 이제 전에 없던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무슬림의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백인 중년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한, 지난 8년간 ‘역차별’을 당했다고 느끼던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하면 이는 세계의 명백한 퇴행이다. 이 퇴행의 시대,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과 파티 힙합에 취해 있던 팝은 어떤 변화의 국면을 맞이할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상이 격변할 때, 음악은 반응한다. 1960년대가 예견했고 90년대가 증명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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