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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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림 리스트 열리면 다쳐?

전·현직 검찰·경찰 등 다수 명단 포함 說 … 윤 씨 모르쇠 일관 ‘수사팀 곤혹’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5-12-07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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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림 리스트 열리면 다쳐?

    검찰이 윤상림 씨에 대한 수사를 진행시킬수록 그의 실체에 대한 의혹은 계속 커져가고 있다. 정·관계 및 군·검 고위 간부들은 지금도 윤 씨와의 관계를 부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형편이다.

    광주지검 순천지청 양부남(현 광주지검 부부장 검사) 검사는 1996년 12월, 최근 검찰에 구속된 ‘거물 브로커’ 윤상림(지리산관광호텔 회장)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군 장성에게 부탁해 군납권을 따주겠다며 육류도매업자에게서 교제비조로 6000여만원을 받고, 잘 아는 판검사들에게 구속 피의자 석방을 부탁해주겠다며 피의자 가족으로부터 80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 등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어쩐 일인지 기각됐다. 검찰이 보강 조사를 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자 영장이 발부됐지만 검찰은 윤 씨의 신병을 확보할 수 없었다. 윤 씨가 이미 잠적해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대신 순천지청에는 윤 씨 사건에 관심을 표명하는 한 검사장급 검찰 간부의 전화가 걸려왔다. 윤 씨의 검찰 인맥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전직 검찰 고위간부가 뒤 봐줬다?

    당시 이 간부의 행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 간부는 “윤 씨 측에서 전화가 와서 순천지청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고는 더 이상 전화하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이 간부는 이어 “90년대 초 검찰 선배의 소개로 윤 씨를 알게 돼 그 뒤로 가끔 만나는 사이였다. 언젠가는 나를 팔고 다닌다고 하기에 따끔하게 경고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순천지청에 근무했던 검사들의 얘기는 다르다. 한 부장급 검사는 “윤 씨는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손볼 대상으로 꼽혔지만 이 간부가 워낙 싸고도는 바람에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고 기억했다. 96년 말 순천지청에 근무한 한 검사도 “이 간부가 윤 씨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것은 수사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안다”고 털어놓았다. 주임검사였던 양부남 검사는 “그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입을 닫았다.



    양 검사는 끝내 윤 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고 97년 초 광주지검으로 옮겼다. 대신 광주지검에 있다가 양 검사 후임으로 부임한 박경춘(현 광주지검 공판부장) 검사가 윤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할 수 있었다. 당시 “도피 행각을 벌이는 윤 씨를 도와주는 이는 육군 모 장성이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으나 윤 씨를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올린 개가였다.

    검찰 내에서는 “윤상림 사건 이후 양 검사의 경력이 한때 이상하게 안 풀렸다”고 입을 모은다. 연수원 수료 직후인 93년 첫 발령지가 서울지검이었을 만큼 연수원 성적이 좋았던 그가 한동안 지방을 떠돌았기 때문이다. 양 검사는 순천지청에서 광주지검으로 옮겨 2년간 근무한 뒤 99년 2월 서울지검 동부지청으로 발령 났다. 2002년 8월에야 엘리트 코스인 대검찰청 연구관으로 발탁돼 정권이 바뀐 이후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등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윤상림 리스트 열리면 다쳐?

    2003년 경찰청 특수수사과 직원들이 군납비리와 관련된 한 방위산업체를 압수 수색하는 모습. 한때 ‘장군 잡는 여경’으로 이름을 높인 강순덕 경위의 성과가 윤 씨의 농간에 의한 청부수사였음이 밝혀졌다.

    반면 당시 간부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승승장구했다. 검사장으로서 대검의 주요 부장직을 역임한 다음 검찰의 핵심 요직을 거쳐 고검장까지 승진했다. 그러나 결국 모종의 사건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검찰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만나는 소탈한 성격이 장점이긴 하지만 그것이 결국 명을 재촉했다”고 평가했다.

    세월은 흘렀건만 윤상림 씨가 다시 세인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역시 불명예스러운 일 때문이다. 96년 말 당시에는 지역사회의 관심사였지만 이번에는 전국적인 관심 인물로 부상한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이번에는 보기에 따라서는 대형 법조비리 사건의 중심인물이 돼 한바탕 정계와 검찰, 경찰을 뒤흔들어놓을 수도 있다. 검찰이 그를 체포할 당시 각계 고위 인사들의 명단과 연락처가 기재된 그의 수첩을 압수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윤상림 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된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11월24일 윤 씨를 구속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공갈. 검찰에 따르면 윤 씨는 2003년 5월 공범 이모 씨와 함께 경찰에 H건설 김모 상무가 공사 하청을 준다는 명목으로 K토건으로부터 4억5000만원을 받고 군 장성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첩보를 제보한 뒤 수사가 시작되자 H건설을 찾아가 더 이상의 비리 제보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9억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최대의 관심사는 ‘윤상림 리스트’의 내용. 검찰 쪽에서는 “검찰은 전직이 많고, 경찰은 현직이 더 많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물밑에서 경찰과 치열한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검찰이 윤 씨 사건을 경찰에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스폰서에게 술값 바가지 씌우고 돈 챙겨

    당장 구속영장에 나타난 ‘H건설 비리 청부 수사’는 윤 씨가 절친한 사이였던 강순덕 경위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강 경위는 한때 ‘장군 잡은 여경’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이 수사로 업자에게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구속되면서 추락했다. 검찰이 또 윤 씨가 경찰 고위 간부를 통해 전북경찰청 기동수사대를 움직여 청부 수사를 했는지도 캐고 있다. 두 사건 모두 경찰 조직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검찰의 고민은 윤 씨가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검찰은 특히 이번 사건 수사 과정에 윤 씨가 강원랜드에서 2003~2005년 사이 칩으로 환전한 수백억 원대 중 1000만원권 이상의 자기앞수표만 83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 돈의 출처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으나 윤 씨는 이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한 검찰 간부는 “윤 씨는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브로커 노릇을 해왔기 때문에 나중에 감방에서 나와 다시 그 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절대로 스스로 불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브로커’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인과 군, 검경의 고위 간부들과 맺어놓은 폭넓은 친분 관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에 대해 “질이 안 좋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잘나갔던 한 정계 인사도 “한때 그가 나를 팔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그를 불러다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혼을 내주고는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수법 가운데 하나는 음식점을 이용해 스폰서에게 비싼 술값을 바가지 씌워놓고 이를 자기 수입으로 삼는 것이었다고 한다. 유력 인사를 소개해준다는 명목으로 스폰서를 불러내 자신이 지정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미리 그 음식점에 가져다놓은 발렌타인 30년짜리 두 병을 시켜 먹고 이튿날 그 음식점에 가서 발렌타인 값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는 것. “이런 사람이 아직까지 활개 칠 수 있도록 한 우리 사회의 토양이 문제”라는 한 경찰 고위 간부의 탄식이 귓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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