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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유근이 아빠는 전쟁 중

유근이 영재 비결은 ‘맞춤형 시간표’

늦된 아이서 천재 만든 ‘거꾸로 교육법’ … 원리 이해에 초점 맞춘 ‘선택과 집중’ 특징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유근이 영재 비결은 ‘맞춤형 시간표’

유근이 영재 비결은 ‘맞춤형 시간표’

곧 입학시험을 치르게 될 인하대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송유근 군.

송유근 군의 지능지수(IQ)는 얼마일까. 아버지 송수진 씨는 “측정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영재성은 타고나는 거냐, 아니면 개발될 수 있는 거냐를 묻곤 한다. 나는 고민할 필요 없는 문제라 생각한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는 타고난다. 그러나 반에서 우수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의 영재는 노력하면 된다.”

송 씨는 유근이 또한 전형적인 ‘노력형 영재’라 말한다. 그동안 유근이가 이뤄낸 ‘업적’을 생각하면 선뜻 믿기 어려운 말이다. 한술 더 떠 송 씨는 “맞벌이 가정, 중소도시 거주 가정, 아이 교육비로 한 달에 30만원 이상 쓰지 않는 부모의 아이도 얼마든지 영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일까. 유근이 아빠 엄마의 ‘무심한 듯 치열한 교육법’에 그 답이 있다.

뒤집기도 늦게, 한굴도 늦게늦게 유근이 부모는 “유근이에게 영재성이 있다면 그건 집중력이 뛰어나고 엉덩이가 무겁다는 점”이라 말한다. 사실 유근이는 유난히 늦되는 아이였다. 백일이 되도록 뒤집기를 못했고 또래 친구들이 한글을 다 뗀 다음에도 책을 거꾸로 들고 볼 정도였다. 조바심이 날 만도 하건만 송 씨 부부는 그러려니 했다. 송 씨는 “앉혀보고 세워보고 했으면 좀더 빨리 기고 걸었겠지만 그럼 뭐 하나. 때가 되니 스스로 기다 곧 걸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부부는 유근이에게, 세상은 네가 걷고 보는 만큼만 네 것이고 아빠 목말 타고 본 세상은 네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소년 백수’와 오냐 할머니 유근이 부모는 맞벌이에 바빠 태교는 물론 조기교육에도 신경 쓸 수 없었다. 친가 부모님과 장모님 등 어른 세 분을 모시고 사는 까닭에 대놓고 내 아이 귀한 티를 내지도 못했다. 만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유근이를 키운 건 두 할머니였다(할아버지는 유근이가 두 살 때 타계했다). 손자가 그저 귀엽기만 한 할머니들은 뭘 해도 그저 잘했다 잘했다 할 뿐, 비판하거나 비평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유근이는 엎어지고 깨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 할머니들이 심어준 자신감이요 낙천성이다.

송 씨는 “유근이의 무거운 엉덩이도 할머니들 덕”이라 말한다. “할머니들이 뭘 하겠나. 그저 데리고 나가 하루 종일 풀어놨다. 한 시간 두 시간씩 개미 굴 파는 걸 구경해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 유치원에, 놀이터엔 덩그마니 유근이뿐이다 보니 그때부터 혼자 뭔가에 오래 집중하는 버릇이 생긴 듯하다.”



유근이 영재 비결은 ‘맞춤형 시간표’

인하대 박제남(수학통계학부)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는 유근 군.

‘곱하기’ 이해에만 석 달 만 네 살에 유치원에 입학한 유근이는 수업을 못 따라가 결국 5개월 만에 자퇴를 하고 말았다. 유근이 엄마 박옥선(47) 씨는 겁이 덜컥 났다. 유난히 느린 데다 수줍음까지 많은 아이라 공부라도 웬만해야 왕따를 면할 것 같았다. 구구단부터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진도는 잘 안 나갔다. 거기에는 부모의 ‘방조’도 한몫을 했다.

송 씨는 “수학 연산을 어떻게 가르칠까 참 많이 고민했다. 무조건 2 곱하기 2는 4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해서 블록도 쌓아보고 카펫 무늬도 활용하고, 하여튼 그렇게 두세 달을 오직 연산 개념을 체득하는 데에만 집중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단 개념을 이해하자 한두 달 만에 미적분 계산까지 확 나가버린 것이다.

송 씨는 ‘메스메티카’ 같은 수학학습 컴퓨터 프로그램을 아이에게 제공해 수식과 도형, 그래프, 수열 등이 어떻게 한 몸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줬다. 기울기 개념을 익힐 땐 온 동네 미끄럼틀을 다 타보고 다녔다. 중력가속도에 대해 공부할 땐 놀이공원의 자이로드롭 앞에서 스톱워치를 눌렀다. 원서를 보며 절로 영어를 익혔고, 원하는 공부를 실컷 하려면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제 스스로 시험 준비에 몰두했다. 유근이에게 공부는 친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됐다.

