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8

2005.11.01

검찰 개혁, 태풍인가 미풍인가

조직안정 무게 사개추위 ‘로드맵’대로 추진 … 차기 총장 신망받는 내부인사 발탁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5-10-26 1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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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개혁, 태풍인가 미풍인가

    10월18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천정배 법무부장관.

    “오늘은 대통령께서 말씀을 자제하시고 주로 듣기만 해주십시오.”(송영길 의원)

    “나도 그런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오늘 송영길 의원이 그런 얘기를 할 줄 알았습니다.”(노무현 대통령)

    순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율사 출신 의원들의 만찬장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10월16일 노 대통령이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표를 수리하기로 방침을 정한 뒤 신기남 국회 정보위원장, 조성래 의원 등 15명을 불러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실제 노 대통령은 이날 주로 듣는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다만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잘하고 있으니 천 장관을 도와주라”고 간곡히 당부했다는 것.

    천 장관 ‘소신 바꾸기’ 도마에

    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천 장관을 중심으로 검찰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야당이나 검찰 일각에서는 천 장관의 지도력에 흠집이 생긴 만큼 천 장관이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과 관련해 과거에는 폐지를 주장했다가 막상 장관이 되고 나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이를 행사한 천 장관의 ‘소신 바꾸기’도 도마에 올려놓았다.



    검찰 개혁, 태풍인가 미풍인가

    6월29일 법무부장관 취임식 장면.



    천 장관의 사퇴 공방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사안은 여권의 검찰 개혁 기조 변화 여부. 노 대통령도 천 장관의 동국대 강정구 교수 불구속 수사지휘권을 수용한 뒤 사퇴 뜻을 밝힌 김종빈 검찰총장의 처신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검찰도 여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날 만찬에서 여권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고 검찰 개혁을 가속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은 그동안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는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는가 하면 경찰은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두고 검찰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경우 당장 검찰 공안부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공안검찰은 “공안 사건은 전체의 2.5%에 불과한데, 공안 검사는 10.3%(전체 검사 1514명 가운데 156명)나 된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

    결론부터 얘기하면 여권은 검찰 조직 안정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 내에서 검찰 개혁 가속화 주장은 힘을 잃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열린우리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은 “10월16일 만찬에서 노 대통령은 검찰의 조직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하긴 했지만 주로 듣는 입장이었고, 오히려 감정적으로 검찰 개혁을 가속화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왔다”면서 “검찰 개혁은 원래의 로드맵대로 사개추위에서 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야당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추진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검찰 개혁, 태풍인가 미풍인가

    10월17일 김종빈 검찰총장(앞줄 가운데) 퇴임식을 마친 후 검찰 수뇌부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후임 총장으로 유력시되는 정상명 대검 차장.

    사실 수사지휘권 발동 이전만 해도 천 장관은 ‘검찰 편’이었다. 검찰도 초기의 우려를 접고 천 장관에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검찰에 비판적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 법무부 장관이라는 자기 색깔은 드러내지 않고 노 대통령 탄생의 일등공신이라는 ‘실세 장관’으로서 검찰의 방패막이가 돼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검찰 처지에서 환영할 만한 일은 ‘실세’ 천 장관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검찰 입장을 적극 대변해주었다는 점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개추위가 공판중심주의를 들고 나오자 검찰은 비슷한 사건에 대한 법원의 양형이 달라 법원에 대한 국민 불신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양형 기준 관련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천 장관이 이를 수용해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천 장관이 사개추위 논의 과정에서 이를 제기하는 것을 보고 검찰이 안도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검찰 개혁과 관련한 여권의 기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은 후임 검찰총장 인선 문제. 10월21일 현재 후임 검찰총장으로는 정상명 대검 차장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차장은 노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로 2003년 2월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에서 법무차관으로 승진, 가장 파격적인 인사로 주목받았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검찰총장 0순위로 거론돼왔다.

    정 차장은 활달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유머 감각과 지휘 통솔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는다. 실무·기획통이면서도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대검 공안3과장 등을 거쳐 특수·공안 등 검찰 업무에도 두루 능하다는 평. 청와대가 정 차장의 이런 점을 높이 사 검찰 조직을 추스르는 데 적임이라고 평가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내년 초 검찰 정기 인사 주목

    검찰에서는 사시 17회인 정 차장이 후임 검찰총장으로 유력하다는 얘기가 나오자 앞으로 검찰에 인사 태풍이 몰아닥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관행대로라면 당장 정 차장의 선배 및 동기 기수인 16회 2명과 17회 5명이 용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그러나 여권 관계자는 “정 차장이 총장이 되더라도 동기 기수 가운데 고검장급은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 검찰 조직 안정과 검찰 인사 쇄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 경우 옷을 벗게 되는 검사장급 이상 인사가 대폭 줄게 된다.

    일선 검사들은 “검찰 내에서 신망을 받는 사람이 총장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특수통 검사는 “송광수 전 총장처럼 후배 검사들의 신망이 높으면서도 기가 센 총장을 선택하는 게 결과적으로 여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조직 전체를 잘 추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법무부 장관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일선 검사들은 총장 선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내년 초 검찰 정기인사라고 말한다. 천 장관은 취임 이후 보강 차원의 인사를 하긴 했지만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인사는 하지 못한 상황. 한 검찰 간부는 “천 장관은 평소 검찰이 거대권력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강조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검사들이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들이 답답해하는 대목은 올해 들어 정통 특수통 검사들이 수사 일선에서 배제되는 방향으로 인사가 이뤄졌다는 점. 한 특수통 검사는 “현재 서울지검 특수부에서는 도청 수사 등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지방검찰청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상태”라면서 “이는 지검 특수부장 가운데 검사 때부터 특수부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이 드문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다.

    천 장관은 최근 법무부 각 실국별로 ‘변화 전략’을 만들어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도 자신에게 힘을 실어준 만큼 검찰 개혁을 흔들리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그러나 헌정사상 최초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그에 대한 야당의 사퇴 공세는 여전히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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