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4

2005.10.04

국회의 창, 삼성의 방패

보이지 않는 손 동원 의원들 직·간접 체크 … 이건희 회장 증인출석 어려울 듯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9-28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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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 창, 삼성의 방패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9월21일 국회 정보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마주 앉았다.

    정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을 부를 것이냐.”

    “부르는 것이 아니다. 모시는 것이다.”

    지체 없이 응수한 임 의원이 못을 박았다.



    “다른 위원회에서 못하니까 정보위에서 해야 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기남 위원장이 거들었다.

    “재경위, 법사위에서 안 됐는데…. 정보위에서 채택하면 ‘뜻밖’이라고 할 것 같다.”

    임 의원이 이 말을 받았다.

    “X파일 진상규명을 책임지는 곳은 정보위다. 여기서 하면 ‘뜻밖’이 아니다.”

    22일부터 시작된 국회 국정감사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인물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다. 여야는 이 회장의 증인출석 문제를 놓고 연일 대치 중이다. 증인선정은 국감 시작 일주일 전쯤 끝나는 것이 관행이지만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홍석현 전 주미대사 등 X파일 3인방은 예외다. 여야는 국감이 시작된 22일에도 이들의 증인출석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삼성 3인방을 증인석에 세우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가 맞서는 곳은 재경위, 법사위, 정무위, 정보위 등 4개 상임위.

    삼성 3인방의 증인출석에 가장 열을 올리는 사람은 민노당 소속인 노회찬·심상정 의원과 우리당의 박영선 의원이다. 표면적으로 삼성은 이들에게 무관심하다. 방치하는 느낌을 줄 정도다. 노 의원 측은 22일 “삼성은 노 의원은 물론이고 민노당 주변에도 얼씬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 의원 측도 비슷한 반응이다. 삼성은 왜 이들을 외면하고 있을까. 삼성 구조본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4개 상임위서 증인채택 공방

    “17대 국회 초기에 그분들을 몇 차례 접촉해본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분들은 워낙 단선적 스타일들이라 접촉 자체가 오히려 화를 부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노 의원은 삼성이 로비하고 있는 것이 감지되면 바로 사격을 가해 삼성 측을 부담스럽게 했다. 노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이 회장 증인채택 문제가 거론되자 동료 의원이 삼성의 한 임원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보내온 ‘이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한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더라”고 했다.

    국회의 창, 삼성의 방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MBC에서 경제부 기자로 활동한 박영선 의원은 삼성에 아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성 측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 그러나 박 의원은 전화를 걸어온 이들에게 “그런 얘기라면 만나지 않겠다”고 자르면서 주변에 삼성 그림자가 사라졌다. 삼성과 관련한 박 의원의 활동은 거의 전쟁 수준이다.

    삼성과 관련된 자료 제출을 요구할 경우 해당 부처는 가급적 늦게, 그것도 알맹이 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때문에 박 의원 측은 자료를 분석한 뒤 수정본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에도 자료가 입수되지 않으면 박 의원은 직접 금융감독위원회 등 해당 부처를 찾아 ‘취재’를 해 확보한다. 한 측근의 설명이다.

    국회의 창, 삼성의 방패

    심상정, 노회찬, 박영선 의원(왼쪽부터).

    “여당 의원이 이런 정도 처지라면 삼성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끈기 있게 크로스 체킹(cross checking)을 하지 않으면 속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삼성의 힘은 막강하다.”

    삼성 측도 뻣뻣하게 나오는 의원들에 대한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민노당과 우리당 인사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이들과의 접촉이 성과가 없고 문제만 불거지자 눈에 띄는 접촉을 중단했다.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니다. 눈에 띄는 움직임 대신 우회로를 찾는다.

    박 의원은 요즘 지인들을 통해 삼성 얘기를 자주 듣는다. “삼성이 이런 얘기를 좀 해달라고 한다”는 지인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는 것. 중간에 자를 수도, 그렇다고 끝까지 들을 수도 없는 난감한 경우다. 9월5일 김대중컨벤션센터 개관식에 참석하러 광주에 갔을 때는 삼성과 아무 관계 없는 지인이 난데없이 삼성 얘기를 꺼내며 설명을 하는 황당한 경험까지 했다.

    우리당 이상민 의원도 최근 삼성에 근무하는 학교 동창과 친척에게서 서너 차례 전화를 받았다. 이 의원은 전화를 해온 친구나 친척들이 “전문 CEO로 삼성을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을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 이 회장 증인채택을 포기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동창과 친척의 움직임과 관련 “삼성 정도라면 그 정도 인적 네트워크는 갖춰야 기본”이라며 담담한 표정이다.

    우리당 관계자 “이 회장 장기체류 중인데…”

    외곽을 돌아가는 삼성의 움직임 배경에는 막강한 삼성의 조직과 정보력이 받치고 있다. 국회에는 삼성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삼성 구조본 소속 직원은 물론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계열사 조직원들이 총동원된 분위기다.

    삼성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재경위·정무위·법사위 등 삼성 관련 법안과 사건을 다루는 상임위의 움직임. 국회 재경위 소속 한 의원의 측근은 “30명에서 많게는 100여명의 삼성 관련자들이 국회 국정감사를 ‘감찰(?)’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우리당 한 초선의원은 “소수의 ‘뻣뻣한 인사들을 제외한 17대 국회의원 전원이 삼성으로부터 한두 차례 전화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 삼성에 근무하는 지인들한테서 꾸준히 ‘이건희를 (국감장에) 부르지 마라’는 전화를 받고 있다. 하지만 삼성 홍보실 한 관계자는 21일 전화통화에서 “삼성 관계자가 국회를 출입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 회장의 증인출석 문제는 국회 재경위 결의에 따라 결정된다. 상임위별 증인채택이 몰고 올 혼선을 이유로 재경위에서 이 회장을 부르는 것으로 여야 간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 것. 그러나 재경위도 이 회장 증인채택에 그리 적극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9월14일 회의를 소집, 이 문제를 의결키로 했던 재경위는 박종근 위원장의 불참으로 회의를 열지 못해 22일 국감장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키로 했다. 그러나 저녁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이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8시경, 참다 못한 심상정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증인채택 문제를 결의하자. 오늘 하기로 했다. 왜 안 하느냐.”

    그러자 박종근 위원장이 “지금 막바지 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시간이 있다. 더 기다려보라”고 대답했다.

    이에 심 의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과정이라도 설명해달라”고 요구, 여당 측 간사인 송영길 의원이 상황 설명을 위해 마이크를 잡자 박 위원장은 “민감한 사안인데 포지션이 노출되면 이견을 좁히기 힘들다”며 경과보고를 가로막았다.

    심 의원이 불만을 터뜨리자 박 위원장은 “원래 국회법에 의하면 증인출석 문제 등은 간사 간 합의에 의해 위원장이 상정한다. 현재 합의가 되지 않았다. 의제로 상정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비교섭단체인 민노당 소속 심 의원은 분을 참지 못해 고함을 질렀지만 목소리는 회의장 벽을 넘지 못했다.

    현장을 지켜보던 우리당 관계자의 반응은 시니컬하다. “미국 간 이 회장은 (돌아올) 생각도 없는데….” 국회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이 회장은 국감장에 올 의사가 없는데 괜히 국회가 호들갑을 떤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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