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2

2016.11.09

한창호의 시네+아트

스크린에 자화상을 그릴 때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의 ‘라우더 댄 밤즈’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11-07 13: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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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감독 요아킴 트리에르의 ‘라우더 댄 밤즈’는 가족멜로드라마다. 가족의 표면은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폭탄보다 시끄러운(Louder Than Bombs)’ 갈등이 있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중심엔 유명 사진작가 이자벨(이자벨 위페르 분)의 죽음이 있다. 이자벨은 고교 교사인 남편과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이자 사진계의 스타 작가다. 그는 ‘전쟁의 이면’을 다룬 사진들로 유명했다. 폭탄이 터지는 전쟁 자체보다 그 전쟁이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강조했다. 영화 ‘라우더 댄 밤즈’도 이자벨의 사진처럼 보인다. 이자벨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은 뒤 가족이 겪는 심리적 충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다.

    온화하고 지적으로 보이는 남편(가브리엘 번 분)은 고교 교사로, 지금 고교생인 둘째 아들을 가장 걱정한다. 컴퓨터 게임만 하고 친구도 사귀지 않는 ‘반항아 외톨이’로 점점 변해가고 있어서다. 아이가 컴퓨터 앞에서 총을 난사하는 게임에 몰두할 때면 왠지 학교에서 큰 불상사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질 정도다. 큰아이(제시 아이젠버그 분)는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걱정할 게 없어 보이는 아들이다. 죽은 엄마의 작품 전시회를 준비하며 큰아들이 필름을 정리하려고 다시 집을 방문하면서, 그동안 숨기고 있던 이 가족의 상처는 극복의 실마리를 찾는다.

    심리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는 죽은 자를 이상화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제사 같은 의례가 그 방증이다. 사진작가로서 이자벨은 죽은 뒤 유작 전시회가 열릴 정도로 더 유명해졌고, 엄마로서 이자벨은 두 아들에게 지극한 모성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영화는 가족이 알지 못했던 ‘이자벨의 이면’을 보여주며 그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자벨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또 유명작가로서 그는 언제 더 행복했을까. 사실 전장에서 돌아와 집에서 쉴 때면 이자벨은 가족 사이에서 겉도는 자기 위치에 말 못 할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이자벨은 가족(사적 영역)과 작가(공적 영역) 사이에서 극심한 분열증을 겪었다.

    이 순간 영화에는 이자벨의 정면 클로즈업 장면이 30초가량 길게 이어진다. 보통 이런 정면 숏은 카메라를, 그래서 관객을 바라보는 표현법으로 쓰인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도 남들이 모르는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갖고 있지요?’ 같은 질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선 정면 클로즈업이 좀 다르게 이용된다. 이 화면은 마치 미술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이자벨의 시선은 관객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렘브란트가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린 수많은 자화상 같다. 타자가 아니라 자기를 성찰하는 고도의 집중을 표현하고 있어서다. 이때 이자벨의 눈동자엔 렘브란트의 그것처럼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이 일렁인다. ‘라우더 댄 밤즈’는 그 불안을 뒤늦게 이해하는 가족의 방황을 대단히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성찰의 시간으로 초대하는 것, ‘라우더 댄 밤즈’의 미덕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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