책 3만권을 버리다 아빠는 아이가 돌 될 무렵 3만권에 달하던 책을 모두 버렸다. 송 씨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그 책들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살 내 아이까지 같은 방식으로 키울 수는 없었다. 그래봐야 내 정도 사람밖에 더 되겠냐”고 했다.

몰라 엄마, 다알아 엄마 유근이가 엄마에게 뭘 물으면 엄마는 늘 “몰라”라고 답한다. 송 씨는 “아내 같은 ‘몰라 엄마’들은 ‘뭘 모르니까’ 무식하고 그래서 용감하다. 몰라 엄마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으면 절대 여섯 살 꼬맹이한테 미적분 책을 사주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박옥선 씨는 “아이가 ‘산이 뭐냐’고 물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어 그냥 아이 손을 잡고 산으로 갔다”고 한다. 누구나 물어보는 것보다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몰라 엄마를 둔 아이는 항상 즐겁게 엄마를 가르치며 배운다. 송 씨는 “배움의 즐거움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모든 것을 스스로 배웠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이라 강조한다. 한석봉 어머니가 글씨를 잘 써 명필을 길러낸 것은 아니었다. ‘다알아 엄마’ 밑에서는 큰 인물이 나올 수 없다.

가르치면 망한다 아빠는 20대 후반 2년간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첫해 4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책을 못 읽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읽어오라”고 시키다 전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 되겠다 싶어 하루 8시간 480분을 40명에게 쪼개, 한 명 한 명하고 10분 내외의 배움의 나눔을 시작했다. 가르치기보다 아이와 서로 묻고 답하며 같이 배워갔다.

유근이 영재 비결은 ‘맞춤형 시간표’

드럼 연주는 유근 군의 새 취미다.

송 씨는 “그렇게 가을쯤 되자 아이들은 면소재지 학교에서는 처음으로 반 평균이 90점이 넘는 ‘가을의 전설’을 이루어냈다”고 회상한다. “바둑에선 스승 문하에 제자로 들어가면 스승은 제자가 들어올 때 한 판, 스승을 이겨 문하를 떠날 때 한 판, 단 두 판의 지도대국을 한다고 한다. 스승한테 배워서는 스승 이상이 될 수 없다. 제자가 알아내야 할 것을 설명해준다면 답을 알려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청소 절대로 하지 말라 맞벌이 주부들은 아이가 아프거나 공부가 뒤처지면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급기야 육아휴직이나 퇴직 등을 한 뒤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을 생각을 한다. 그러나 송 씨는 “육아휴직의 조건은 단 하나, 엄마가 직접 교육하는 것이 나을 게 분명한 경우뿐”이라 말한다. “전업주부도 방학 일주일만 지나면 아이 학교 갈 날만 기다린다. 자녀를 위해 일을 쉬어놓고도 살림하느라 정작 아이에겐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얼마나 ‘선택과 집중’을 잘 하느냐다. 청소니 뭐니 하는 잡다한 집안일은 잊고 아이에게 집중한다. 맞벌이 부부가 퇴근해 저녁 하고 빨래하고 매일 청소까지 하고 나면 아이와 함께할 시간은 없어진다. 엄마에게 팔방미인이 되길 요구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핵심은 선택과 집중 보통 엄마들은 아이가 특정 분야에 재능을 보이면 계속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이건 잘하니 이제 다른 걸 해보자”고 한다. 만물박사를 만들려는 것이다.

송 씨 부부도 유근이 취학을 앞두고 어떤 공부를 얼마나 시킬 것인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결론은 ‘유근이가 좋아하는 것, 가장 잘하는 것 한 가지만 한다’였다. 송 씨는 “그래서 남들이 서너 개 가방 바꿔가며 이 학원 저 학원 뛰어다닐 때 유근이는 ‘나는 바보로소이다’ 열 번 외치고 책상에 앉아 꿋꿋이 한 우물만 팠다”고 말한다. “어떤 아이라도 지금 하는 공부 과목을 절반으로 줄인다면 선택한 과목만큼은 두 배 이상 잘할 수 있다. 유근이도 영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선택했기 때문에 하루 14시간씩 공부하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표와 교과서는 잊어버려라 송수진 씨가 “유근이는 영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에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고시한 수학교육 시간 수도 있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 공통과정까지 총 1310시간 동안 수학을 배우게 돼 있다. 그러니 하루 3시간씩 291일, 그러니까 10개월이면 초·중·고 과정을 다 공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송 씨는 “유근이는 교육인적자원부 고시 교육과정대로 7개월 정도 공부한 뒤 미적분을 풀었다. 결코 빠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학교 수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면 누구나 유근이만큼 수학을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대다수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고 수학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 씨는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찾고 그에 맞는 시간표를 아이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면밀한 관찰과 연구 끝에 내 아이에게 맞는 시간표를 짤 줄 아는 부모가 아이를 영재로 만든다는 뜻이다.





주간동아 2005.10.04 504호 (p22~24)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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