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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100년 명문高/진명

‘글로벌 인재’ 요람으로 제2도약

여성 인재 3만여명 배출 ‘명문 사학’으로 우뚝 … 선후배 남다른 우애도 ‘최고의 장점’

‘글로벌 인재’ 요람으로 제2도약

‘글로벌 인재’ 요람으로 제2도약

진명재단 변기호 이사장(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과 학생, 교직원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결혼 에피소드는 진명여고 동창생 사이에서 종종 화제로 등장한다. 이 전 의장과 부인 한윤복(39회) 여사의 혼담이 오갈 때, 그의 부친이 “진명 출신이라면 안 보고 데려와도 된다”며 며느리를 적극 환영했다는 것. 이는 ‘맏며느릿감 양성소’로 칭송받던 진명의 사회적 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그러나 진명의 교육은 단순히 순종적 여성을 기르는 데 머물지 않았다. 구한말, 설립자인 엄준원 선생은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치마를 둘렀으나 여자가 아니다”라고 가르치며 진보적인 여성상 구현에 힘썼다. 최초의 여성운동가인 나혜석(3회·작고)과 최초의 여성 판사인 황윤석(36회·작고)을 배출한 것도 바로 진보적 교육의 힘에 근거한다. 사공인숙(45회·천주교 루르드 성모회 회장) 진명여고 동문회장은 “1950년대 당시 선생님으로부터 회의 진행 방법을 배워, 대중 앞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민족자본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여성 사학, 진명여고가 내년 4월21일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 1906년 4월21일 엄순헌 귀비(고종의 계비로 영친왕의 모친)의 오빠인 엄준원 선생이 종로구 창성동에 설립한 진명은 소수의 여학생 교육 기관이었다. 진명은 100년에 걸쳐 3만여명의 여성 인재를 배출했다.

변기호(53) 이사장은 “진명(進明)이란 교명은 ‘덕을 쌓고 학업을 닦아서 나의 빛으로 겨레 온 누리를 밝게 비추며 굴함이 없이 전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이는 여성에게 진리 탐구와 개척정신을 강조한 선구적 설립이념”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인재’ 요람으로 제2도약

서울 양천구 목동 진명여고 교사.

70명의 입학생으로 출발한 진명은 1911년 10명의 1회 졸업생을 배출한다. 처음엔 수업료는 물론 교복과 학용품까지 학교에서 지급하다가 1915년부터 수업료를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25년부터 입학고사를 치르면서 진명은 명문 여학교로 부상한다.

1950년대에는 부산 보수동 가건물에 2년간 피난 학교가 세워졌다. 보수동은 진명의 아름다운 전통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1953년 6월7일 피난 생활의 곤궁을 위로하고 교사와 학생의 생일을 서로 축하해주기 위한 ‘보수연(保壽宴)’이 최초로 열린 것. 피난지 보수동(寶水洞)의 음을 따온 이 행사는 오늘날 보수연의 기원이 됐다.

83년간 종로구 창성동을 지켜온 진명은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1989년 지금의 서울 양천구 목동 신 교사(校舍)로 이전했다. 목동 교사에도 진명의 오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글로벌 인재’ 요람으로 제2도약

올해 여름 임원 학생 150명이 참가한 일본문화 체험단(왼쪽). 진명여고 학생들이 70여년 만에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교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설립자 동상 대신 보존되고 있는 흰 구(球) 모양의 돌. 1939년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치르며 군수물자를 동원하기 위해, 진명의 설립자인 엄준원 선생의 동상을 강탈했다. 그 분노와 아픔을 새기고자 학교 측에서 동상이 있던 자리에 대신 돌을 얹어놓은 것.

중앙현관에는 ‘三一堂(삼일당)’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1958년 준공된 삼일당은 국제행사를 유치할 정도로 큰 규모의 초현대식 강당이었다. 삼일당은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현판의 휘호를 썼다.

