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2

2005.11.29

오강현, 법의 이름으로 정부를 꺾다?

  • 송홍근 기자

    입력2005-11-23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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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단지에 시스템 인사가 휘둘렸다. 당당하게 맞서겠다. 재판을 통해 반드시 명예회복할 것이다.”

    4월 초 오강현 전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 사장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가스공사는 3월31일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오강현 사장 해임안’을 75.5%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해임은 사실상 정부의 뜻이었다. 가스공사의 정부 측 지분은 61%에 달한다. 오 전 사장이 버티자 해임이라는 강수를 둔 것.

    위에서 사인이 오면 물러나는 게 공기업 사장들의 관례였다. 관료 출신으로 알 것 다 아는 그가 사퇴 압력을 받고도 물러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납득할 수 있는 해임 사유가 전혀 없었다.”



    이후 오 전 사장은 공기업 사장 인사에 선례를 남기고 싶다면서 소송에 나섰다. 정부 산하 공기업 사장이, 정부가 옷을 벗기려 하자 소송으로 맞장을 뜬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오 전 사장은 해임 8개월 만에 뜻하던 선례를 남겼다. 11월16일 가스공사가 오 전 사장을 해임한 것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오 전 사장이 가스공사를 상대로 낸 주주총회 무효 확인 청구 소송에서 “가스공사가 3월 말 주주총회에서 오 사장을 해임한 사유가 부적절하고 오 사장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 결과에 대해 오 전 사장은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후임 사장까지 취임한 마당에 다시 가스공사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 소송의 목표는 해임 자체가 무효임을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당시 가스공사 주변에선 특정 세력이 오 전 사장을 밀어내기 위해 비방에 나섰고, 그에 따라 표적 조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스스로 옷을 벗으면 비리가 있었다고 오 전 사장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돼 퇴로가 없었다는 것.

    “정부에서 공기업 사장을 내보낼 수 있다. 맘에 안 들어도 옷을 벗길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 소문이나 음해, 전단지 따위를 근거로 공모를 통해 임명된 사장을 몰아내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가스공사는 11월9일 임시 주총을 열어 이수호 전 LG상사 부회장을 새 사장으로 선임했다. 가스공사는 항소할 예정인데, 최종 판결에서도 오 전 사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오 전 사장이 사표를 낼 때까지 사장이 2명이 되는 일이 벌어진다.

    오 전 사장은 2003년 9월 가스공사에 취임했으며, 임기를 1년 6개월 남긴 시점에서 해임안이 의결돼 물러났다.

    공기업 인사 시스템에 파장을 일으키면서 사퇴압력→반발→해임→소송으로 이어진 오강현 사태는 공모로 뽑혔고 임기까지 명시됐으나, 휘둘릴 수밖에 없는 공기업 CEO들의 자율성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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