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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法門寺 佛指사리’ 한국 온다

부처님 손가락뼈 기적의 聖物 … 11월11일~12월20일까지 친견법회 및 지하궁 유물전

‘法門寺 佛指사리’ 한국 온다

‘法門寺 佛指사리’ 한국 온다

불지사리 한국 이운 봉행위원회 공동위원장 홍파 스님(가운데)과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쉐청 스님(오른쪽)이 합의서를 작성해 교환한 뒤 펼쳐 보이고 있다. 맨 왼쪽은 봉행위 상임집행위원장 장주 스님. 작은 사진은 불지사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9대 기적 가운데 하나이자, 불교계 최고 성물(聖物)인 중국 산시성(陝西省) 법문사(法門寺)의 ‘불지사리(佛指舍利)’가 11월11일 한국에 온다.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지 1600년 만의 일이다.

불지사리 한국 이운(移運) 봉행위원회(공동위원장 불교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 등)와 중국불교협회는 10월1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중국불교협회 사무실과 댜오위타이(釣魚臺·조어대)에서 ‘부처님 진신지골사리(眞身指骨舍利) 친견(親見) 및 지하궁 유물 한국 특별전’ 조인식을 가졌다.

양측이 주고받은 합의서에 따르면 봉행위는 11월11일 오전 조계사 대웅전에서 예불의식을 치르고 장소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으로 옮겨 12월3일까지 일반 불자 및 국민을 대상으로 한 친견법회와 지하궁 유물전시회를 연다. 이어 12월8일부터 20일까지 부산 BEXCO 제1전시장에서 친견법회와 유물전시회를 갖는다.

발견 당시부터 수많은 화제

불지사리는 기원전 4세기경 부처가 열반에 든 뒤 7일간 다비(화장)식을 거쳐 남은 4cm 크기의 손가락뼈다. 당시 부처에게서 나온 7만개에 달하는 사리 가운데 유일한 진신지골사리로 유네스코와 불교계,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인정한 유일한 국보급 보물이다.



이번 유물전시회에는 불지사리 이외에도 ‘45존불조상옥정보함(진신보함)’ ‘단륜십이환석장’ ‘연진신소면바리’ ‘팔각비색자정수병’ 등 국보 1급 유물 30여점을 비롯해 국보급 보물 100여점이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이날 조인식에는 한국 측 홍파 스님, 봉행위 상임집행위원장 장주 스님(조계종 중앙종회 수석부회장), 민족화합운동연합 이재환 상임공동의장과 중국 측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쉐청(學誠) 스님, 왕저이(王哲一) 중국국가종교사무국 부국장 등 한국과 중국 측 인사 20여명이 참석했다.

쉐청 스님은 조인식에 앞서 한국대표단 환영인사에서 “불지사리 한국 나들이는 중국은 물론 한국, 더 나아가 전 세계 불자들의 경사”라면서 “이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불지사리 친견과 지하궁 유물전이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세부사항에 대해 모든 합의를 끝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홍파 스님은 이에 대해 “불지사리의 한국 이운은 3000년 전의 부처가 한국에 오는 것과 같다. 한국의 2000만 불자와 5000만 국민이 부처님의 커다란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를 준 데 대해 중국 정부와 불교협회 측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뒤이어 장주 스님은 “미륵경을 보면 부처님은 56억7000만년 만에 다시 오신다고 돼 있는데 그보다 훨씬 앞서 한국 땅에 오시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불지사리는 한국의 불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法門寺 佛指사리’ 한국 온다

법문사 지하궁에서 발견된 진신보함과 봉진신보살상.

불지사리는 발견될 당시부터 갖가지 기이한 현상을 일으켜 세간의 화제를 불러모은 ‘성스러운 물건(聖物)’이다. 법문사 지하궁이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중국 정부는 1986년 가을, 5년 전 서쪽 측면이 무너진 후 간신히 버텨오던 법문사 진신보탑(眞身寶塔·13층 전탑-벽돌탑)의 나머지 부분이 힘없이 내려앉자 법문사 전체에 대한 유물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1987년 봄 어느 날, 법문사 경내에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는데, 낙뢰가 탑이 있던 그 자리에만 일정한 간격으로 내려치는 것이다.

발굴 작업을 지휘하던 한진커(韓金科) 연구원은 비가 갠 뒤 그 자리를 파도록 지시했고 그곳에서 문을 하나 발견한다. 그 문이 바로 873년 이후 굳게 닫혀 있던, 전설 속의 지하궁 입구였던 것이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문이 열리자, 발굴단 앞에는 화려한 지하궁 모습이 드러났다. 1000여점이 넘는 온갖 보물이 그 속에서 쏟아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지하궁 후실인 비밀 감실(龕室)에서 부처의 불지사리가 발견된다. 874년 당나라 희종이 칙명으로 문을 봉한 지 1113년 만의 일이었다.

한 가지 소원 들어준다는 전설

‘法門寺 佛指사리’ 한국 온다

중국 산시성 법문사와 1986년 무너졌다가 복원된 진신보탑.

전설 속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성물(聖物)을 눈앞에서 확인한 한 연구원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심스레 성물을 집는 순간 그는 뭔가에 감전되는 듯한, 알 수 없는 충격에 기절하고 말았다. 한 연구원은 그때 성물을 집었던 오른손과 오른쪽 반신에 마비가 왔고 지금도 불편한 상태인데, 이 건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현재 한 연구원은 발굴성과를 평가받아 법문사 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불지사리가 성물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보통 화장을 할 경우 일반인의 뼈는 재가 된다. 수백, 수천 도에 달하는 고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지사리만은 손가락뼈인데도 무려 7일간의 다비식 속에서 타지 않고 남았다.

불지사리에는 또 직접 본 사람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따라다닌다. 중국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주석직에 오른 것도 불지사리를 친견한 덕분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그런 연유다.

불교의 학설에 따르면 불지사리가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시기는 기원전 240년 전후다. 석가모니 사후, 인도의 아쇼카왕이 불법을 펼치기 위해 부처의 사리를 세계 각지로 보냈는데, 석리방(釋利房)을 비롯한 18명의 사문이 19과의 사리를 담은 보석함을 들고 중국 땅을 밟았다는 것. 그런데 이때 부처가 나타나 사리가 아직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아님을 알리자, 사문들은 사리가 담긴 보석함을 ‘성스러운 언덕(성총)’에 묻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148년 후한 환제 건화(健和) 2년, 서역 파르티아의 고승 안세고가 중국으로 건너와 성총에 묻힌 이 사리를 발견하고 황제에게 알려 지금의 법문사 터에 지하궁과 자단나무와 향나무로 관곽(棺槨)을 만들어 모셨다고 전해진다.

그 후 지하궁은 중국 황제들조차도 쉽게 드나들지 못할 정도로 엄격히 통제된다. 북위(北魏)시대부터 당(唐)에 이르기까지 황실과 조정에서 지하궁을 방문해 사리를 친견한 경우는 단 아홉 차례에 불과할 정도였다. 때문에 황제와 황실은 지하궁을 찾을 때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을 공양했으니 그만큼 그 속에서 발굴된 유물은 화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불지사리 이운특별전에는 중국 나한스님 100여명이 동행해 24시간 경호할 예정이다. 봉행위는 또 한국 나한 스님과 사설경호원으로 경호라인을 구축하고, 경찰청의 협조를 얻어 안전 문제에 철저히 대비키로 했다. 한국 불지사리 이운전시회는 1994년 태국과 2002년 대만, 2004년 홍콩에 이어 네 번째고, 비중화권으로는 두 번째다.



주간동아 2005.11.01 508호 (p70~71)

  •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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