전국 최고 수준의 도서관, 중앙집중식 냉·난방 등 첨단 시설 ‘부러움 한 몸에’



시대에 따라 추억은 다르지만, 동문들은 하나같이 끈끈한 학교 사랑을 드러낸다. 인근의 경복고 남학생과 가슴 떨리는 로맨스를 경험하고, 정갈함의 상징이었던 하얀 운동화를 더럽힐까봐 거리를 조심조심 걷기도 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올 때마다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것도 바로 진명인의 몫이었다. 이선희(59회) 변호사는 “1968년 1월의 어느 일요일, 남파 간첩 김신조의 생포 소식이 알려지자 전교생이 학교가 무사한지 살펴보기 위해 등교할 정도였다”며 애교심 깊었던 진명인의 일화를 소개한다.

김순덕(69회)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2학년 선배가 학교의 상징인 백선(진명의 상징물)을 만들어 1학년 후배에게 선물하던 전통이 있었다”며 선후배 간의 우애를 중시하던 학풍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다.

목동 교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노현정(86회) KBS 아나운서는 “체육 시간의 30%는 발레를 비롯한 갖가지 무용을 배웠고 합창단 활동을 통해 문화적 소양을 체득했다”며 “여성이 누려야 할 다양한 커리큘럼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진명인의 학교 사랑은 모교 출신 교사들의 활약에서도 느껴진다. 현재 전체 105명의 교사 중 모교 출신 교사는 14명. 26년간 모교에서 근무한 최은미(64회) 교사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교사로 근무한다는 것은 유서 깊은 학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추억했다.



진명은 100주년을 계기로 제2의 도약을 꿈꾼다. ‘진명 100년의 힘, 교육 1000년의 빛’이란 캐치프레이즈가 상징하듯, 단순한 여성 인재 교육을 넘어 글로벌 인재 육성에 매진하고 있는 것. 수년 전부터 일본 문화 체험단, 백두산 탐방단 등을 운영해 교사들에게 견문을 넓힐 다양한 기회를 부여했고, 올해 여름에는 임원 학생 150명이 참여하는 일본문화 체험 수련회를 열었다.

3만여 권의 장서를 갖춘 전국 최고 수준의 도서관, 교과교실제를 염두에 둔 공간 운영 변화, 중앙집중식 냉난방 시설 등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원천. 1학년 송혜주(16) 양은 “뛰어난 시설 덕분에 인근 학교에 다니는 다른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한다”며 환하게 웃는다.

100주년 맞이 특별행사 준비도 빠질 수 없다. 학교는 100년 역사를 조망하는 ‘진명100년사’와 사진첩 발간을 비롯해, 100년 찬가 제정 작업에 들어갔다. 2106년 개봉될 타임캡슐도 100번째 개교기념일에 맞춰 봉인할 계획이다. 내년 8월15일 학생 100명과 교직원, 동문, 학부모 100명 등 모두 200명으로 구성된 국토 4단(端) 탐사단이 국토의 동서남북 끝 땅을 동시에 등정한다.

모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동문회의 움직임도 바쁘다. 동문회는 9월23일 동문과 재학생 1000여명이 참여한 ‘개교 100주년 한마음 걷기 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사공인숙 동문회장은 “나혜석, 노천명, 황윤석 등 진명여고를 빛낸 졸업생들의 일대기를 담은 ‘100주년 진명인물사’(가칭)를 발간하고, 고교 동문회로는 최초로 장학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교기념일에는 ‘진명인의 밤’이 열리고, 그날을 전후해 각 기수별로 해외 동문 초청행사도 벌일 예정이다.

100주년 기념사업의 백미는 바로 ‘100주년 기념관’ 건립이다. 학교와 동문회의 긴밀한 협조 속에 세워질 기념관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닌 첨단 인텔리전트 기능을 구비한 종합적 건물로 태어나게 된다.

진명여고의 과거사 100년이 ‘가정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여성 인재 양성’을 목표로 했다면, 앞으로 진명의 천년대계는 세계를 끌어안는다. 나날이 성장하는 여성 인재들의 활약 뒤에는 진명의 교육이 늘 함께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5.11.01 508호 (p32~34)

  • 이남희/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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