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7

2005.10.25

비극의 땅 카슈미르 ‘통곡’

국경분쟁 전쟁과 테러 속 지진 덮쳐 … 인도-파키스탄 우호 분위기 그나마 위안

  • 델리=이지은/ 통신원 jieunlee333@hotmail.com

    입력2005-10-19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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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의 땅 카슈미르 ‘통곡’

    구호 대원들이 건물 잔해 속에 묻힌 시신을 찾고 있다.

    10월8일 아침에 발생한 카슈미르 지진 참사의 사망자가 10월13일 현재 4만명을 훌쩍 넘었다(유니세프 추정 집계). 인도 측 희생자는 1300명 정도이고, 대다수 사상자는 파키스탄 지역에서 발생했다. 두 나라의 실질적 국경선인 ‘통제선’ 부근 마을들이 최악의 해를 입었다. 지진 발생 시간이 학교 수업 시작 직후였던 탓에 학교 건물이 붕괴되면서 특히 어린이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학교 건물이 있는 지역의 구조작업에 매달린 부모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파키스탄의 발라콧 등지에서는 지진 발생 80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적적으로 생존자들이 구조됐다. 그런데 인도 지역의 한 마을에서는 지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어이없게도 추위에 얼어 죽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높아 춥고 바람이 심한 데다 비까지 뿌렸기 때문이다. 이불과 옷은 고사하고 몸만 빠져나온 생존자들은 노천에서 잠을 자다 보니 노약자들의 희생이 잇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끊임없는 인명 피해 ‘세계의 화약고’

    지진으로 도로가 갈라지고 대규모 산사태가 이어져 오지 마을은 더욱 고립되고 있다. 지진의 해를 입은 마을들은 대부분 차량 통행이 가능한 도로에서 수시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다. 그렇다 보니 오지 마을에는 구조와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최악의 피해 지역이 국경 지역이다 보니 통제선에 포진해 있던 두 나라 군대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서는 통제선을 따라 설치된 콘크리트 진지가 무너지면서 군인 1000여명이 사망하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이곳은 파키스탄의 무장단체들이 밀집한 곳이기도 하다. 진앙지인 발라콧은 카슈미르 무장테러 단체들의 활동 중심지다. 무장반군 세력의 집합체인 ‘지하드 위원회(Jehad Council)’는 카슈미르 지역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당분간 무장투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장단체들은 지진으로 엄청난 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무장단체인 ‘자이쉬 무하마드’는 진앙지인 발라콧에서 불과 3km 떨어진 곳에 훈련캠프가 있으며, 또 다른 무장단체인 ‘알 바드르’ 역시 지진 피해 지역인 만세라 인근에 두 군데의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미 불법단체가 된 ‘라쉬카레 토이바’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주도 무자파라바드에서 20km 거리에 세 개의 캠프를 두고 있다. ‘라쉬카레 토이바’의 관련 인사 자왓 우드 다와는 성명을 통해 “많은 인원이 사망했거나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묻혀 있어 엄청난 인력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지는 무장단체의 훈련캠프 중 최소한 15곳 이상이 매몰됐다고 보도했다.

    중동에 뒤이은 세계의 화약고로 50년 가까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카슈미르는 이번 지진 전에도 전쟁과 테러로 끊임없이 인명 피해가 발생해온 비극의 땅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두 차례 전면전과 수차례 국지전을 벌였다. 국경 부근에서 벌인 사소한 총격전은 수천 회를 넘는다. 카슈미르 주민들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이다 보니 파키스탄에 편입되거나 아예 인도로부터 분리 독립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무장단체를 조직해 두 나라 국경을 넘나들며 무장투쟁을 하고 있다. 이들의 테러 행위는 인도, 파키스탄 양국 간 현안 중 하나다. 인도는 파키스탄이 이들 무장단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파키스탄은 ‘정신적 지원’만 하고 있다며 인도의 주장을 부인한다. 이런 현실에서 지진으로 인한 무장단체들의 전투력 저하는 인도 정부엔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무장테러 단체도 당분간 투쟁 중단

    하지만 이번 지진을 계기로 두 나라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지난 서남아시아 ‘쓰나미’에서 인도가 큰 피해를 입었을 때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조의를 표함으로써 ‘우호’를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이번 지진에서 파키스탄이 큰 해를 입자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와 전임 총리이자 야당 지도자인 바즈빠이 등 정치 지도자들이 앞다투어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조의를 표했다.

    인도 정부는 이미 파키스탄에 구호물자와 구조작업을 위한 인적 자원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인도의 인적자원 투입을 거절했다. 아무래도 적군의 병력이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들어오는 게 부담이 됐으리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헬기를 통해 구호물자를 피해 지역에 직접 수송하는 제안은 받아들였다.

    10월11일 인도 헬기들은 통제선을 넘어 작전을 수행했다. 이번 지진으로 최악의 해를 입은 파키스탄 오지 마을들은 인도 쪽에서 들어가는 게 쉬워 이런 양국의 공동 대처가 훨씬 효율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두 나라는 지진이 발생하기 전부터 화해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었다. 카르길 전쟁이 종결된 2003년 11월 휴전협정 이후 양국 간에 대규모 군사 충돌은 없었다. 두 나라는 버스와 기차 노선을 개통하면서 본격적인 물적·인적 교류를 확대해가고 있다. 비록 국경선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으나 물적·인적 교류는 가능한 한 ‘부드러운 국경선(soft border)’의 개념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진 발생 3일 전 인도 외무장관 나트와르 싱은 파키스탄을 방문해 오랜 분쟁으로 문제가 돼온 시아첸 빙하 지역에서 두 나라 군대를 철수한다는 것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바 있었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카슈미르 지진 경험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는 이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재해를 통한 해원(解寃). 두 나라가 해묵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함께 시련을 극복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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